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시절 각별했던 관계… 시간 지나 적으로 변화

재보선 승패에 따라 세 사람 정치적 명운 확연히 갈려

4ㆍ29 재보궐선거를 둘러싸고 문재인(왼쪽)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와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 천정배 전 법무부 장관의 돌고 도는 정치적 인연이 새삼 주목을 끌고 있다.
[데일리한국 조옥희 기자] 4ㆍ29 재보궐선거를 둘러싸고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와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 천정배 전 법무부 장관의 돌고 도는 정치적 인연이 새삼 주목을 끌고 있다.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와 내각에서 함께 손을 맞췄던 세 사람이 이번 선거에서는 정치적 명운을 건 외나무다리 싸움을 벌이고 있어서다. 정 전 장관은 새정치연합에 대한 심판을 내세운 국민모임 후보로 서울 관악을에 출마했고, 천 전 장관은 호남 정치 복원을 주장하며 야권 심장부인 광주 서구을에 무소속 후보로 나선 상황이다. 정치권에서는 과거 ‘천신정(천정배, 신기남, 정동영)’이라 불리며 정풍운동을 이끌었던 두 사람이 이제는 ‘반(反) 새정치연합’을 기치로 문 대표에게 칼을 겨눈 모양새가 연출됐다는 평가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은 서로 진검승부를 벌이는 적대적 관계가 된 것이다.

세 사람은 노무현 대통령 당선 당시에는 일심동체였다. 2002년 대선 때 노무현 민주당 후보 캠프에서 문 대표는 부산선대위 상임본부장으로, 정 전 장관은 국민참여운동본부장으로 활약했다. 문 대표는 노 전 대통령이 대선 바로 전날 종로 유세 현장에서 "여기 추미애와 정동영도 있다"며 정 전 장관을 차기 대권주자로 치켜세울 때도 함께 했다. 천 전 장관 역시 당시 현역 의원으로서는 처음으로 노 전 대통령을 공개 지지하며 문 대표와 좋은 연을 맺었다. 이후 문 대표는 청와대에서 민정수석, 비서실장을 지냈고 정-천 전 장관은 각각 내각에서 통일부, 법무부 장관을 지내며 같은 편에 서 있었다.

이랬던 이들의 관계가 돌이킬 수 없게 된 때는 2007년 열린우리당 해체 국면에서다. 대선을 앞두고 정-천 전 장관이 탈노(탈노무현)를 내걸고 열린우리당을 탈당해 대통합민주신당을 꾸려 나간 게 결정적인 계기였다. 이후 문 대표는 2011년에 펴낸 자서전 ‘운명’에서 대통령 비서실장 자리에서 지켜본 당시의 상황을 회고하며 강한 서운함을 드러낸 바 있다. 문 대표는 “아무리 정치판이라지만 대의나 원칙은커녕 최소한의 정치적 신의나 인간적 도리조차 사라진 듯했다”며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을 만들었던 핵심 인물들이 더 심했다. 특히 대통령의 기대를 한몸에 받던 정동영 전 의장의 행보는 이해할 수 없었다”고 비판했다.

이후 세 사람은 2012년 대선 당시 정권 교체를 기치로 협력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문재인 후보 대선 캠프에서 정 전 장관을 남북경제연합위원회 위원장에 선임한 것이다. 지난 17대 대선 후보이자 비노 진영의 상징적 인물인 정 전 장관을 대북 정책 구상의 핵심 위원회의 수장으로 선택하면서 잠시 관계가 회복되는 듯했다. 천 전 장관은 당시 문 후보와 대선 후보 경선을 벌인 김두관 전 지사를 도왔다. 문 후보가 경선에서 이긴 이후로도 적극적이진 않지만 당 내에서 일정 역할을 했다. 하지만 지난 2월 문 대표가 취임하면서 정-천 전 장관들은 한달여만에 모두 당을 떠났다.

이에 야권에서는 이번 재보선이 세 사람 사이에 물고 물리는 관계를 매듭짓는 종지부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선거 결과에 따라 세 사람의 정치적 운명이 확연히 갈라질 것이란 얘기다. 문재인호 출범 후 첫 선거를 치르는 문 대표는 정-천 장관 두 사람에게 모두 패한다면 치명상을 입는 것은 자명하다. 둘 중 한 사람에게만 져도 내상은 불가피하다. 정-천 전 장관이 나온 지역인 모두 새정치연합의 존립 기반이라는 점이 하나의 이유고, 지난 정치 세월 동안 두 사람이 문 대표와 대체적으로 대립해왔다는 점에서 향후 총선 대선의 행보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게 뻔하기 때문이다. 반면 정-천 전 장관 두 사람은 선거에서 이긴다면 새정치연합의 견제 세력으로 야권 지형재편에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지만 질 경우 정치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다. 어느 한 쪽도 질 수 없는 싸움을 벌여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이렇듯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 원수를 맞닥뜨린' 형국을 맞은 세 사람이어서인지 신경전도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정 전 장관은 지난달 31일 문 대표를 향해 “여야 통틀어 공개적으로 반성문을 쓰고 정치한 사람으로는 제가 유일하다"며 "문 대표는 참여정부 시기 심화된 양극화에 대한 책임을 지고 반성문부터 내놓아야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천 전 장관 역시 1일 지역 언론을 통해 “새정치연합은 정권교체에 실패해도 반성도, 쇄신도, 책임도 지지 않는다”면서 “그 중심에는 계파 독점 패권주의 정치가 있다”고 문 대표를 정면 겨냥했다.

문 대표도 지지 않았다. 그는 이날 광주를 직접 찾아 “우리가 맞설 대상은 상대 후보가 아니라 우리 당의 낡은 과거”라며 사실상 천 전 장관을 낡은 과거로 폄하했다. 정 전 장관에 대해서도 문 대표는 최근 “이번 재보선에서 박근혜 정권을 심판하고 정권 교체의 발판을 만들어 나가자는 것인데 야권을 분열시키는 행태가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고 비판했다. 세사람의 물고물리는 인연의 결말이 어떻게 그려질지에 많은 이들이 궁금해하고 있다. 재보선까지는 이제 한달도 안남았다.

저작권자 © 데일리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