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당국자 "한국, 3월 지나기 전에 AIIB 창설 멤버로 가입"

유럽 주요국 잇따라 AIIB 참여 선언, 한국의 가입 선언 불가피

미국 요구 거센데다 북한 미사일 위협으로 사드 배치 결정할 듯

사진=채널A 방송화면 캡처
[데일리한국 이선아 기자]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THAAD) 한반도 배치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참여 문제를 놓고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한국 정부가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사드 배치는 미국이 우리에게 요구하지만 중국이 극력 반대하고 있고, AIIB는 중국이 우리의 참여를 희망하지만 미국이 난색을 표시하고 있어 우리 정부의 슬기로운 대처가 절실한 상황이다.

이와 관련 정부 고위 당국자는 19일 "관계 부처들이 경제적 득실 등을 논의한 끝에 3월이 지나기 전에 AIIB에 창설 멤버로 가입하는 게 유리하다는 의견이 많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청와대는 전날 "지금 단계에서는 AIIB 참여 문제에 대해 결정된 바가 없다"고 말했으나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3월 말이 데드라인이기 때문에 그전에 (AIIB 참여와 관련한) 정부 방침을 정해 입장을 알리도록 하겠다"고 언급했다. 이에 따라 기획재정부, 외교부 등 관계 부처 핵심 관계자들이 조만간 모여 가입 조건 등을 최종 조율한 뒤 AIIB 가입을 공식 선언할 가능성이 크다. 기획재정부는 중국과 지속적으로 협상을 벌이면서 막바지 준비 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미국의 반대에도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호주 등 유럽을 포함한 서방의 동맹국들이 잇따라 AIIB 참여를 전격 선언함에 따라 미국도 더 이상 한국의 가입을 막을 명분이 사라진 상황이다. 정부의 한 소식통은 이날 "그동안 동맹국들의 참여에 대해서 부정적 견해를 보였던 미국의 입장을 고려해 참여 결정 의사를 전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AIIB에 대해 부처 간 협의가 진행 중"이라는 말로 즉답을 피했으나, AIIB에 우리나라만 불참할 경우 향후 경제적으로 큰 불이익이 뒤따를 것이라는 판단 아래 대다수 부처가 가입에 찬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AIIB에 가입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유럽까지 이어질 대규모 건설 공사에 한국 기업이 참여할 기회를 얻는 게 경제적으로 이득이 크다고 판단한 것이다.

AIIB 가입에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미국의 반대도 이젠 힘을 잃고 있는 형국이다.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 국가들이 잇따라 AIIB 참여 선언을 하고 나섰기 때문에 더이상 한국에 압박을 가하기가 어려워졌다. 실제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AIIB 가입 여부는 주권국이 결정할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중국이 한국의 AIIB 가입을 원하고 있다는 질문에 "한국을 포함한 각 주권국이 결정할 문제"라며 사실상 더 이상의 반대 의사를 표시하지 않았다. 앞서 지난해 7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방한 당시 시 주석이 한국의 AIIB 가입을 권유하고 박근혜 대통령이 전향적 반응을 보이자 미국이 반발하며 가입을 반대했을 때와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다.

이를 놓고 중국 내에서는 미국과의 AIIB 경쟁에서 승리했다고 평가하는 분위기다. 이날 중국 언론들은 유럽 국가들이 AIIB 가입을 선언한 것을 두고 "중국의 힘을 일으키는 굴기를 억제하기 위한 미국의 능력이 부족하다는 점을 증명한다"면서 "중국은 AIIB 경쟁에서 미국을 이겼고 동시에 중요한 미래 권리를 획득했다"고 보도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AIIB 가입은 사실상 선언만 남았다고 봐야 한다.

문제는 사드 배치다. 미국이 한국의 AIIB 가입을 묵인하는 대신 사드의 한반도 배치에 대해서는 전방위적으로 압박을 가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중국이 반대하고 있는 사드의 한반도 배치와 관련해선 한국과 미국이 내달부터 본격적으로 논의에 들어갈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다음달 중순 워싱턴에서 열리는 제7차 한미통합국방협의체(KIDD) 고위급 회의때 사드의 한반도 배치 문제를 공식적으로 제기할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달 애슈턴 카터 신임 미국 국방장관과 존 케리 국무장관도 잇따라 한국을 방문해 외교·안보 장관회담을 갖기로 하는 등 미국은 사드 배치를 위해 총력전을 펴고 있다. 새누리당도 청와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드 배치 공론화에 불을 지피고 있다. 사드 배치 찬성론자인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정책의총을 통해 당내 의견을 수렴한 뒤 청와대와 정부에 전달하겠다는 의사를 당·정·청 정책조정협의회에서 재확인한 바 있다. 때문에 사드 배치 공론화를 반대하는 청와대·정부와 각을 세운 것처럼 보였는데, 유 원내대표가 최근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한민구 국방부 장관을 각각 만나 사드 배치 문제를 논의하는 등 물밑에서 긴밀하게 조율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이 AIIB 가입 묵인을 고리로 사드 배치를 강력히 주문할 경우 사실 동북아의 강국들 사이에 있는 우리 정부도 이를 거부하기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다만 이 경우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중국 측과의 관계를 어떻게 원만하게 풀어가느냐 하는 문제가 남아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은 한미동맹 관계를 맺고 있는 미국뿐 아니라 최대 경제교역국으로 전략적 동반자 관계인 중국과도 모두 잘 지내야 하는 위치에 있다"면서 "결국 우리나라는 주변국과의 입장을 고려해 사드는 미국의 뜻대로, AIIB는 중국의 뜻대로 하는 방식으로 미묘한 외교 관계를 정리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미국은 사드 배치를 요구하면서 AIIB 가입을 반대해왔고, 중국은 사드 배치를 반대하면서 AIIB 가입을 권유해왔기 때문에 양측의 의견을 절반씩 들어주는 외교 전략을 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다만 AIIB 참여는 경제적 문제이고 미국을 직접 겨냥하는 것으로 볼 수 없지만, 사드의 한반도 배치 문제는 정치·군사적 문제인데다 미국의 대중국 전략의 일환으로 해석될 수 있어서 중국이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따라서 두 가지 현안을 동일선상에 놓고 바라보는 전략 설정에도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 정부는 주도적으로 이 문제를 다루되, 중국 등 주변국에 "사드가 북한 핵과 미사일로 위협 받고 있는 한국의 안보를 위해 꼭 필요하고, 사드가 중국 등 주변국을 겨냥한 게 아니다"라는 점을 충분히 알려 설득하는 외교적 테크닉을 발휘해야 한다. G2 양국의 갈등 속에서 어떻게 대처해가느냐가 3년 차를 맞은 박근혜정부의 외교 성패를 가르는 중요한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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