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폭침 사과 요구하자 北 "동족으로선 유감" 책임 회피

"박 대통령, 세종시 수정안 반대엔 '정운찬' 견제 의도도"

"무상복지로 정작 가난한 사람 위한 복지예산 줄어 안타까워"

[데일리한국 김종민 기자] 이명박 전 대통령은 내달 2일 발간될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에서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연기나 광우병 시위 사태, 4대강 사업, 세종시 수정안 추진, 삼호주얼리 구출작전(일명 아덴만 작전) 등 재임 시 각종 현안에 대한 비사를 소개했다.

▲남북, 천안함 폭침 후 평양·서울 교차방문 = 이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천안함 폭침에 따른 5·24 대북제재 조치 직후인 2010년 7월 "국정원 고위급 인사가 방북했다"고 밝혔다. 회고록 소제목에서 '평양 접촉'이라는 표현을 써 국정원 인사가 평양을 방문했음을 시사했다. 이 전 대통령은 "북한은 2010년 6월 국가안전보위부 고위급 인사 명의로 메시지를 보내와 국정원 고위급 인사와 접촉하고 싶다고 요구했다"면서 북측의 요구로 방북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이 전 대통령은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되기 위해서는 천안함 폭침에 대한 북한의 사과와 재발 방지를 위한 조치가 선행돼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면서 방북한 국정원 고위 인사가 이 같은 입장을 북측에 전했음을 설명했다. 이 전 대통령은 "그러자 북측은 (당사자가 아닌) '동족으로서 유감이라 생각한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히겠다고 했다. 말하자면 남의 상갓집에 들러 조의를 표하는 수준의 사과를 하겠다는 것이었다"면서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는 행위였고, 그 같은 애매한 표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전했다.

▲연평도 포격 직후 북측 인사 서울 방문 = 이 전 대통령은 2010년 11월 북한의 연평도 포격 직후인 같은 해 12월 북측 인사가 비밀리에 서울을 방문한 사실도 공개했다. 이 전 대통령은 "2010년 12월5일 북측 인사가 비밀리에 서울에 들어왔다. 대좌(우리의 대령) 1명, 상좌(대령과 중령 사이) 1명, 통신원 2명을 대동했다"고 밝혔다. 이 전 대통령은 "나는 그들을 따로 만나지 않았다"면서도 "양측은 협의 끝에 남북 정상회담 개최 합의에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 북측 인사는 예정보다 하루 더 서울에 머문 후 돌아갔다"고 설명했다.

서울을 방문했던 북측 인사와 관련, "2011년초 미국과 중국으로부터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공개 처형됐다는 것이다. 당시 권력 세습을 준비하고 있던 김정은 측과 군부에 의해 제거됐다는 얘기도 들려왔다"고 소개했다. 남북은 평양·서울에서의 잇따른 접촉이 무산된 이후 2011년 초 뉴욕(유엔주재 북한 대사와), 같은 해 5월 베이징에서 추가 접촉했지만 천안함 폭침 사과 문제로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고 이 전 대통령은 전했다.

▲광우병 사태 = 대통령 취임을 일주일 앞둔 2008년 2월 18일, 청와대 관저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마주했다. "한·미 쇠고기 협상을 마무리 짓기로 부시 대통령과 수차례 약속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남은 임기 중 처리해주시는 게 어떻겠습니까?"라고 물었다. 이에 노 대통령은 미국과 약속했다는 점은 시인하면서도 한·미 쇠고기 협상이 타결된다고 미국 의회가 FTA(자유무역협정)를 처리해준다는 보장이 없다고 했다. 결국 나는 한·미 쇠고기 협상과 관련해 큰 딜레마를 안고 대통령에 취임해야 했다.

야당과 시민단체 등은 재협상을 요구했다. 2008년 6월 7일, 나는 쇠고기 협상과 관련해 부시 대통령과 통화를 했다. "미국 정부가 30개월령 미만의 쇠고기 수출에 대해 우리 국민이 신뢰할 수 있도록 보장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이야기했고 부시 대통령은 "30개월령 이하의 소만 한국으로 수출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점을 이 대통령께 보장하겠습니다."라고 내 제안을 수락했다. 부시 대통령과의 통화를 마친 후 추가 협상을 진행하도록 했다. 쇠고기 사태는 한·미 관계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도 중요한 계기가 됐다. 한편으로는 국민과 소통의 중요성을 체감하는 계기도 됐다.

▲4대강 사업…"단기간 판단해 결론 내릴 문제 아냐" = 4대강 살리기 사업이 대운하를 건설하기 위한 위장 사업이라는 비난도 있었다. 이러한 주장은 퇴임 후 감사원의 4대강 살리기 사업 감사결과에서까지 나왔다. 4대강 살리기 사업은 수많은 하천 관련 전문가들이 공을 들여 기획한 것이다. 감사원의 비전문가들이 단기간에 판단해 결론을 내릴 수준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대가뭄이 닥치자 4대강 반대자들은 '녹조' 문제를 들고 나왔다. 과거 가뭄이 오지 않아도 갈수기에는 4대강이 녹조로 뒤덮였던 사실을 외면한 주장이다.

4대강의 16개 보는 이 같은 역할('물그릇' 키우기)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서 야권의 후보는 자신이 당선되면 한강 수중보를 철거하겠다는 약속까지 했다. 물론 그 후보는 당선이 된 후 시민들에게 한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한강도 잠실과 김포 신곡에 수중보가 있어 항상 맑은 물이 풍부하게 넘쳐흐른다는 사실은 서울 시민 중에도 아는 이가 많지 않을 것이다.

▲세종시 = 언론이 일제히 '정운찬 (총리후보자), 세종시 수정안 추진'이라고 보도한 뒤 여당 일각에서도 가만있지 않았다. 특히 박근혜 전 대표를 비롯한 이른바 '한나라당 비주류'의 반응은 싸늘했다. 전혀 근거 없는 추론이었지만, 내가 세종시 수정을 고리로 정운찬 총리 후보자를 2012년 여당의 대선 후보로 내세우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의심을 사게 됐다. 돌이켜보면 당시 여권의 가장 유력한 차기 대선후보였던 박근혜 전 대표 측이 끝까지 세종시 수정안에 반대한 이유도 이와 전혀 무관치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정운찬 총리 지명과 함께 세종시 문제가 논란을 빚던 2009년 9월16일 나는 박근혜 전 대표와 청와대 본관 백악실에서 만났다. 박 전 대표는 국민과의 약속을 강조하며 세종시 문제가 충청도민과의 합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나는 그런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내 생각을 진솔하게 이야기했다. 세종시 문제를 놓고 내가 박근혜 전 대표와 이야기를 나눈 것은 이때가 마지막이었다.

▲무상복지…"무상복지로 가난한 사람 복지예산 줄어 안타까워" = 서울시장 재임 시절 내가 한 일 중에는 내 삶의 경험에서 나온 게 많다. 나는 오랫동안 대기업 CEO를 지냈다. 그 때문인지 정략적으로 나를 공격하는 쪽에서는 내가 서민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며 몰아붙이기도 했다. 그런데 정작 그들이 주장하는 복지 정책을 볼 때면 이해할 수 없는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저분들이 가난한 사람들의 마음을 정말 알까?'라는 의문이 들 때가 많았다. 지금도 전 국민 무상복지정책으로 정작 가난한 사람들에게 돌아가야 할 복지 예산이 줄어드는 현실을 보면 안타깝다.

▲'아덴만의 여명'…"잠 못 이뤄, 그저 기도할 수밖에" = 당장은 희생이 따르더라도 원칙에 입각한 단호한 대응만이 궁극적으로 우리 국민을 보호하는 길이라 생각했다. "이번에 작전을 하면 인명 피해는 얼마나 생길 걸로 예측돼요? 외국에서 작전을 할 때 인명 피해가 있었나요?" 나는 참모들에게 물었다. "작전을 한다면 그 정도의 인명 피해는 감수해야 할 것 같습니다." 김관진 장관이 대답했다. "대통령께서 최종 승인을 해주신다면 작전을 개시하겠습니다"라고 김 장관이 말했다. 우리 국민의 목숨이 걸린 결단을 내려야 했다. 새삼 대통령직이 무겁게 느껴졌다. "내일 새벽 작전을 진행하도록 하세요. 철저히 준비해 인명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차질 없이 작전을 수행하세요"라고 나는 삼호주얼리호 인질 구출을 위한 작전을 최종 승인했다. 그날 저녁 나는 온갖 상념에 잠겨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저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평창올림픽 유치…"이건희 사면 승부수" =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 사면'은 승부수였다. IOC 위원자격으로 IOC 위원들을 설득할 사람이 필요했다. 김진선 조양호 평창동계올림픽유치위원장은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이건희 회장의 사면복권을 요구하는 탄원서를 각각 정부에 제출했다. 국익을 선택해야 하는지 아니면 정치적 상황을 고려해야 하는지 다시 한 번 갈림길에 섰다. 결국 이른바 '원포인트 사면'을 했다.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평창이 결정된 직후 좀처럼 감정을 내비치지 않던 이건희 회장의 눈에 눈물이 고이는 것이 보였다.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모든 공을 주위로 돌리는 이 회장을 보면서, 나는 원포인트 사면으로 그가 그동안 평창 유치에 얼마나 큰 부담을 느끼고 마음 고생을 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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