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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한국 조옥희 기자]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이 30일 우여곡절 끝에 여야 합의로 통과돼 정부 여당은 수출산업 확대에 청신호가 켜졌다고 반색하고 있지만 마냥 웃고 있을 때만은 아니다. 수출 기회는 확대되겠지만, 값싼 중국 농수산물과 공산품이 대거 유입되면서 그로인한 국내 기업과 생산농가의 피해도 예상되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번 FTA 타결 과정에서 중국에서 수입하는 농수산물 중 수입액 기준 60%를 일정 기간 후 무관세화하는 관세철폐 대상에서 제외했고 그중 절반에 해당하는 30%에 대해 양허 제외 지위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한중 FTA의 양허 제외 대상 농수산물은 548개로 한·미 FTA(16개), 한·EU FTA(41개), 한·호주 FTA(158개), 한·캐나다 FTA(211개) 보다 훨씬 많다.

쌀을 비롯해 고추, 마늘, 양파, 사과, 감귤, 딸기, 수박, 복숭아, 배, 조기, 갈치, 쇠고기, 돼지고기 등 주요 농수산물이 양허대상에서 빠졌다. 간장·된장·고추장·메주 등 전통식품과 국내 생산기반 유지가 필요한 식품용 대두유·설탕·전분 등 가공식품도 양허대상에 들어가지 않았다. 중국의 수입 관세 개방폭이 한국보다 높아 오히려 우리 농수산물의 중국 내수 시장 진출에 박차를 가할 기회라는 기대가 크다.

하지만 그동안 관세 인하가 없어도 해마다 값싼 중국 농수산물 수입은 급증해왔으며, 이를 고려할 때 FTA를 발판으로 중국 농수산물이 대량으로 들어와 국내 농수산업이 막대한 피해를 볼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한중 양국 무역에서 우리나라가 줄곧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했으나 유독 농수산업은 일방적으로 적자를 보고 있다. 이 때문에 FTA 발효로 중국 농수산물에 대한 개방 폭이 넓어지면 그에 따른 농산물 무역수지 적자규모가 더욱 커질 가능성이 있다.

대부분 신선 농산물은 관세 철폐 대상에서 빠졌지만, 20년 이내에 관세가 철폐되는 농축수산물 품목이 전체의 64%에 이르고, 현행 관세율 20%가 18%로 낮아져 중국산 김치의 수입가격이 더욱 내려갈 전망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등 6개 연구기관이 발표한 FTA 영향평가 결과를 보면 한중 FTA 발효 후 20년간 농림업과 수산업은 각각 연평균 생산이 77억원, 104억원 감소할 전망이다. 20년간 예상되는 농림·수산분야 피해액은 농림업 1,540억원, 수산업 2,080억원 등 총 3,620억원이다.

쌀 등 주요 농산물이 양허 대상에서 제외됐으나 일부 재배업 품목과 가공 농산물 수입 증가로 농림업 분야는 연평균 750만달러 규모 교역 수지 악화가 예상됐다. 특히 밭농업 채소류와 인삼·버섯 등 특약작물과 임산물을 중심으로 생산이 감소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또 어류·갑각류 수입이 늘어 수산업 분야도 FTA 발효 후 20년간 교역수지가 930만달러 악화하고, 바지락·홍합 등 패류, 새우 등 갑각류를 중심으로 생산이 줄어든다.

전자업계도 상황이 녹록치 않다. 이 분야는 중국시장의 비중이 절대적인 업종이다. TV·스마트폰 등 주요 품목의 경우 중국이 압도적인 세계 1위 시장이다. B2B(기업간거래) 품목인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도 중국이 세계 최대 수요국이다.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중국에서 판매하는 제품 대부분을 현지 공장에서 생산한다. 관세 철폐든 양허제외든 미칠 영향이 거의 없다는 뜻이다. 삼성전자는 톈진(TV), 쑤저우(디스플레이), 시안(반도체) 등에서, LG전자는 톈진(에어컨), 선양(TV), 옌타이(휴대단말), 광저우(디스플레이), 타이저우(냉장고), 난징(세탁기) 등에서 각각 현지 생산라인을 가동 중이다.

중국내 소비물량은 거의 100% 현지화했다는 게 양사의 설명이다. 일부 특수제품은 국내에서 조립돼 수출되는 물량이 남아있긴 하지만 점유율은 미미한 수준이다. 게다가 휴대전화, 반도체, 컴퓨터 등 IT제품은 FTA와는 별도로 세계무역기구(WTO)의 정보기술협정(ITA)에 의해 이미 무관세화했다.

문제는 중소형 가전시장이다. 중국산 중저가 제품이 내수시장에 쏟아져 들어올 경우 상대적으로 기반이 약한 국내 중소업체들에 적잖은 타격이 될 수 있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삼성·LG는 별 영향을 받을 일이 없지만 중소 전자업체들 사정은 전혀 다를 수 있다"고 말했다.

소형 공기청정기, 선풍기, 커피포트, 다리미 등 중소형 가전제품의 경우 가격에 워낙 민감한 품목이라서 중국업체들의 중저가 공세에 국내 업체들이 고전할 우려가 큰 것으로 지적된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산 제품이 단기간에 국내 유통망과 애프터서비스망을 확보하기는 쉽지 않아 보이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점차 시장 전체에 여파가 미칠 것"이라고 경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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