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 노력 차원에서 농담 종종 꺼내… 최근 잦은 유머가 불통 논란 해소 계기될지 주목

박근혜 대통령이 '박근혜식 유머'로 대중적인 소통 행보를 이어나가고 있다. 사진=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데일리한국 황혜진 기자] 요즘 박근혜 대통령이 유머를 얘기하는 경우가 잦아지고 있다. 과거에도 기분이 좋을 때나 적극적으로 일을 할 때 종종 농담을 꺼냈다. 남북 고위급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된 후 박 대통령은 새누리당 소속 의원 전원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 회동을 가졌다. 26일 진행된 이 회동에서 박 대통령은 여러 차례 유머를 구사하며 오찬 분위기를 여유 있게 풀어냈다.

이날 오찬에서 박 대통령은 '강남 스타일' 노래와 관련된 얘기로 운을 뗐다. 지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당시 행사 끝 무렵에 싸이의 ‘강남 스타일’ 노래가 나오자 말레이시아 총리가 “박 대통령이 함께 ‘말춤’을 추자고 하면 어떡하나 긴장했는데 다행히 그러지 않아 가슴을 쓸어내렸다”고 말한 일화를 전하며 참석한 의원들의 웃음을 이끌어냈다.

박 대통령은 이어 과거 유행했던 ‘부시맨 시리즈’ 개그를 소개했다. 코미디언 최양락 씨가 ‘미국의 부시 대통령을 만났는데, 부시맨이 아니더라’고 말한 유머를 소개한 것이다. 오찬 회동의 한 참석자는 "박 대통령의 유머에 새누리당 의원들이 박장대소로 화답했다"고 전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박 대통령이 그동안 수차례 말해온 유머들이 다시 거론되고 있다.

지난 13일에는 광복 70주년 특별사면을 위한 임시 국무회의가 열렸다. 이날 박 대통령은 회의 시작 12분 전에 먼저 회의장에 도착해 있었다. 황교안 총리가 회의장에 입장하자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이 “총리가 늦었습니다”라고 우스갯말을 던졌는데 박 대통령은 “이렇게 시간을 딱 지켰는데 늦었다는 얘기를 들으면 얼마나 억울하시겠어요?”라고 말했다. 이에 이 실장이 “대통령님보다 늦었다는 얘기”라고 대답하자 박 대통령은 “말을 그렇게 생략하시면 안 되죠”라며 “‘아버지가방에들어가신다’(처럼) 문맥이 아주 이상해집니다”라고 얘기해 황 총리 등 국무위원들이 배를 잡게 만들기도 했다.

또 박 대통령은 지난 제헌절에 전직 국회의원 모임인 '헌정회' 임원 20여 명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함께 한 자리에서 “개미와 코끼리가 결혼한 첫날밤에 코끼리가 개미 귀에 대고 뭐라 속삭이자 개미가 졸도를 했어요. 그 속삭인 말은 ‘나 같은 아들 하나 낳아줘’였답니다”라고 말해 모두 폭소를 터뜨리게 했다.

박 대통령은 공개 석상과 사석에서 종종 유머를 구사해 ‘박근혜 유머 시리즈’가 인터넷에서 회자되기도 한다. 듣는 사람들은 웃지만 정작 자신은 별로 웃지 않으면서 진지하게 얘기하는 경우도 적지 않아 '썰렁 개그' '썰렁 유머'라고 표현하는 사람들도 있다.

지난 5월 ‘문화가 있는 날’에는 박 대통령이 예술의전당에서 미술 전시회를 관람했다. 이때 '날아라 슈퍼보드'의 사오정 캐릭터 모형을 지나치자 박 대통령은 "사오정이 잘 안보이니까 눈이 나빠서, 선생님이 '너 왜 그래? 눈이 얼마야?' 이러니까 '제 눈 파는 게 아닌데요'라고 했다더라"라고 말하며 '사오정 시리즈'를 소개했다.

박 대통령은 2013년 청와대 출입기자 오찬에서 "돼지를 한 번에 굽는 방법이 뭔지 아느냐"고 물었고, 아무런 대답이 없자 "간단하다. 그거는 코에다 플러그를 꼽으면 된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박 대통령은 또 2014년에는 “시중에서 청와대 실세들끼리 다툰다고 하는데, 청와대 진짜 실세는 진돗개”라고 말해 참석자들의 폭소를 유도하기도 했다.

대통령 후보 시절 초년 기자들과의 만남에선 “'우리가 제일 미남이고 미녀다'는 말을 네 자로 말하면? 답은 '그걸 믿니'다”라는 우스갯소리를 던진 바 있다. 2010년 9월 14일 당 소속 여성 국회의원들과 오찬을 함께 하는 자리에서는 친이계 핵심 인사로 서먹해 하는 진수희 보건복지부 장관이 충청도 출신이라는 점을 언급하며 사투리 유머를 선보였다. 박 대통령은 "충청도 사람들이 말이 길다고 하는데 꼭 그렇지도 않다"면서 "'저와 춤 한 번 추실까요'라는 말을 충청도에선 '출껴'라고 한다. 얼마나 효율적이냐"고 말해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바꾸려 노력했다.

비상대책위원장 시절에는 SBS 예능프로그램 ‘힐링캠프’에 출연해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방법으로 ‘냉장고 문을 연다’, ‘코끼리를 넣는다’. ‘냉장고 문을 닫는다’ 등 세 가지 단계를 소개해 시청자들 사이에서 ‘썰렁 유머록’이 만들어지겠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또 2008년 한나라당 고참 기자들과의 모임에서는 지구본을 소재로 한 유머를 구사했다. 한 장학관이 어느 학교를 방문해 "지구본이 왜 기울어졌느냐"고 묻자 한 학생이 "제가 안 그랬어요."라고 대답했다. 교사는 "구입할 때부터 그랬어요."라고 거들었는데 이어 교장선생님은 "국산이 원래 그렇잖아요?"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과거 이미지가 차갑다거나 소통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기도 해 이같은 유머 구사를 통해 편안한 이미지를 주려고 노력해온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유머로 인해 몇 차례 논란이 일어난 바도 있다. 한 만찬 자리에서 박 대통령이 “식인종이 사람을 잡아와서 다리를 물었는데 너무 맛이 없었다. 알고 보니 의족(義足)이었다”고 말해 시쳇말로 ‘웃픈(웃기고도 슬픈) 유머’를 구사했던 것.

지난 25일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백악관 출입기자단과의 연례 만찬 자리에서 코미디언 키건 마이클 키를 ‘분노 통역사’로 초대해 화제가 됐다. 자신의 말을 코미디언이 동시통역하는 파격적인 방식의 연설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언론을 풍자하기도 하고 기후 변화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며 분노를 참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해 기자단의 끊임없는 웃음을 이끌어냈다. 유튜브에 올라온 이 연설 동영상은 조회 수가 280만 건을 돌파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사실 대통령의 유머가 매우 조심스럽다. 대통령이 근엄하고 진지한 모습을 보이길 바라는 문화가 있고, 늘 해결해야 할 문제를 안고 있는 국가 최고지도자가 농을 던질 여유가 있느냐는 비판으로부터도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유머와 농담으로 대중적인 소통 행보를 이어나가려고 하는 박 대통령이 이른바 ‘썰렁 유머’ 밖에 구사할 수 없는 것은 이 같은 연유가 작용했기 때문일 수 있다.

이런 가운데도 박 대통령은 국무위원이나 청와대 참모들로부터 대면 보고를 받기 보다는 서면 보고를 받는 경우가 적지 않아 여전히 소통 부족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박 대통령의 유머와 농담이 실제 '불통' 논란을 해소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여부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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