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에案'보다 진전…日 "일본 정부는 책임 통감"

사진 출처=연합뉴스
[데일리한국 김종민 기자] 28일 한일 외교장관 회담에서 마련된 일본군 위안부 관련 합의안은 일본 정부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강제 동원된 위안부에 대한 책임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된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취임 이후 처음으로 위안부 문제에 대해 분명한 어조로 사죄와 반성의 뜻을 표명한 것도 성과로 꼽힌다. 그러나 핵심 쟁점이었던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 문제에선 모호한 수준에서 타협이 이뤄져 앞으로 논란의 여지를 남겼다는 평가도 있다. 특히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가 이번 타협을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혀 주목된다.

먼저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무상은 이날 서울 세종로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한일 외교장관 회담 직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위안부 문제는 당시 군의 관여 하에 다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은 문제로서 이런 관점에서 일본 정부는 책임을 통감한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가 가토담화와 고노담화 등을 통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하고 사죄와 반성의 뜻을 표명한 적은 있지만 일본 정부의 책임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아베 총리가 기시다 외무상이 대독한 일종의 '사죄문'에서 "일본의 내각총리대신으로서 다시 한번 위안부로서 많은 고통을 겪고 심신에 걸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모든 분에게 마음으로부터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한다"고 밝힌 점도 총리 취임 이후 가장 전향적인 사죄와 반성으로 평가됐다. 아베 총리의 이번 사죄는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모든 분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죄와 반성의 심정을 말씀드린다"는 1993년 고노담화와 유사한 수준이다.

위안부 피해자 지원을 위해 한국 정부가 설립하는 재단에 일본 정부가 10억엔 규모의 예산을 출연하기로 한 것은 과거 아시아여성기금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극복하기 위한 양국의 타협안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일각에선 10억엔(한화 약 97억원) 규모가 피해 정도를 감안할 때 너무 적다는 지적도 있으며, 이를 일본 정부가 아닌 우리 측이 주도한다는 점에 대해서도 불만 섞인 의견이 나온다.

일본 정부는 1995년 아시아여성기금을 설립해 위안부 피해자 지원에 나섰지만,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등 국내 피해자 단체가 법적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인도적 지원'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한국인 피해자에 대한 아시아여성기금 지원은 1997년에 시작됐지만, 1999년 국내 피해자 단체의 반발로 사업이 일시 중단됐다가 2002년 한국 내 기금 활동이 중단됐다.

일본 정부가 작년 6월 공개한 '고노담화 검증 보고서'를 보면 총 61명의 한국인 피해자가 기금의 지원을 받았다. 정부 당국자는 "과거 아시아여성기금에도 일본 정부의 예산이 일부 투입됐지만, 피해자에게 직접 지원되는 자금은 민간 모금으로 마련됐고, 일본 정부 예산은 인도적 사업에 쓰였다"며 이번에는 피해자 지원에 일본 정부 예산이 투입된다는 점에 의미를 부여했다.

그래도 이번 합의안은 2012년 3월 일본 정부가 우리 정부에 제안했다가 거부된 '사사에안(案)'보다 진전된 것으로 평가된다. 당시 일본은 도의적 책임을 전제로 한 인도적 조치를 제안했지만 이번에는 일본 정부의 책임을 공식 인정했기 때문이다. 사죄와 반성도 당시는 주한 일본대사가 위안부 피해자를 개별 방문해 사죄 표명을 하고 일본 총리 서한으로 도의적 책임을 재차 인정하는 정도였지만, 이번에는 일본 총리가 공식적으로 사죄와 반성의 뜻을 표명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정부 당국자는 설명했다.

피해자 보상도 사사에안은 일본 정부 예산에 의한 의료비 지원 등 인도적 조치에 국한됐으나 이번 합의안은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 회복 및 마음의 상처 치유금' 등이 포함됐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내용으로 평가됐다.

하지만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이 명시되지 않은 점은 여전히 한계점으로 지적됐다. 기시다 외무상이 "일본 정부의 책임을 통감한다"고 밝혔지만 본국으로 돌아가 '도의적 책임'을 언급한 것이라고 설명하면 논란이 불거질 가능성이 있다.

한국 정부가 설립하는 재단에 일본 정부가 예산을 투입하는 것도 정대협 등 위안부 피해 단체가 요구하는 '법적 책임에 따른 배상금'과는 거리가 있다는 평가도 있다. 또 양국 장관이 민간에서 세운 일본 대사관 앞 소녀상에 대해 이전을 검토하겠다고 나선 것도 권한 밖의 일이란 지적이 나온다.

저작권자 © 데일리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