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다 북한인권 침해 사례 축적한 윤여상 북한인권기록보존소장 인터뷰

[데일리한국 이정현 기자] “2013년 7월경, 김일성의 기일(1994년 7월 8일)에 매음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붙잡힌 사람들에 대한 사형이 집행됐다. 사형 당시 억지로 주민들을 모이라고 해서 보게 했다. 한 사람당 40발씩 20발짜리 자동 보총으로 쐈다. 수십발을 맞은 시신은 형체가 없어졌다. 판결문만 읽고 바로 죽였다. 시체는 가마니에 싸서 묶고 어디에 묻는 지는 가족한테도 절대 알려주지 않았다.” (한모씨·남성·양강도 출신 증언)

2000년대 이후 북한에서 공개 처형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탈북자의 증언은 전혀 달랐다. 탈북자들은 여전히 북한에서 이동과 표현의 자유 등이 억압 당하는 것은 물론 심하게는 생명권 마저 위태롭다는 현실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속내를 털어놨다. 이같은 탈북자의 증언을 남겨 ‘처벌근거’로 남기자는 공감대가 확산돼 결국은 최근 발효된 ‘북한인권법’으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 북한인권 전문가 윤여상 소장 “최악의 상황에 직면”

이보다 앞서 2003년부터 북한인권 침해 실태를 기록해 온 북한인권정보센터(NKDB) 부설 북한인권기록보존소의 윤여상 소장을 20일 서울 종로구 사직로에 위치한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윤소장은 이날 만큼은 왠지 모르게 ‘노코멘트’라는 말을 누차 했다. 그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했다”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다양한 분야에 걸쳐 구체적인 수치를 줄줄이 꿰고 있어 북한인권에 관해 얘기할때마다 숫자를 거론하며 열변을 토하기로 유명한 그 답지 않은 태도였다.

윤 소장은 2008년부터 정부 위탁으로 탈북자 정착시설인 하나원에서 입소자를 대상으로 북한인권 실태에 대한 전수조사를 해왔다.

하지만 북한인권법이 최근 국회를 통과하면서 통일부는 산하에 북한인권기록센터를 직접 운영하며 조사를 수행할 계획이다. 그에 따른 조사 결과는 법무부 산하 북한인권기록보존소에 보존된다.

이에 따라 윤소장이 이끌던 ‘민간단체’ 북한인권기록보존소는 최근 통일부로부터 하나원 전수조사 위탁을 중단하겠다는 방침을 통보 받았다. 윤소장의 근심이 더욱 깊어진 이유는 위탁은 물론, 협조 방식으로라도 전수조사를 수행하는 것조차 불투명해진 상황 탓이다.

윤여상 북한인권기록소장이 20일 서울 종로구 사무실에서 인터뷰 하는 도중 '북한인권백서'를 들여다보고 있다.

◇ “정권 바뀌고 남북 정상회담서 북한이 인권조사 폐지 요구하면?”

윤여상 소장은 정부가 ‘공신력’을 갖고 북한의 인권 침해를 조사한다는 중요성에 대해서는 인정했다. 윤 소장은 그러나 정부의 북한인권 조사가 ‘독점’이 아닌 ‘반민반관(半民半官)’ 형식이 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정치적 중립성’을 가장 중요한 이유로 꼽았다.

윤소장은 “지금 박근혜 정권에서야 문제가 없겠지만 정권이 바뀌고 북한과 정상회담을 하면서 인권조사 폐지를 요구 받으면 어떻게 될까”라고 반문했다. 윤소장은 “국회에서도 야당이 집권해 북한인권 조사 업무에 반대한다면 잘 이겨낼 수 있을까”라고 물으면서 “굳이 그런 상황을 정부가 만들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윤소장은 이어 현재 탈북자 전수조사를 시도하는 곳이 북한인권정보센터를 제외하면 △법무부 △국가인권위원회 △통일부 △국가정보원 △통일연구원 △유엔북한인권서울사무소 등으로 민간단체의 참여 폭이 거의 제한돼 있다는 안타까운 현실도 강도높게 비판했다.

그는 “중복이 많은 정부 기관끼리 통폐합하는 게 순리적인 해법”이라며 “힘없는 민간단체부터 제외해버리는 어이없는 결과가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는 “민간단체로서는 하나원에서의 조사가 불가능해지면 사회로 나간 탈북자를 찾아다니며 조사하는 게 현저히 어려워진다”고 고충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는 이어 “조사에 응하는 탈북자의 입장에서도 국가기관에서 거주, 보호를 받는 상황에서 참여하는 것과 일반 사회 생활 중 응답하는 데는 심리적 부담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 NKDB, 10만 3000건 데이터 축적 … 정부는 "민간단체 활용 검토 중"

윤 소장이 지난 13여년 간 축적한 북한인권 침해사례 데이터는 10만 3000건에 이른다. 서독이 통일 전 동독의 인권 침해사례를 국가차원에서 수집한 4만 1390건이 30년간 축적된 사실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매우 방대한 양이라는 것이 자명해진다.

그러나 북한인권법 시행령이 발효된 지 보름을 맞는 현재까지 통일부와 윤소장 사이에 기존 데이터를 공유할 방안에 대해서는 별도의 논의가 전혀 없었다고 한다.

한편, 통일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정부차원의 북한인권조사는 (통일부) 북한인권기록센터가 통합수행하는 방향으로 추진할 계획"이며 "기존 위탁 사업은 종료되는 게 맞지만, 전문성과 실적이 있으므로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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