지난 11월 23일 국회의사당 앞에서 개성공단 정상화와 남북경협 복원을 염원하며 열린 장례식. 사진=연합뉴스
[데일리한국 이정현 기자] 박근혜 정부의 개성공단 폐쇄 결정이 내려진 지 5일로 300일이 됐다. 올해 2월 10일 전격적으로 발표된 '개성공단 폐쇄'라는 정부 방침에 따라 개성공단 입주 기업은 부랴부랴 남쪽으로 철수를 해야만 했다.

당시 개성공단 철수로 인한 피해는 124개 입주기업 외에도 이에 딸린 협력업체 5000여 곳에도 미쳤다. 피해액은 개성공단기업측 추산액은 1조 5000억원 이상이며 정부 추산액은 5200억원(투자자산 5088억원과 유동자산 1917억원 등)에 달한다.

개성공단기업 관계자들은 이처럼 피해가 커진 데는 300일 전 개성공단 폐쇄를 결정한 절차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항변하고 있다. 후속조치에 대한 충분한 고려 끝에 정상적인 절차를 따랐다면 이렇게까지 피해는 크지 않을 수 있다는 주장인 셈이다.

더구나 개성공단은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에 의해 승인 받은 사업으로 폐쇄를 위해서는 조정명령, 청문회, 사전통지 등이 있어야 했다.

당시 정부는 개성공단 폐쇄 이유로 북한이 1월 6일 강행한 4차 핵실험을 들었다. 개성공단 수익이 북한의 핵실험 자금으로 유용된다는 논리였다.

문제는 폐쇄 결정 사흘 전인 2월 7일 국회 국방위원회 회의에 참석한 한민구 국방부 장관 말대로 당일 열렸던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대북제재안으로 개성공단 폐쇄가 논의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통일부는 8일 개성공단기업협회 임원들에게 연락해 남북관계 상황에 맞춰 개성공단 체류인원 등을 조정하자고 제안해 설 연휴 뒤로 약속을 잡았다.

하지만 바로 다음날인 9일 통일부는 돌연 당장이라도 면담을 하자고 다시 연락을 취했다. 이어 10일 삼청동 남북회담본부에서 열린 면담 자리에 매우 피곤했는지 입술이 터진 채 나타난 홍용표 통일부 장관은 개성공단 전면 중단을 통보했다.

이처럼 급박하게 돌아간 개성공단 폐쇄 결정에 현 정권 최대 비선실세로 꼽힌 최순실 씨가 있다는 의혹이 최근 강력히 제기됐다. 지난 11월 23일 개성공단기업피해대책위원회는 국회 앞에서 개성공단 장례식을 열어 “비선의 농단에 의해 개성공단이 억울하게 단명했으니, 이제라도 우리가 장례를 지내주고 부활을 빌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 씨가 개성공단 폐쇄에 관여했다는 증언은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의 입을 통해 불거졌다. 비선모임의 존재를 인정한 그는 ‘개성공단 폐쇄’ 등 국가 중대사와 장관 인사 등이 해당 모임에서 논의됐다고 폭로했다.

게다가 최순실씨는 독일 드레스덴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발표한 ‘통일대박’ 연설과 관련해 붉은 글씨로 연설문 내용 첨삭까지 하며 관여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통일을 외치다가 개성공단 폐쇄로 남북관계 단절을 부른 행위는 언뜻 보기에도 일관성이 없어보인다.

이에 대해 개성공단관리위원회에서 10년간 법무팀장을 맡은 김광길 변호사는 “애초 박 대통령이 말한 통일대박론 자체도 북한 붕괴를 기본에 둔 정책이었다”며 “아마도 최순실 씨의 명령은 북한 붕괴였을 것이다. 위기관리를 하면서 세력을 관리한다는 정치적 계산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김 변호사는 정부의 개성공단 폐쇄 결정에서 나타난 절차상 문제에 대해 본인이 직접 나서 현재 헌법소원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김 변호사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의 본질은 기존 시스템을 무너뜨렸다는 것인데 개성공단 폐쇄 결정도 똑같다”면서 “기존 시스템, 절차를 지켜서 결정을 내렸다면 지금 같은 부작용은 막을 수 있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이어 “개성공단을 폐쇄하면 예산이 부담되는 만큼 예산당국에도 물어봐야 했는데 2월 10일 회의에 기획재정부 관계자가 왔는지 여부도 현재로서는 불분명하다”고 지적했다.

그의 말처럼 당시 개성공단 폐쇄를 논의했던 NSC는 개최 시간이나 참석기관명 등이 모두 ‘비밀보호 대상’이라는 이유로 정보공개를 거부하고 있다. 개성공단 운영에 관해 주무부처인 통일부도 지난 2일 “NSC는 청와대 주최로 열리기 때문에 답변할 수 없다”고 실무적 이유를 들면서 답변을 거부했다.

2003년 6월 착공식을 시작으로 13년 이상 유지돼온 개성공단은 하루 사이 돌변한 정부의 입장으로 멈춰서버렸다. 지금 남북관계는 최소한의 핫라인도 남아있지 않았다는 한탄스런 목소리들도 새나오고 있다.

개성공단 폐쇄가 일개 공단을 정리하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었음은 이미 명백하다. ‘최순실 국정농단 진상규명’ 과정에서 개성공단 폐쇄의 내막과 실태가 반드시 규명돼야 하는 이유는 너무나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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