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 30년 경과된 1984년도 외교문서 26만쪽 공개

당시 일본에서도 일왕의 과거사 언급 불가피하다는 인식

정부 "일본의 양보나 선심으로 안 보이도록 의연 대처" 지시

전두환 전 대통령
[데일리한국 김종민 기자]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처음 이뤄진 전두환 전 대통령의 1984년 국빈 일본 방문 당시 히로히토(裕仁) 일왕(日王)이 과거사에 대해 첫 '유감' 표명을 했던 당시 치열한 물밑 외교전이 있었다는 사실이 30일 외교부가 공개한 외교문서를 통해 확인됐다. 또 당시 일본에서도 일왕의 과거사 언급이 불가피하다고 인식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외교부가 30일 공개한 외교문서에 따르면 우리 정부는 관계 부처 회의를 통해 1984년 1월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당시 일본 총리의 전년도 공식 방한에 대한 답방 형식으로 전두환 당시 대통령의 일본 방문을 추진하는 '무궁화 계획'을 수립했다. 주한 일본대사를 통해 계획을 통보했으며 일본 측도 이에 환영의 입장을 밝혔다. 이후 우리 정상의 첫 국빈 일본 방문의 의제를 놓고 양측은 본격 교섭에 들어갔다. 첫 국빈 방문인 만큼 일왕의 과거사 언급 문제가 주요 관심사가 됐다.

정부는 '무궁화 계획 대일 교섭 지침'에서 일왕의 과거사 반성 문제에 대해 "방일의 대전제이며 한일관계 미래상 정립의 전제이므로 반드시 있어야 한다"면서 "국민 감정 등을 감안, 최대한 강한 어조로 반성을 확보해야 방일 자체에 대한 국민의 납득을 구할 수 있다"고 입장을 정리했다. 구체적으로 발언 내용에 대해서는 "과거의 불행한 역사에 대한 솔직한 인정, 유감 표명 및 깊은 반성 내지 통감, 금후의 겸허한 자세" 등으로, 발언 형식으로는 "공식 발언 문서화 또는 최소한 만찬사에 포함"을 각각 입장으로 정했다.

외무부는 이후 작성된 '무궁화 계획 참고 사항' 문서에서 일왕의 반성에 대해 "식민지 시대 울분 청산"이란 의미를 부여하면서 "한일 관계 특수성과 민족 감정을 고려할 때 유감 표현만으로는 불충분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런 입장에 대해 "일본측도 천왕(일왕)에 의한 과거사 언급은 불가피한 것으로 본다"고 우리 정부는 파악했다.

그러나 일본은 일왕 발언을 외교적 교섭 사항으로 보지 않는다는 입장을 대외적으로 취했으며 언급 내용과 방법 역시 품위를 유지하는 선에서 행할 것이라는 태도를 보였다. 이후 우리 정부는 "일본 측이 반성은 틀림없이 적절히 처리할 것임을 표명하였으므로 더이상 거론할 필요는 없다"면서 "과거사 문제가 교섭 쟁점이 된 것 같은 인상을 줘선 안된다"고 지시했다. 정부는 이와 함께 "반성이 우리 측에 대한 일본의 양보나 선심으로 이뤄지는 것으로 보이지 않도록 의연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밝혔다.

우리 정상의 방일이 가까워지면서 일왕의 과거사 발언과 관련해 일본 언론에서는 일왕이 '시이나' 선을 고려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우리 정부는 일본이 언론을 통해 여론의 반응을 보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시이나 선은 시이나 에쓰사부로(椎名悅三郞) 일본 외무상이 1965년 2월 한일 관계를 정상화하는 기본 조약에 가서명한 후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과거 불행한 과거에 연유한 한국 국민의 반일 감정에 대한 우리측의 설명에 대해 "그같은 과거 관계에 대해 유감의 뜻을 표하며 깊이 반성한다"고 밝힌 것을 뜻한다.

우리 측은 일본이 방일을 일주일 정도 앞둔 시점에서도 일왕이 어느 자리에서 어떤 수준의 과거사 언급을 할지 일본이 확인해주지 않자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가 나오면 국내적으로 큰 영향을 미친다"면서 비공식으로 조속히 발언 내용을 통보해줄 것을 요청했다. 일본은 우리 정상의 국빈 방문 일정(1984년 9월 6∼8일)이 시작되기 전날 일왕의 만찬사 등을 우리 측에 통보했다.

히로히토(裕仁) 일왕은 9월 6일 만찬에서 "금세기의 한 시기에 있어 양국 간 불행한 역사가 있었던 것은 진심으로 유감이며 다시는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고 언급했다. 식민 지배의 상징적 존재인 일왕이 우리나라와 관련한 과거사 발언을 한 것은 이 때가 처음이었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는 당국자 논평을 통해 "천왕이 우리 국가 원수를 대면해서 과거에 대한 반성을 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평가했다.

한편, 외교부는 이날 '외교문서 공개에 관한 규칙(부령)'에 따라 30년이 지난 외교문서를 공개했다. 이번에 봉인이 해제된 문서는 1984년도 문서를 중심으로 총 1,597권 분량으로 26만여쪽에 달한다.

이날 공개된 문서에는 ▲북한이 1980년대 유엔 인권협약기구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압 등을 거론하며 남한의 인권 상황을 비난하자 정부가 당시 긴급 대응에 나섰던 내용 ▲1984년 한일 정상 간 직통 전화 첫 개설 ▲전두환 전 대통령 방일 직후 '한중-북일 교차 승인' 구상 추진 ▲KAL기 사건 때 소련 외교관 접촉 금지 지침 ▲1984년 '김일성 조기 퇴진설' 대비 계획 등과 관련된 문서들이 포함돼 있다.

공개 외교문서의 원문은 외교사료관 외교문서열람실에서 열람과 출력이 가능하며, 외교문서 공개 목록 책자는 주요 연구기관·도서관 등에 배포돼 국내·외 어디서든 확인할 수 있다. 또 외교사료관 홈페이지와 모바일을 통하여 1984년도 외교문서목록 DB와 원문 해제(解題)를 개방·공유할 예정이다.

저작권자 © 데일리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