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인터뷰]

"6자회담 진전 없이 남북 정상회담 추진하면 국제사회 비판 우려"

"인권·핵·사이버로 고립 최고조, 고립 탈피 위해 한국 카드 활용"

"통일 준비 등 위해 대화채널 복원 필요...전략에 휘말리지 말아야"

전옥현 서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데일리한국 김종민 기자] 전옥현 서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는 1일 김정은 북한 국방위 제1위원장이 신년사에서 '남북정상회담 못할 이유 없다'는 취지로 언급한 데 대해 "국제사회가 북한을 추가적으로 압박하는 상황에서 북한의 비핵화 선행조치가 전혀 없이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하면 사상누각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국가정보원 차장을 지낸 전 교수는 이날 데일리한국과 가진 인터뷰에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국면을 고려할 때 6자회담 진전과 병행하지 않고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하면 국제사회의 비판을 받을 우려가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전 교수는 "5.24 제재 조치 해제 논의 등과 관련, 우리가 북측에 요구하는 사과 및 유감 표명 등 최소한의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대화할 수 있는 여건이 되기 어렵다"면서 "북측이 우리의 기본 요구 중 일정 부분을 수용하지 않는 한 대화가 급진전되기는 어렵다"고 전망했다. 전 교수는 "인권과 핵, 사이버 해킹 문제 등으로 북한의 고립은 최고조에 달했다"면서 "김 위원장의 이번 제의는 국제적 고립을 탈피하기 위해 한국 카드를 활용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1일 신년사를 통해 “분위기와 환경이 마련되는데 따라 최고위급 회담도 못할 이유가 없다”면서 ‘남북 정상회담’ 가능성을 거론했다. 김 위원장이 이같이 제안한 배경과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우리가 최근 남북 당국간 회담을 지속적으로 제기해 남북대화의 주도권을 갖게 되자 북측이 주도권을 회복하기 위해 제안한 것이다. 우리측이 당초 제안했던 장관급 회담을 훨씬 뛰어넘는 남북 정상회담을 명시적으로 제안해야 김 위원장이 회담을 주도하는 것으로 대내·대외적으로 선전할 수 있다. 현재 상황에서는 정상회담을 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기 어렵다. 최고위급 회담을 위한 분위기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한 것은 회담이 성사되지 않을 경우 결렬 책임을 한국에 뒤집어씌우려는 것이다. 북측은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면서 한미군사훈련 철회 등을 거론하는 등 전제를 달지 않았는가. 북측은 남북 정상회담을 하고 싶은데, 한국이 받지 않아서 안되는 것처럼 비치도록 복선을 깔았다. 미국·일본 등과 관계 개선이 이뤄지지 않는데다 심지어 중국과의 관계도 예전처럼 좋은 게 아니어서 국제적 고립을 탈피하기 위해 한국 카드를 활용하려는 것이다.”

-북한이 국제적 고립을 탈피하기 위해 적극 나서고 있는데, 구체적으로 발등에 떨어진 불이 무엇인가?

“북한의 국제적 고립이 최고조에 달했다. 인권과 핵, 사이버 해킹 문제 등으로 고립이 심화될대로 심화됐다. 이 과정에서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움직임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이런 압박으로 북한은 질식 직전 상태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또 국제적 고립으로 경제적으로도 위기에 처해 있다. 북한이 개발하려는 경제·관광 특구에 외국의 투자, 즉 달러가 전혀 들어가지 않고 있다. 자금 사정이 좋지 않으니 비자금 조성과 무기 개발 자금도 구하기 어려워지고 결국 체제 유지에 부담이 된다. 북한은 남북 교류로 숨통을 터서 국제적 압박에서 벗어나려 하는 것이다.”

-우리측은 지난 12월 29일 통일준비위 명의로 “1월 중 당국간 회담을 갖자”고 제안했는데, 김 위원장의 신년사는 우리측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인가, 거부한 것인가.

“우리측의 대화 제의를 거부한다고 명시하지는 않았으나 사실상 우회적으로 우리측의 최근 제안을 거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국제사회를 의식해 북한이 부분적으로 수정해 역제안한 셈이다. 통일준비위가 당국간 회담을 갖자고 제의한 직후에도 북측은 우리 통일준비위를 겨냥해 비난하지 않았는가."

-김 위원장의 신년사에 대해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가까운 시일 내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남북 당국간 대화가 개최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는데.

“우리가 형식에 얽매이지 말고 어떤 대화든 하자는 입장을 밝힌 것은 일단 북한을 대화의 틀로 끌어들여 협상 테이블에서 모든 논의를 하자는 것이다. 남북고위급회담이든 우리 정부가 최근 제안한 통준위 차원의 당국간 회담이든 형식을 따지지 않고 대화를 추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북측의 무분별한 대화 공세를 차단하고 남북한 간의 불필요한 논란을 지양하면서 대화 채널을 열어놓고 일단 회담을 개최하자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그러면 앞으로 남북 대화는 어떤 식으로 전개될 것으로 전망하는가.

“5.24 제재 조치 해제 및 금강산 관광 재개 논의 등과 관련, 우리가 북측에 요구하는 사과 및 유감 표명 등 최소한의 성의 있는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대화할 수 있는 여건이 되기 어렵다. 북한이 우리의 기본 요구 중 일정 부분을 수용하지 않는 한 대화가 급진전되기는 어렵다. 또 남북 당국간 대화가 일정 단계로 진전되면 북핵 문제를 본격적으로 거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따라서 남북 대화가 조기에 급진전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결국 남북 정상회담은 가능할 것으로 보는가.

“북핵 문제 외에도 인권 문제로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북한을 추가적으로 압박하는 상황에서 북한의 비핵화 선행조치 없이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하면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국면을 고려할 때 6자회담과 병행하지 않고 남북정상회담이 추진되면 국제사회의 비판을 받을 우려가 있다. 이를 보완하여 남북 정상회담과 6자회담을 병행 추진하기 위해서는 한국·미국·중국의 대북 공조를 강화하고 남북간 비밀 대화 창구를 조속히 복원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북한이 남북 대화를 제안한 배경에는 국제적 고립 탈피 등 여러 가지가 있었다. 우리도 광복·분단 70년인 올해 통일을 위한 중요한 전기를 마련하고 침체된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남북 대화에 적극 나설 필요가 있는 것 아닌가.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대화 채널을 조속히 복원할 필요가 있다. 분단 70주년에 통일을 준비하기 위해 남북 대화에 적극 나서는 것은 바람직하다. 또 남북 경제의 공동 활성화와 통일에 앞선 경제 통합의 일환으로 적극적인 남북 경제 협력·교류가 필요하다. 다만 좀 더 의연하게 남북 대화를 추진해야 한다. 강한 압박 속에서 북한을 설득하는 노력을 해야지, 북한 설득에만 매달려 대화를 추진하면 북핵 문제 등에서 오히려 역작용이 생긴다. 핵이 없는 상태에서 통일을 추진해야 하는데 원칙을 세우지 않으면 북핵 문제에서 난관이 조성될 수 있다. 따라서 대화의 문을 열어 놓되 북한의 전략에 휘말리지 않아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채칙과 당근이 6대 4 가량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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