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전 장관, 행정학회 학술대회에서 '좋은 행정' 발제

메르스 사태·세월호 참사의 행정 난맥상 원인은 '행정 현장과 이론의 격차'

시행령 논란은 '정치 우위' 현상… '강한 행정' 되려면 보여주기 행정 멈춰야

박재완 성균관대 국정관리대학원장은 '2015년 하계 학술대회'에서 기조발제를 통해 "상대적으로 위상이 약해지고 있는 행정의 힘을 길러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 행정 현장과 행정학 사이의 괴리를 줄이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천안= 데일리한국 김소희 기자]박재완 성균관대 국정관리대학원장은 16일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와 세월호 참사 등에서 나타난 행정의 난맥상을 초래한 원인으로 행정 현장과 이론의 격차, 행정의 소통 부족 등을 지적했다. 이명박정부에서 청와대 국정기획수석과 기획재정부장관 등을 역임한 박 원장은 이날 한국행정학회(회장 임도빈 서울대 교수)가 상명대 천안캠퍼스에서 '좋은 행정'을 주제로 개최한 ‘2015년 하계 학술대회’에서 기조발제를 통해 "상대적으로 위상이 약해지고 있는 행정의 힘을 길러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 행정 현장과 행정학 사이의 괴리를 줄이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박 원장은 자신의 국정 경험을 거론하면서 “행정학이 시의적절하고 현실과 부합하다는 평을 듣기 위해서는 노력해야 할 것들이 참 많다”며 현실과 괴리된 한국 행정과 행정학의 문제점들을 되짚었다. 박 원장은 행정 현장과 이론의 격차가 커지는 주요 원인은 행정 관료의 짧은 재임 기간에 있다고 분석했다. 박 원장은 “대통령은 단임이며, 단체장의 경우에도 4분의 1이 재보선으로 선출되고 3선 임기로 제한됐다”며 “전두환 대통령 때는 경제수석도 몇 년씩 하고, 행정실장도 몇 년씩 했지만 지금은 행정직을 2년 정도 했으면 굉장히 오래 했다고 얘기할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사실 포스코가 공기업임에도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출 수 있었던 것은 박태준 전 회장의 장기 재임 때문"이라며 " 18년 간 재임하면서 포스코에 주인의식이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임기가 짧으면 행정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면서 "새로운 관료가 애써 바뀐 것에 적응하려고 하면 시간과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출자총액제한과 금산 분리, 해양수산부 폐지·부활 등 최근 정책이 번복된 사례를 들어 일관성 없는 정책의 문제점을 거론했다.

박 원장은 메르스 사태와 세월호 참사 과정에서 부처 간 협업이 난맥상을 보인 것도 '행정과 이론의 격차 확대'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실무자와 행정관료의 상호 소통이 부족한 것이 행정 시스템의 문제점을 악화시킨다”며 “실무자와 행정관료가 만나는 기회가 적으면 팀워크가 좋지 않게 되고 집단지성의 토양이 약화된다"고 말했다. 메르스 사태는 이같은 문제점이 종합적으로 나타난 사례라는 게 박 원장의 설명이다.

메르스 사태의 경우 보건복지부는 세종시에 있지만 질병관리본부는 청주시에 있고, 국민안전처는 서울에 있다. 이에 대해 박 원장은 “행정 부처 간의 거리도 멀고 평택성모병원·삼성병원 등 문제의 병원들도 전국에 흩어져 있던 판국에 청와대는 '빨리 일을 처리하라'고 압박하니 행정 부처는 삼각형이 아닌 오각형 시스템에서 일을 처리해야 해서 상당히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원장은 최근 국회의 행정부 시행령 수정 요구권을 담은 국회법 논란이 있었던 점을 거론하면서 '행정 우위'에서 '정치 우위'의 시대로 이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행정이 사법에 의존하는 정도가 커졌다는 점도 지적했다. 박 원장은 “일각에서는 행정이 정치의 종속변수가 되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존재한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와 행정이 한 묶음이기에 개발독재시대에 관료들이 주도하고 결정했던 시대가 마감된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지만 이 모든 게 ‘정치 우위’를 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시행령 수정 요구 관련 파동도 대통령이 손발을 뜯어고치고 진두지휘해 마무리했지만 국정의 무게 중심이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 사례”라고 말했다.

대법원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선거법 위반 의혹에 대해 유죄를 인정한 원심을 파기 환송한 것과 관련, 박 원장은 "이처럼 사법 판결 자체도 일관된 흐름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고, 판사의 성향에 따라 좌지우지 된다”며 “내가 고용노동부 장관으로 있을 때도 유사한 사건에 대해 정반대의 판결이 나오는 것을 봤다"고 말했다. 그는 "개발 시대와 달리 굉장히 어수선한 국면에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행정부의 입장에서 도대체 어떻게 지도해야 할지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박 원장은 ‘정치 우위’로 행정의 힘이 약화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대증 요법’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 ‘반값이냐 무상이냐’ 하는 시리즈가 말해주듯이 현실 적합성이나 지속 가능성을 검증하기 전에 유권자가 원하는 게 뭐냐가 행정에 반영되고 있다”며 “정책이나 행정 논리는 주목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세금 폭탄 VS 부자 감세’ 등 지극히 감성을 자극하는 용어들이 난무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박 원장은 이어 "따라서 ‘식물국회’로 가면 안 되고, ‘영혼 없는 관료’라는 평에서 벗어나기 위해 보여주기식 행정을 멈추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행정의 위상이 약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강한 행정’이 되기 위해선 많은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는 게 박 원장의 생각이다.

그는 행정부가 적극 노력하고, 여·야·청이 힘을 합쳐야 대한민국의 ‘강한 행정’이 가능하다고 역설했다. 박 원장은 “헌법 제57조에는 ‘국회는 정부의 동의 없이는 정부가 내놓은 지출 예산에 나타난 어떠한 항목의 금액을 늘리거나 거기에 새로운 비용 항목을 만들어 넣어서는 안 된다’고 명시돼 있다"면서 “내가 현장에서 일할 때 녹색성장기본법 서명을 하자고 해도 야당이 안 와서 결국 여당과 청와대만 만나 함께 서명했다”고 소개했다. 이러한 경험을 토대로 박 원장은 “여·야가 지금의 불신과 통제에 입각한 ‘낮은 길’에서 벗어나 자유와 신뢰의 ‘높은 길’로 가기 위해 함께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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