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때 충청권 지지 받은 박 대통령, '충청 대선주자' 구상했을 가능성

총선 앞두고 친박계·비박계의 세 대결 대비해 김무성 대표 견제 카드?

최근 대통령 지지율 30%대 초반까지 급격 하락… 반전 카드 필요성

[데일리한국 김종민 기자]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지낸 이완구(65) 총리 후보자는 신뢰 관계 속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정치인 중 한 사람이다. 이 후보자는 새누리당 원내대표로 활동하는 동안 박 대통령과 종종 전화 통화를 하는 사이였다. 박 대통령과 직접 통화할 수 있는 정치인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대통령과의 '핫 라인' 구축은 이 원내대표의 큰 자산이었다. 실제로 지난 10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상하이 '개헌' 발언으로 정가에 파장이 일고 있을 때 박 대통령은 이 원내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분위기를 파악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신뢰는 이 원내대표를 총리로 지명한 결정적 배경이 됐을 것이다. 23일 오전 청와대 윤두현 홍보수석이 박 대통령이 지명한 새 총리 후보자 이름을 발표하자 여야 정치권 안팎에서는 "역시 예상했던 대로 이완구 카드"라는 얘기들이 나왔다. 지난 가을 이후 총리 교체설이 나올 때마다 이 후보자가 영순위 총리 후보로 거론돼왔으니 이런 얘기가 나올 법하다. 심지어 야당 일부에서도 "이완구 원내대표가 차기 총리 후보로 적합하다"는 얘기까지 나왔었다.

이 후보자가 총리로 지명된다면 전임자인 정홍원 총리와 비교할 때 정치적 비중과 영향력에서 엄청난 차이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 후보자가 3선 의원과 여당 원내대표, 충남지사 등 다양한 정치적 경험을 갖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무엇보다 이 후보자는 박 대통령과의 신뢰 관계를 바탕으로 총리에 취임하자마자 여권의 대선주자군으로 부상할 수 있는 재목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박 대통령이 오랜 고심 끝에 이완구 카드를 꺼낸 정치적 배경은 무엇일까. 이완구 총리 카드는 다목적 포석으로 볼 수 있다. 크게 세 가지 배경을 생각할 수 있다.

우선 충청권 대선주자로 키울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이 이 후보자를 최종 대선주자로 낙점한 것인지 여부는 알 수 없으나 이번 인사가 대선주자 중 한 사람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될 것임을 분명하다. 박 대통령은 지난 대선 때 영남의 탄탄한 지지 기반에다 충청권의 높은 지지를 더해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이런 맥락에서 박 대통령은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에서도 충청권이 캐스팅보트를 행사할 것이라고 판단했을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낙마한 문창극 총리 후보자를 지명할 때부터 '충청 출신 총리'를 염두에 두는 것 같다. 이같은 구상 때문인지 그동안 총리 후보로 이완구 원내대표가 유력히 거론되는 가운데 충청 출신인 이인제 최고위원이나 심대평 전 충남지사 등의 이름도 종종 흘러나왔었다.

이완구(충남 부여·청양) 총리 후보자는 40년 공직 생활 기간에 정치는 물론 경제, 치안, 지방 행정 등을 섭렵해 행정 전반을 맡는 총리직 수행뿐 아니라 대권 도전을 위한 다양한 경험들을 쌓았다. 이 후보자의 국회의원 지역구는 김종필 전 총리의 출신 지역인 부여여서 이 후보자가 '포스트 JP'가 될 수 있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이 후보자가 국회의 인사청문 과정을 통과해 총리로 취임하면 일약 여권의 유력한 대선주자로 발돋움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현재 여권에는 두각을 나타내는 대선주자가 없기 때문에 그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김문수 새누리당 혁신위원장, 정몽준 전 새누리당 대표, 홍준표 경남지사 등과 대등하게 대선 레이스를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만일 그가 대선 레이스에서 실력을 보여줄 경우에는 충청 출신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대안론 거론이 잦아들게 된다. 어쨌든 이번 총리 교체로 여야의 충청권 대선주자는 이 후보자, 반 총장, 안희정 충남지사 등으로 다변화됐다. 이 후보자가 총리 지명 직후 기자들과 만나 "야당과 소통하고 대통령에게 쓴소리와 직언을 하는 총리가 되겠다"고 말한 것은 단순히 '대독 총리' '얼굴마담 총리' 에 그치지 않고 '책임 총리'와 '대선주자' 가능성을 염두에 둔 언급으로 풀이된다.

이완구 총리 카드는 친박계를 벗어나 현재 '비박'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를 견제하는 역할도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과 청와대는 지난해 7월 새누리당 대표 경선 당시 김 대표가 아닌 서청원 최고위원을 사실상 지원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대통령이 밀지 않은 인사가 여당 대표가 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그동안 박 대통령은 이완구 원내대표를 통해 김 대표를 견제해왔다. 지난해 10월 김 대표가 개헌 발언을 했을 때도 원내사령탑인 이 원내대표를 통해 제동을 걸었다. 박 대통령은 현직 국회의원인 이 원내대표를 총리에 기용하더라도 전체 여권 틀 내에서 김 대표를 견제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 여당 의원들은 차기 대선주자로 거론되는 '실세 총리' 를 어느 정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이완구 카드는 김 대표에게 힘이 집중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이 후보자는 최경환 경제부총리 등과 함께 내각 내에서 중심을 잡는 역할도 할 것으로 보인다.

이 후보자는 '원조 친박계'는 아니고 '범(汎)친박계'이지만 이번 총리 기용을 계기로 친박계 쪽으로 더 이동할 것으로 예상된다. 내년 4월 총선이 다가오면서 공천을 놓고 계파 갈등이 증폭될 수 있기 때문에 친박계는 자파의 리더들을 세워야 하는 입장에 처해 있다. 청와대는 이 원내대표가 총리로 이동하고, 그 대신에 이주영 전 해양수산부 장관이 원내대표로 선출되기를 바라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후보자는 충남지사 시절 세종시 문제로 박 대통령과 가까워졌다. 그는 이명박정부가 세종시 수정안을 추진하는데 반발해 2009년 12월 "충남도민의 소망을 지켜내지 못한 정치적 책임을 지겠다"며 지사직에서 전격 사퇴했다. 그는 자신의 저서 '약속을 지키는 사람'에서 "지금 내가 죽어야 할 상황이라면 죽는 것이 옳다"고 밤새 고민 끝에 아내의 손을 잡고 토로했던 자신의 결심을 술회하기도 했다. 당시 사퇴 결심은 이 후보자가 충청권을 대표하는 정치인으로서 자리매김하게 했을 뿐 아니라 세종시 수정안에 반대했던 박 대통령과 가까워진 결정적 계기가 됐다.

박 대통령이 예고 없이 갑자기 23일 이완구 총리 카드를 공개한 것은 정치적 위기 국면을 돌파하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문건 유출 파동 이후 최근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 김무성 대표 수첩 메모 공개 파동, 연말정산 '세금 폭탄' 논란 등이 이어지면서 대통령 지지율이 30%대 초반까지 떨어지자 서둘러 총리 교체 및 청와대 일부 조직 개편 결과를 발표한 것 같다. 박 대통령 지지율은 지난주 40% 미만으로 떨어진데 이어 금주 중반에는 급격히 더 하락했다. 리얼미터의 조사 결과 21일 대통영 지지율은 33.2%까지 하락했다. 또 한국갤럽의 대통령 국정운영 지지율 조사에서는 지난주 35%에서 20~22일 조사에서는 5%포인트 하락한 30%로 집계됐다. 지지율이 너무 크게 추락하면 '스프링 효과'가 떨어져 국정 동력과 지지율을 회복하기가 쉽지 않고 레임덕(임기 말 권력누수) 현상이 당겨질 수 있다. 때문에 박 대통령은 정부와 청와대의 인사를 마냥 늦추기 어렵다고 보고 조기 인사 개편으로 국면 전환을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해양수산부 장관 후임이 결정되지 않고, 청와대 특보단 구성이 완료되지 않았음에도 이번 인사를 발표한 것을 보면 총리 후보자가 위기 돌파 카드임을 알 수 있다. 이번에 급하게 '쪼개기 인사'가 이뤄짐에 따라 청와대 비서실장 교체와 추가적인 개각 등은 2월 중에 이뤄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에 덧붙여 이완구 원내대표를 바라보는 야당이 눈길이 그리 사납지 않다는 점도 이 총리 카드를 쓴 배경 중 하나이다. 지난해 7월 이 원내대표의 카운터파트였던 박영선 전 원내대표도 청와대 회담에서 당시 박 대통령에게 이 후보자를 “훌륭한 분”이라며 총리 후보로 추천하기도 했다. 이 후보자는 이런 분위기를 의식한 듯 이날 총리 지명 직후 문희상 비대위원장 등 새정치민주연합 지도부를 찾아가 인사했고, 야당도 이 후보자를 비교적 따뜻하게 맞았다. 다목적 카드인 이 총리 후보자의 성공 여부에 여의도가 주목하는 이유는 이 같은 배경들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이완구 총리 후보자 프로필
▲ 충남 홍성(65) ▲ 양정고-성균관대-미국 미시간주립대 대학원, 행정학 박사(단국대) ▲ 행시 합격(15회) ▲ 홍성군 사무관-경제기획원 사무관 ▲ 충남 홍성경찰서장 ▲ 충남지사 ▲ 15대, 16대, 19대 국회의원 ▲ 새누리당 원내대표 ▲ 국무총리 후보 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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