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중앙·동아, 박 대통령 방중 긍정 평가에 무게… 한미동맹 강화 등 숙제 지적

경향·한겨레 "中군사력 과시한 열병식"…외교적 성과보다 중국의 평화 노력에 초점

[데일리한국 이선아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3일 중국의 70주년 전승절 열병식을 참관한 것은 격동하는 동북아 정세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61년 전 북한 김일성 수상과 마오쩌둥 중국 국가주석이 섰던 천안문 성루에 박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자리잡은 것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요동치는 동북아 정세에서 우리 정부는 남북관계뿐 아니라 미국·중국·일본 등 주변 강국들과의 관계를 잘 풀어가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됐다.

중국 열병식을 다룬 언론들의 사설을 보면 보수·진보 언론 사이에 주어가 달랐다. 보수 언론의 주어는 '박 대통령'이었고, 진보 언론의 주어는 '중국'이었다. 조선·중앙·동아일보 등 보수 언론은 4일자 사설을 통해 박 대통령의 중국 방문 및 열병식 참관에 대해 한미동맹 관계에 대한 부담 등 미묘한 관계를 지적하면서도 큰틀에서 "한중관계 발전을 위한 실리적 선택"이었다고 긍정 평가에 무게를 두었다. 보수 언론들은 이어 "앞으로 강대국 사이에서 동북아 신질서를 위한 외교를 주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겨레·경향신문 등 진보 언론은 박 대통령의 외교보다는 중국의 세계 전략에 초점을 맞추면서 평화 노력을 촉구했다. 이 신문들은 시 주석이 '패권을 추구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데 대해 "주변국 시선에서는 여전히 의구심이 가시지 않고 있다"고 꼬집은 뒤 "중국이 평화를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초점 차이는 제목에서도 분명히 드러났다. 보수 언론의 사설 제목은 '중국의 힘 과시한 전승 행사, 그 현장의 대한민국 대통령'(조선), '한국의 외교 공간 확대한 박 대통령 열병식 참관'(중앙), '中 톈안먼에 선 박 대통령, '北 변화' 국제공조 끌어내야'(동아) 등이었다. 반면 진보 언론의 사설 제목은 '중국, 군사력 과시보다 평화 노력을'(한겨레) '중국, 군사 굴기만으로 세계 지도국가 될 수 없다'(경향신문) 등이었다.

조선일보는 이날 사설을 통해 한·중이 정식 외교 관계를 맺은 지 23년밖에 안 됐지만, 60년 넘게 중국과 혈맹관계로 불리던 북한보다 우리나라의 존재감이 전승절 행사에서 더 컸다는 점에 의미를 부여했다. 다만 "박 대통령의 전승 행사 참석이 한·중 관계를 새로운 차원으로 발전시켰지만 동시에 한·미 동맹을 비롯한 이 나라 외교의 곳곳에 적잖은 그늘과 부담을 안겼다는 점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특히 "중국과 함께 북한 문제를 풀어가고 양국 간 인적 경제 교류를 더 확대하는 것은 이 나라의 국운이 걸린 과제"라면서도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에서 중국 굴기(우뚝 섬)의 들러리처럼 비치는 것은 자멸을 재촉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설은 "박 대통령은 이 행사에 참석한 사실상 유일한 서방 진영 민주주의국가 지도자였다"면서 "한·미 동맹을 강화하면서 한·중 전략적 협력의 틀을 넓혀가고 일본 등 주변국과도 관계를 정상화하는 외교적 난제가 우리 앞에 닥쳤다"고 진단했다.

중앙일보는 사설에서 박 대통령이 한·미관계나 한·일관계의 외교적 부담 속에서도 열병식에 참석한 데 대해 "북한을 움직일 수 있는 최고의 지렛대는 역시 중국이라고 봤기 때문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꽉 막힌 한·일 관계를 한·중·일 3각 구도의 틀 속에서 풀기 위해서도 중국의 협력은 필수적"이라고 진단했다. 또 사설은 박 대통령의 이번 행보에 대해 "실리에 입각한 독자 외교의 조심스러운 첫발을 뗀 용기 있는 선택"이라고 평가했다. 사설은 다만 "대중 외교와 대미 외교가 제로섬 게임이 돼서는 곤란하다"며 "신뢰를 다지는 데 외교력을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아일보는 사설을 통해 "한국은 100년 전처럼 강대국 사이에 낀 '새우'가 될 수도 있고, 북중러-한미일의 냉전 구도를 깨고 미국을 포함한 동북아를 화해와 협력으로 이끄는 새로운 역할을 할 수도 있다"고 봤다. 사설은 "박 대통령은 한미동맹 못지않게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인 중국과의 우호 증진도 중요하다는 현실적 판단에 따라 방중의 결단을 내렸을 것"이라면서도 "중국 경도론이 현실화하는 것으로 오해받을 소지가 있다"고 우려했다. 동아는 그러면서 "북한 핵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 통일을 위해서도 중국의 건설적 역할이 필요한 만큼 박 대통령은 자유주의적 국제질서 아래 국익을 위한 외교의 당위성을 우방에 적극적으로 설명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설은 "한미 정상회담에 이어 한중일 정상회의가 열리고 박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첫 정상회담도 성사될 것으로 기대된다"며 "박 대통령은 동맹과의 핵심 가치를 공유하면서 유연하고도 실리적인 접근으로 국익과 동북아 신질서를 위한 외교를 주도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한편 한겨레는 사설에서 "이날 열병식이 여러 나라의 경계심을 자극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며 "미국과 일본 등 서방국이 전승절 행사에 거의 참석하지 않은 것도 이런 열병식 탓이 크다"고 진단했다. 또 "중국의 평화 의지를 의심하는 나라가 적지 않다"면서 남중국해에서의 영유권 분쟁 문제 등을 지적했다. 사설은 "중국이 국력 신장에 발맞춰 '대국'을 자처하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면서도 "각국의 이해가 엇갈리는 사안들을 힘으로 풀려고 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중국이 팽창주의적인 모습을 보인다면 자신이 비판해온 과거 제국주의 나라들과 다를 바 없다"고도 꼬집었다. 한겨레는 박 대통령의 외교적 성과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언급했다. 사설은 "균형외교로 우리나라의 국제적 발언권을 높였다고 할 수 있다"면서 "여기에 생긴 동력은 동아시아 평화와 한반도 관련 사안의 해결에 활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향신문은 사설에서 "덩샤오핑 전 국가주석이 제시한 중국의 대외 정책인 도광양회(몸을 낮추어 몰래 힘을 기름)을 탈피, 경제에 이어 군사적으로도 굴기했음을 만천하에 과시한 70분이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시 주석이 인민해방군 30만명 감축 계획을 밝힌 것과 관련 "중국을 보는 주변국의 시선에는 여전히 의구심이 가시지 않고 있다"며 "당장 중국은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 주변국들과 영유권 분쟁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동중국해 방공식별구역 확장을 일방적으로 선언한 데 이어 남중국해에 대규모 인공섬을 건설하는 작업도 계속하고 있다"며 "중국은 과거에 빼앗긴 해양주권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주변국들은 힘을 앞세운 패권주의로 인식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사설은 전승절 행사에 서방국의 정상들이 참석하지 않은 점을 거론하면서 "중국은 중국의 국력이 약해도 문제이지만 강해도 골칫거리라는 주변국의 인식을 불식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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