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KDB ‘2016 북한인권백서’ 발간, 2000년대 북한 인권 특징 발표

1990년대에 비해 2000년대 생존권 개선…피의자·구금자 권리 악화

[데일리한국 이정현 기자]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의 회고록이 정국을 달구는 뇌관 역할을 하고 있다. 송 전 장관은 2007년 유엔(UN) ‘북한인권결의안’ 표결 당시 참여정부가 기권 입장을 정하기 전 북한측에 의견을 물어봤다고 적었고, 문재인 의원을 포함한 일부 참여정부 출신 인사들은 단순히 북한에 통보한 것을 오인한 것이라며 맞서고 있다.

이 팽팽한 진실게임의 와중에 더욱 명확하게 두드러지는 대목이 있다. 바로 북한 주민의 인권문제다. 북한 정권입장에서 이 문제는 그야말로 민감하고 치명적일 수 밖에 없다. 지금도 북한은 어느 누구든 북한 주민의 인권문제를 거론하면 그 자체를 체제 위협으로 간주하며 민감하면서고 격한 반응을 보이곤 한다. 북한의 아킬레스건인 인권문제를 그래서 더욱 세밀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 北, 2000년대 들어 주요 인권침해 유형 달라져

25일 북한관련 기관들에 따르면 북한의 인권 상황에 대해 국내에서는 통일연구원, 북한인권정보센터(NKDB) 등이 ‘백서(White paper)’ 형식의 보고서를 발간하며 자료축적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외에서는 UN 산하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가 2014년부터 ‘북한인권보고서’를 발간하기 시작했다.

지난 10일 선보인 북한인권기록보존소(이하 NKDB)의 ‘2016 북한인권백서’는 올해 발간된 북한인권백서 가운데 가장 최근에 나온 보고서다. 사건별로는 6만 5282건, 인물 관련해서는 3만 8328명에 관한 인권 침해 데이터를 담았다.

이번 백서는 최근 조사결과 북한에서 가장 많이 발생하고 있는 인권문제를 △개인의 존엄성 및 자유권(60.9%) △이주 및 주거권(13.4%) △생명권(10.5%) 등의 순으로 파악했다.

무엇보다 이번 백서에서 눈길을 끄는 부분은 1990년대 북한인권 실태와 2000년대를 비교한 결과다. NKDB는 이번 백서에서 “1990년대와 2000년대의 사건 유형별 분포에서는 특징적인 차이가 있다”고 밝혔다. 2010년 이후 북한인권 상황은 “2000년대 큰 차이가 없이 유지되고 있다”는 평가와도 비교된다.

사진=유토이미지

◇ 국가시설이 인권 사각지대…“한족새끼” 임산부 강제 낙태

두 시기의 비교를 좀 더 자세히 보면 1990년대에 비해 2000년대 들어 ‘피의자와 구금자의 권리(569.7% 증가)’ ‘재생산권(484%)’ ‘이주 및 주거권(467.2%)’ 등이 부쩍 늘어난 점이 확인된다.

‘피의자·구금자 권리 침해’와 ‘재생산권’ 침해 유형은 정부 당국, 특히 사법체계에 의한 침해라는 점에서 더 심각성이 크다. 북한에서 발생하는 인권침해는 국가 시스템의 문제인 것이다.

침해 사례가 많이 보고된 ‘재생산권’이란 ‘강제불임·피임·낙태, 강간·성추행, 생식기 훼손 및 이로 인한 감염 등’의 사례가 해당한다. 더 큰 문제는 발생 장소다. △보위부 및 안전부 조사 및 구류시설 △단련대 △집결소 △서비스기관 혹은 정부기관 등이 주요 사건 발생지다.

올해 보고된 북한 내 재생산권 침해의 97.8%는 ‘강제 낙태’에서 비롯됐다. 이 모씨(여·함경북도 출신)는 “보위부 감방 안에는 판자로 임시 수술대를 만들어 놨는데 소독도 안 된 곳에서 수술하면 우리는 죽음을 80% 각오해야 한다”며 “감방에서 그렇게 사람대접을 안 해주는 걸 보니 북한여자들이 잡혀 왔다가 또 탈북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먹거리를 해결해주지 못해 주민들이 중국에서 하는 경제활동을 암묵적으로 허용하면서도 정작 여성들이 중국인의 아이를 임신하면 극도의 혐오를 보이는 모습도 발견된다.

최모씨(여·평안북도)는 “2006년 1월 집결소에서 병원으로 가 낙태 수술을 당했다”며 “첫째 아이니 낙태를 안 하겠다고 했는데 계호들이 한족새끼라고 막 때리고 병원 가서는 주사도 안 놓고 그냥 수술을 했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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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짜 밥’ 옛말, 영양실조 걸려서 나오는 군대

2000년대에 들어 북한에서 발생 비율이 낮아진 인권침해 유형으로는 생존권, 교육권, 건강권, 정지적 참여권 등이 있다. 여기서 생존권은 식량권을 의미한다.

1990년대에 비하면 2000년대에는 생존권 침해 사례가 1/5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고난의 행군을 지나며 주민들 사이에서 자생적 시장이 발전한 영향이 커 보인다.

그러나 1990년대에 비교할 때 줄었을 뿐이지 북한은 여전히 기본적인 식량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다는 증언은 끊이지 않는다.

백 모씨(여성·함경남도 출신)는 “2011년도에 아사로 죽은 사람이 있었다”며 “아들집에 가면 며느리가 내쫓고, 딸집에 가면 사위가 내쫓아서 70대 후반이던 동네 할아버지·할머니 부부가 사망한 뒤에야 집에서 발견됐다”고 증언했다.

또한 방 모씨(여성·함경남도 출신)는 “북한에선 군대에 가면 공짜 밥을 줬기에 내 오빠도 찾아가 빌어서 3년 만에 군대를 갔다”며 “그런데 2007년에 오빠가 군대에서 영양실조에 걸렸다”는 증언을 했다.

이어 그는 “군대 안에서 아픈 사람이 한 둘이 아니라서 치료 같은 건 받을 수도 없다고 했다”며 군인들마저 굶는 북한의 실상을 폭로했다.

한편, 북한 당국은 우리측 인사는 물론이고 UN과 국제 NGO 등의 현지 인권조사를 일체 허용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현재 작성되는 북한인권보고서는 그 자체로 직접적인 개선 효과를 발휘하지는 못한다.

다만 북한 인권 문제의 심각성을 환기시키고 향후 처벌 근거로 쓰이는 방안이 북한인권법 등을 통해 점차 구체화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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