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원자 직업란 '자영업'… 신원 파악 어려운 건수 73%

의원들간 기부 사례에 갑을관계 의심될 수 있는 경우도

사진=SBS 방송화면 캡처
[데일리한국 조옥희 기자]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정보공개 청구에 따라 3일 ‘2014년도 국회의원 후원금 모금액' 자료를 공개한 가운데 신원을 모호하게 기재한 채 국회의원에게 정치 자금을 후원하는 ‘깜깜이 후원’의 관행이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친분이 있는 국회의원들 간 ‘품앗이 기부’와 정치권 내 갑을관계를 의심하게 하는 기부 악습도 사라지지 않았다. 이는 그간 정치권 안팎에서 지적되던 문제점들이 이번 후원금 모금 과정에서도 여실히 드러난 셈이어서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우선 후원인이 직업란에 막연하게 '자영업'이나 '회사원’, '사업' 등 직업을 구체적으로 적시하지 않은 사례가 많았다. 그중 '자영업'으로 기재한 건수가 1,232건으로 가장 많았다. '회사원'은 693건이었고 업체 명을 적지 않은 채 '사업가'('사업', '사업자' 포함 147건), '기타'(119건), '대표'(대표이사 포함 101건), '기업인'(86건) 등으로 두루뭉술하게 표현한 후원자도 적지 않았다. 아예 직업란을 공란으로 남긴 건수도 121건이었다.

주소를 기재하지 않은 건수는 47건이었고, 이 중 17건은 전화번호도 없이 달랑 이름만 써냈다. 이처럼 직업이 불분명하거나 주소·전화번호가 없어 후원자의 신원 파악이 어려운 건수도 전체(3,421건)의 73%에 달했다. 이에 정치자금 후원자의 인적사항을 구체적으로 기재토록 한 현행법 조항에 강제성을 부여해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

실제 후원자들은 보통 신원 공개를 꺼리는 경향이 있어 '익명성 후원'이 줄지 않고 있다. 그런데 현행법에는 정치자금 후원자는 이름과 생년월일, 주소, 직업, 전화번호 등 인적사항을 기재해야 하지만 위반 시 처벌조항이 없다. 더구나 300만원을 초과하는 고액을 기부한 사람의 신원만 공개되는 탓에 소위 '쪼개기 후원'은 정확히 찾아내기 어렵다.

‘누이좋고 매부좋고’ 식으로 의원들이 서로 상부상조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먼저 새누리당의 경우 옛 친이계 출신의 강석호 사무부총장(재선)은 작년 7·30 재보선으로 입성한 3선의 나경원 의원에게 연간 후원금 최대 한도액인 500만원을 기부했다. 강 부총장은 같은 친이계 출신이자 김무성 대표 체제에서 함께 당직을 맡은 김영우 수석대변인에게도 500만원을 냈다. 김무성 대표는 자신의 과거 지역구(부산 남을)를 물려받은 핵심 측근 서용교 의원에게 500만원을 기부했다. 친박계 핵심인 윤상현 의원도 같은 친박계인 초선의 이헌승 의원에게 500만원을 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한명숙 의원이 문재인 대표에게 500만원을 기부했다. 두 의원이 각각 노무현정부에서 국무총리와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안철수 상임고문도 자신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윤장현 광주시장으로부터 500만원을 기부 받았다.

정치권 내 갑을 관계를 의심할 수 있는 경우도 일부 있었다. 국회의원이 자신의 지역구에 속한 지방 의원이나 자신의 보좌관으로부터 후원금을 받은 사례가 나온 것이다. 이날 자료 공개 결과 자신의 지역구의 지방의원으로부터 고액 후원금을 받은 국회의원은 5명이었다. 이병석 새누리당 의원은 3명의 도의원으로부터 모두 500만원을 받았고, 같은당 이장우(대전 동구)·심학봉(구미갑)·박성호(창원시 의창구)의원은 자신들 지역의 시의원으로부터 각각 520만원과 500만원, 340만원을 기부받았다. 김을동(서울 송파병) 의원도 지역 구의원으로부터 500만원을 받았다.

새누리당 윤상현, 김태원 의원과 새정치연합 한명숙, 이목희, 안규백, 임내현 의원은 정당인 혹은 정치인으로 직업이 표시된 인사들로부터 각각 500만원에서 50만원까지 후원금을 나눠 받았다. 자신의 보좌진으로부터 후원금을 받은 의원도 눈에 띄었다. 김을동 새누리당 의원은 그의 보좌관으로부터 3차례에 걸쳐 모두 400만원을 후원금으로 기부 받았다.

유명인이나 기업인들의 기부도 포착됐다. 탤런트 박상원씨는 프로듀서(PD) 출신으로 김종학프로덕션 대표이사,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장 등을 지낸 뒤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박창식 새누리당 의원에게 500만원을 냈고, 주식부자이기도 한 견미리씨도 강원지역 초선의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에게 500만원을 기부했다. 서울 강남갑이 지역구인 심윤조 새누리당 의원은 정몽준 전 의원과 형제인 정몽윤 현대해상화재보험 회장으로부터 500만원을 기부 받았다.

형제지간이나 친인척들로부터 후원금을 받은 사례도 있었다. 새누리당 강석호 의원은 자신이 1994년부터 2007년까지 부회장을 지냈고 현재는 자신의 친형이 회장을 맡고 있는 삼일그룹 임원들로부터 총 2,050만원의 후원금을 받았다. 삼일그룹의 대표이사와 강 의원의 동생인 강제호 부회장 등이 후원금을 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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