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YTN 방송화면 캡처
[데일리한국 이선아 기자] '충청권의 맹주'이자 차기 대권 주자로도 거론됐던 이완구 국무총리가 27일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이 총리는 이날 박근혜 대통령이 사표를 수리한 뒤 종합청사에서 가진 이임식에서 "진실은 반드시 밝혀질 것"이라며 "여백 남기고 떠난다"고 말했다.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일이 없다는 기존의 입장을 재차 강조한 것이다. 이 총리는 이어 "국민 여러분께 심려끼쳐 송구하다"고 사과했다. 그러면서 총리실 직원들과 기념촬영을 하는 자리에서는 눈가에 이슬이 맺히기도 했다.

이 총리는 지난 2월17일 취임한 지 70일만에 자리에서 물러나 사실상 최단명 총리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과거 재임 기간이 가장 짧은 총리는 허정 전 총리로, 1960년 6월15일 취임해 65일 동안 총리를 맡았다. 하지만 허 전 총리는 4·19 혁명 직후 혼란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임시 총리라는 점에서 상황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이 총리가 1980년대 들어 대통령 단임제 실시 이후 가장 짧은 기간 재임한 총리로 기록됐다.

충남 지사 출신의 이 총리는 '포스트 JP'(김종필 전 국무총리)로 통할 만큼 충청지역을 대표하는 정치인으로 각광을 받았다. 이 총리는 지난 1974년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기획재정부의 전신인 경제기획원에서 잠시 근무하다 치안 분야로 자리를 옮겨 경찰서장을 지냈다. 이 총리는 충남지방경찰청장을 거쳐 15대 국회에서 처음으로 국회에 입성했고 16대 국회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2006년에는 3선 의원 대신 당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소속으로 충남지사에 도전해 당선됐다. 이후 2009년 12월 이명박 정부가 세종시 수정안을 추진하자 지사직을 전격 사퇴해 중앙 정치 무대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야인이 된 이 총리는 2012년 4·11 총선을 통해 재기를 노렸으나, 그 해 1월 혈액암의 일종인 다발성골수종 판정을 받고 꿈을 접어야 했다.

그렇지만 목숨이 위태로운 위기를 극복하고 2013년 4·24 재·보궐선거에서 무려 77.4%라는 압도적인 득표율로 당선돼 여의도 정치에 화려하게 복귀했다. 2014년 원내대표 경선 당시 '원조 친박'(원조 친박근혜)계가 아닌 '범박'(범박근혜계)'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투표 없이 원내대표로 추대됐다. 7개월 동안 원내 사령탑으로 재직하며 '세월호 특별법' 합의와 12년만에 예산안 법정시한 내 처리를 이끌어내며 '뚝심'을 과시했다.

당시 이 총리는 이 후보자의 성을 따 '2PM'(Prime Minister·총리)이라는 별칭이 붙을 만큼 일찌감치 총리 후보자로 낙점이 됐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청문회 과정에서 병역 면제 의혹과 언론 외압 의혹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결국 국회 인준을 통과하게 된다. 이후 이 총리는 지난 2월17일 총리에 정식 취임하면서 '충청권 대망론'의 중심에서 일약 차기 대선 주자 가운데 하나로 올라섰다.

이 총리는 특히 노무현 정부의 '이해찬 전 총리' 이후 최고의 '실세 총리' 또는 '힘 있는 총리'라고 불리며, 국정 운영에 열의를 보였다. 그렇지만 지난 10일 '성완종 리스트' 파문이라는 예상치 못한 돌발 변수를 만났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3,000만원을 받았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무엇보다 각종 의혹에 대한 해명 과정에서 '말 바꾸기 논란'이 불거졌고, 결국 '사퇴 압박'을 버텨내지 못한 채 취임 이후 두달여 만에 총리직에서 물러나게 됐다. 혈액암이라는 생사의 경계를 넘어섰고, 인사청문회 고비를 돌파한 이 총리가 결국 '성완종 리스트'라는 예상치 못한 파고 속에서 정치 생명의 최대 위기를 맞게 됐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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