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 사고→앙심→올무→증거 의문" 단계적 변화

심경 전하다가 검찰 소환 앞두고 적극적 방어 논리

[데일리한국 조옥희 기자]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1억원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홍준표 경남지사의 최근 출근길 해명 발언 변천사가 주목을 끌고 있다. 홍 지사는 지난 보름 동안 출근길에서 ‘성완종 리스트’와 관련한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조금씩 발언을 바꿔왔다. 최초 발언부터 일단 잡아떼고 보는 일반적인 뇌물수수 사건 당사자들과는 다르게 반응한 그는 검찰의 사건 수사가 진행되자 성 전 회장이 남긴 메모의 신빙성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어 검찰 소환이 임박하자 검찰과 재판부를 향해 메시지를 보내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정교하게 계산된 발언도 나왔다. 이를 두고 정가에서는 "홍 지사가 자신을 향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자 수사와 재판에 본격 대비하는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홍 지사는 성 전 회장이 숨진 채 발견된 다음 날인 지난달 10일 경남도청 프레스센터에서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내 이름이 왜 거기에 있는지 모르겠다"면서도 "그러나 돌아가신 분이 악의나 허위로 썼다고는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중진 정치인 이상이 되고, 어느 정도 위치를 점한 사람한테 로비하려는데 직접 연결되지 않으면 주변 사람을 통해 로비하는 경우가 있다"며 "정치판에는 왕왕 이런 경우가 있다. 로비했다고 해서 전부 본인과 연결됐다고는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누군가 자신을 빙자해 금품을 수수했을 수도 있다는 '배달 사고'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이후 16일 출근길에선 "메모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모두 부탁을 거절한 사람이다. 소위 청탁을 안 들어준 사람이 메모에 다 올랐다"며 "저만 하더라도 2013년인가, 2014년인가 (성 전 회장이) 선거법 위반을 봐 달라고 할 때 곤란하다고 거절한 적이 있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고인이 왜 그런 메모를 하고 돌아가셨는지, 무슨 억하심정으로 메모를 남기고 돌아가셨는지 거기에 대해 알 길이 없죠"라며 나름대로 리스트에 자신의 이름이 오른 이유를 추론하면서 난감한 심정을 표현했다.

홍 지사는 검찰 수사가 진척되던 21일과 23일에는 성 전 회장의 메모를 '올무'에 비유하는 등 강한 표현을 동원하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는 "지금 내가 성완종 리스트란 올무에 얽혀 있다. (내가) 왜 이런 올무에 얽히게 됐는지 그것을 다시 한번 검토해 보고 있다"며 “그 올무가 정치적 올무일 수도 있고 사법적 올무일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올무에 걸린 짐승이 빠져나가려고 몸부림을 치면 올무가 더 옥죄어 든다. 올무에 얽혔다고 해서 흥분하고 자제심을 잃으면 그 올무는 더 옥죄어 든다"면서 "올무에 걸렸을 때는 차분하게 올무를 풀 방안을 마련하고 대처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향해 하는 듯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검찰 수사가 본격화된 지난달 29일부터 5월 1일 사이에는 검사 출신답게 메모의 증거 능력에 의문을 표시하는 등 적극적 방어 논리를 폈다. 홍 지사는 "여론 재판하고 사법 절차는 다르다. 사법 절차는 증거 재판"이라며 "성 전 회장이 자살하면서 쓴 일방적인 메모는 반대 심문권이 보장돼 있지 않기 때문에 무조건 증거로 사용하기가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통상적으로 임종의 진술은 무조건 증거 능력으로 인정한다"면서 "그러나 망자 증언의 진실성은 수사 절차에서 반대 심문권을 행사해 따져야 하는데, 따질 기회가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홍 지사는 "성 전 회장의 메모나 녹취록은 (형사소송법상) '특신 상태'(특별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에서 작성된 것이 아니므로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홍 지사는 또 "(성 전 회장의) 언론(경향신문) 인터뷰 내용 전문을 보면 거기에는 허위, 과장과 격한 감정이 개입돼 있기 때문에 특신 상태라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결국 망자와의 진실 게임이기 때문에 반대 심문권을 통해 진실 여부를 확인할 방법이 없다"면서 "이 때문에 검찰도 답답할 것이고 저도 답답하다"고 검찰 조사와 자신의 방어권 행사가 모두 쉽지 않음을 에둘러 표현했다.

지난 주말에 돈 전달자로 지목된 윤승모 전 경남기업 부사장이 검찰 조사를 받고, 자신의 측근도 검찰에 불려가는 등 검찰의 칼 끝이 자신에게로 향하자 적극적인 방어 논리로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홍 지사는 3일엔 출근길 발언은 아니지만 보다 공격적인 언급을 하기도 했다.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번에는 팻감으로 사용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사실상 결백을 주장한 것이다. 그는 “ 20여 년 전 선거법 위반 재정신청 사건에서 나는 팻감으로 사용된 적이 있다"며 "한보 청문회 때 고 김학원 의원이 박경식씨를 신문하면서 나를 팻감으로 야당에 넘겨주면서 나에 대한 재정신청 사건을 받아들였다고 밝힌 일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것은 국회 속기록에도 남아 있다"고 언급했다.

한편 홍 지사는 성 전 회장과 만남에 대해 '2011년 한 차례'였다고 했다가 '2010년과 2011년 두 차례'인 것으로 수정했다. 2011년 6월쯤 성 전 회장을 서산 대의원대회에서 처음 봤다고 말했는데 기억에 착오가 있었다고 해명한 것이다. 그는 “한 의원의 수행비서가 최근에 연락해 2011년이 잘못됐다고 지적해 기억을 더듬어 보니 2010년이 옳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고 설명했다.

홍 지사는 "한나라당 전당대회를 2010년과 2011년 두번 했는데, 성 전 회장를 처음 본 것은 2010년 전당대회를 앞둔 6월 장마철이었다. 모 의원의 지역구 당원 대의원 대회에 초청받아 선거운동을 하러 갔다가 천안에 있는 한 식당 인근에서 성완종씨를 만나 선 채로 악수하며 1,2분 간 인사를 나눴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어 "2011년 11월 디도스 사건 당시 정신이 없을 때 국회 대표실에서 성 전 회장을 수행원들과 함께 만난 적이 있다"고 말해 이전과 달리 성 전 회장을 두 차례 만났음을 밝혔다.

홍 지사는 이와 함께 금품 수수 의혹의 열쇠를 쥔 '돈 전달자'로 지목되는 윤 모씨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그는 "2010년과 2011년 한나라당 대표 최고위원 경선 때 저를 도와준 고마운 분"이라고 조심스럽게 언급하면서도 "제 측근이 아니고 성완종씨 측근"이라고 말해왔다. 또 최근에는 윤씨에 대해 '사자(死者)의 사자(使者)일 뿐'이라며 성 전 회장의 입장만을 대변하고 있다는 뉘앙스로 평가절하했다.

저작권자 © 데일리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