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준 국회 사무총장(왼쪽)과 임도빈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편집자 주= 국회 사무처는 지난 3일 국가의 중장기 미래전략 과제를 초당적으로 연구하기 위해 '국회 미래연구원'이라는 싱크탱크를 설립하는 법안을 제출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찬성과 반대 양론이 있습니다. 국회와 여야 정치권의 정책 연구 능력을 제고한다는 측면에서 바람직하다는 견해도 있으나 기존의 국회 지원 기관 기능과 중첩된다는 이유로 '옥상옥'이란 비판도 있습니다. 이에 한국행정학회 회장인 임도빈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가 미래연구원 설립에 반대하는 입장을 담은 칼럼을 먼저 보내왔습니다. 데일리한국은 토론 문화를 활성화한다는 차원에서 미래연구원의 설립 필요성을 제기한 박형준 국회 사무총장의 칼럼 원고도 받아 함께 게재합니다.

"여야 공동의 중장기 전략 연구 위해 국회미래연구원 설립해야"

산아제한 정책처럼 20~30년 앞 숙고하지 않고 정책 만들면 위험
선진국 의회도 장기 전략 연구..예산정책처 기능 등과 중복되지 않는다


[박형준 국회 사무총장 칼럼] 1980년대 초 정책 입안자들을 비롯해 거의 모든 사람들은 한국의 인구가 너무 많다고 생각했다. 일부 인구학자들이 인구 커브가 꺾일 것을 예상했지만 아무도 귀담아 듣지 않았다. 1970년대 두 자녀 갖기 정책에서 ‘딸 아들 구별 말고 하나 낳아 잘 기르자!’는 표어를 만들곤 멋진 슬로건이라고 환호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완전히 잘못된 것임을 알기 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미 인구 문제의 적신호가 커진 1996년에야 산아 제한 정책은 포기되었다. 1990년대에는 대학 설립 자율화 정책을 썼다. 출생율 저하 경향과 IT혁명이 가져온 노동시장의 구조 변화를 조금이라도 생각했다면 대학 진학률을 떨어뜨려야 할 시점에 대학을 무작정 늘리는 정책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1970~80년대 산아제한 정책...인구 문제 적신호 뒤 서둘러 포기

20년, 30년 앞을 숙고하지 않고 정책과 법을 만드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는 곳곳에서 발견된다. 현재 문제가 되는 공무원연금도 연금 재정의 장기 추세를 충분히 연구하지 않은 상태에서 설계된 결과가 오늘에 이른 것이다. 미래를 전망하면서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는 데 대한 공감대는 전세계로 퍼지고 있다. 더구나 상호의존적인 복합성이 지배하는 이 세계화의 시대에 멀리 보고 길게 보면서 현재를 만들어가는 자들만이 궁극적인 승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상식적 진리가 되고 있다.

미래 전략 연구는 정부에서도 할 수 있고 학계에서도 할 수 있다. 여러 군데서 하는 것이 바람직하기도 하다. 하지만 아쉽게도 정부 차원의 미래 전략 연구는 활성화되지 못했다. 대통령 5년 단임제라는 현실에서는 정부 출연기관의 연구가 5년 내에 달성해야 할 국정 과제와 당장에 성과를 낼 수 있는 과제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일부에서 미래 추세와 전략 연구를 하더라도 힘을 받지 못한다. 그때그때 제기되는 현안에 매달리느라 청와대나 행정 부처가 충분히 관심을 가져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래 연구는 있으되 실행되는 미래 전략은 취약하기 짝이 없다. 미래 전략 연구의 관건은 연구 결과가 책상 위에만 있지 않고, 법과 정책에 녹아들 수 있는 장치를 만드는 것이다. 국회야말로 이런 맥락에서 실행 가능한 전략 연구를 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곳이다. 지속성을 보장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미국·핀란드 등 의회에서 국가의 장기 전략 체계적 연구

다른 나라를 살펴보았다. 핀란드와 미국이 눈에 띤다. 20세기 내내 강대국에 둘러싸여 이리저리 휘둘린 경험이 있는 핀란드는 특별히 미래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의회 내에 미래위원회를 상임위원회로 두고 그 산하에 미래연구소를 만들었다. 흥미로운 점은 핀란드 미래위원회에서는 매년 미래전략 연구과제를 위원회 차원에서 의결한다. ‘기후 변화와 핀란드 장기 에너지 수급 전략’, ‘영감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전략’, ‘지속가능한 복지 전략’과 같은 것들이다. 미래연구소는 국내외 전문가들로 팀을 이루어 이런 과제들에 대해 일정 기간 연구한 뒤 보고서를 만들어 위원회에 제출한다. 위원회는 이 보고서를 토대로 국가 전략과 정책을 입안한다. 핀란드의 국가지도자가 되려면 미래위원회를 거쳐야 한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로 미래위원회는 힘을 갖고 있다.

미국 의회도 국가 장기 전략 연구를 지속적으로 강화해왔다. 미국 의회가 출연한 평화연구소나 우드로윌슨 센터에서도 이런 연구가 진행되지만 최근에는 강력한 의회 내 조사 기구인 회계감사처(GAO)에도 장기전략 연구 기능이 추가되었다. 평화연구소에서 만든 ‘이라크 보고서’는 이라크 정책에 대한 여야 합의를 이끌어낸 토대가 되었다.

유럽의 여러 나라들에서 타협의 정치와 정책 연합이 일상화될 수 있는 중요한 근거의 하나가 싱크탱크의 적극적 역할이다. 여야가 정치적으로 부딪치는 사안에 대해 사전 연구와 숙의를 통해 정치적 거리를 상당 부분 좁혀 놓기 때문에 정치적 타협의 지적·정책적 기반이 조성되는 것이다.

여야 공동의 중장기 전략 연구 위해 국회미래연구원 추진

국회미래연구원도 이런 취지에서 추진되고 있다. 대한민국 국회의 권한이 커지고 있는 만큼 국가 미래에 대한 국회의 책임도 커지고 있다. 국가의 중장기 과제에 대해 여야가 함께 고민하여 지혜를 모아내고 국민과 공감대를 넓힐 수 있게 해야 한다. 현재의 법안과 정책을 만들 때 항상 미래의 추세를 고려하도록 해야 한다. 미래연구원은 핀란드의 사례처럼 철저히 여야가 합의한 연구 과제를 수행하도록 하고 연구원의 구성이나 조직도 여야 합의 정신이 구현되도록 할 것이다.

일부에서 국회 예산정책처나 입법조사처가 있는데 왜 또 이런 조직을 만드느냐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주지하듯이 예산정책처와 입법조사처는 불과 10년을 넘지 못한 조직이지만 지금 성공적으로 정착되었다. 정부 예산과 재정·정책에 대한 국회의 독자적인 분석 및 평가가 가능해졌고, 의원들의 의정 활동에서 예산정책처와 입법조사처에 의존하는 비중이 매우 높아졌다. 쏟아지는 의원들의 회신 요구에 두 기관은 시간과 인력이 부족해 쩔쩔 매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이 두 기관은 예산 분석이나 단기 현안 과제와 의정 활동을 위한 분석 자료 제공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지금 이 두 기관은 정책 국회의 중요한 엔진으로서 잘 기능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조직이 미래 전략 연구를 전담할 수 있는 체제나 기능을 갖기는 어렵다.

국회 예산정책처·입법조사처 기능과 중첩되지 않는다

앞의 두 기관이 공무원 신분을 갖는 분야별 연구원들의 조직인 것과는 달리 국회미래연구원은 국회 출연 연구기관이다. 여기서 수행되는 연구는 철저히 프로젝트 베이스로 운영된다. 국회에서 의결된 과제를 연구원 안의 연구자들이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로 팀을 만들어 프로젝트 베이스로 연구를 수행하고 공동으로 보고서를 작성한다. 연구원 내의 연구원들은 해당 주제에 관한 국내의 최고 전문가들을 모으고 연구에 참여시키는 코디네이터 기능을 주로 수행한다. 그렇기 때문에 최소한의 인원만을 둘 수 있다. 연구원 안에서 전담 연구원이 연구를 수행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인원도 계속 늘 이유가 없다. 40명 정도의 최소 인력으로 이 연구원을 운영할 수 있다고 보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아울러 이런 미래 전략 연구의 중요성을 아는 외부 기관이나 법인이 출연할 수 있도록 되어 있어서 기관 예산에서 정부 예산이 차지하는 비중을 줄여나갈 수도 있다.

국회에 예산이 더 들어간다고 하면 국민들의 눈살이 찌푸려질 수 있다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실행력 있는 미래 전략 연구 하나를 제대로 하느냐 못하느냐가 국민의 삶의 질을 좌우할 정도로 중요한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국회미래연구원은 적어도 정부와 국회의 입법과 정책이 최소한 미래의 흐름과 거꾸로 가지 못하도록 하는 안전 장치를 제공할 것이다. 국가 자원을 장기적 관점에서 균형 있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촉진제 역할도 할 것이다. 여야가 국가 장래가 걸린 문제에 대해 숙고하도록 하고, 대승적 타협에 이를 수 있게 하는 윤활유로서도 기능할 것이다. 최소한의 예산으로 이런 일들을 수행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미룰 수 없는 일 아닌가.

■박형준 국회 사무총장 프로필
대일고, 고려대, 고려대 사회학 박사- 동아대 사회언론광고학부 교수-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 17대 국회의원(부산 수영구, 한나라당)- 한나라당 대변인- 대통령직인수위 기획조정위 인수위원- 청와대 홍보기획관- 청와대 정무수석- 청와대 사회특별보좌관- 동아대 사회학과 교수- 국회 사무총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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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미래연구원 설립은 시대착오적이다"


행정부 국책연구원 문제 많다...정치화, 관료 심부름꾼
방만한 국회 지원기구 재정비, 국책연구원 통폐합 이뤄져야


[임도빈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칼럼] 국회가 자체 싱크탱크로서 미래연구원을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공무원연금 개혁과 같은 여러 가지 복잡한 사회적 이슈가 등장하면서 국회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장기적 과제를 연구하기 위한 박사들을 고용한 연구기관이 절실히 필요함을 느낀 것 같다.

그러나 과연 국회에 별도로 이런 기관을 설립할 필요가 있는지 깊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국회의원 선거 때마다 자신들이 특정 분야의 전문가이고 국민을 대표할 만큼 사회 문제를 해결할 실력이 있다고 주장하여 당선된 사람들이다. 또 우리 국민들은 그와 같이 국가적 비전도 없고, 전문성과 경험도 없는 의원 후보들을 뽑지는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국민들은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면 밤새워 공부하는 국회의원을 원한다.

물론 국회의원이 반드시 전문가일 수는 없다. 그래서 의정 활동을 지원하는 방대한 지원 조직들이 있다. 우선 국회 도서관이 있다. 국회도서관 직원에게는 국민 전체가 고객이지만, 특히 모든 의원들을 VIP 고객처럼 도와주는 각 의원 담당 사서도 있다. 이에 더하여 예산정책처, 입법지원처가 신설되어 각 분야의 박사들이 전문적인 연구를 통해 의원들을 지원하고 있다. 이제 국회 지원 조직도 이미 공룡화되어 있다.

그 뿐인가? 국회 내 각 상임위원회에는 수준 높은 전문위원들이 있고, 국회의원 개인들에게는 전문 보좌관들이 있다. 최근 늘어난 대학생인 인턴들도 각 의원들을 실질적으로 지원해주고 있다. 국회의원들이 각자 연구회를 만들어 학계 전문가들과 정책 연구도 하고 있다. 총 국회운영 예산을 고려할 때, 국회의원 1인당 매년 약 5억원이 소요되는 셈이다. 한국 국회의 현주소를 보면 5억원을 차라리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행정부 국책연구원의 문제… 관료들은 '종' 같이 부려먹기도


미래연구원 설립이 더욱 걱정되는 이유는 행정부의 국책연구원 실태를 보면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행정부에는 한국개발연구원(KDI) 등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국가 정책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기 위한 각종 전문 연구원들이 이미 많이 설립돼 있다.

그런데 이들 연구원들 원장 자리가 빌 때마다 청와대의 입김이 좌우하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정치가 수많은 폴리페서들을 만들어 내는데, 좋은 자리에 가지 못한 사람들이 가는 자리가 국책연구원장 자리이다. 대표적인 '정피아'이다. 원장이 정치화되어 있으니, 분야별 장기적인 과제보다는 정권이 필요한 연구를 정권이 구미에 맞게 연구하는데 급급한 경우가 많다. 원장들이 국회의원들에게 굽신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들 연구원에 갓 들어간 박사들은 교수와는 달리 강의 부담도 없고 연구에만 전념하리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국책연구원의 환경에 질식하고 만다. 갑에 해당하는 해당 부처 관료들의 등살에 전문 분야에 대한 심오한 연구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금방 깨닫게 된다. 관련 부처 관료들이 무슨 사안만 있으면 자료조사는 물론이고 정책 대안을 만들어 내라고 시도 때도 없이 주문해대고 시간도 넉넉히 주지 않는다. 박사들을 마치 자신의 ‘종’같이 부려 먹는다. 과거에는 외국 출장시 박사연구원이 담당 부처 사무관의 가방을 들고 다녔다고 한다. 이런 현상은 거꾸로 관료들의 무능화와 철밥통에도 기여한다. 관료들은 머리를 싸매고 정책 연구를 하기보다는 박사연구원들을 시키면 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관료 자신들의 정책연구 능력은 저하된다. 그러니 박사들을 더 부려먹어야 한다. 일종의 악순환이 일어나게 된다.

국책연구원들이 이렇게 행정부의 눈치만 보는 현상이 자신의 밑에 연구원을 두고 싶어 하는 이유이다. 그러나 힘센 국회의원과 보좌관들이 미래연구원에게 할 횡포는 불을 보는 것과 같다. 연구원 자체가 정상적으로 기능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다. 예컨대 각 당이 합의하는 연구 주제를 한다고 원칙을 정했다고 과연 진정한 미래 연구를 할 것인가? 아마 국책연구원의 문제가 미래연구원에도 그대로 재현될 가능성이 높다.

국회, 방만한 자체 지원기구 재정비하고 행정부 국책연구원 통폐합해야


오히려 차제에 국회는 비정상이 일상화된 국책연구원들을 정상화하는 개혁을 주도했으면 한다. 부처이기주의에 빠져 있는 행정부는 자체 정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국책연구원은 문자 그대로 국가 전체의 정책을 연구하는 기관이어야 하지, 행정부의 도구가 돼서는 안된다. 프랑스에는 각 분야를 맡은 거대한 연구 조직인 국립연구소(CNRS)가 있다. 이 곳의 연구원들은 대학교수보다 자부심도 강하고 안정된 연구 환경도 누린다. 한국에도 수많은 대학교수들과 민간연구원들도 있으니 이들에게 연구를 의뢰해도 된다.

국회 소속의 미래연구원 설립 계획 자체는 국회가 아직도 특권을 내려놓기에는 요원함을 나타낸다. 문제가 있으니 자체 조직을 신설하는 문어발식 경영을 하려 하기 때문이다. 말로만 국민 혈세를 지킨다고 하고, 실제로는 돈쓰기에 바쁜 집단이다. 일단 연구원 40명에, 연간 예산 60억원이라고 하지만, 일단 설립되면 규모가 커지는 것은 시간 문제이다. 미래에 대한 이슈가 얼마나 많은데, 이 적은 인력으로 가능하겠는가? 매년 60억원이 누적되면 천문학적인 숫자가 된다. 고양이에게 생선 가게를 맡긴 국민들은 허탈할 뿐이다.

'국회 무용론', '국회 폐지론'까지 나올 정도로 국민들에세 신뢰받지 못하는 국회가 살아남을 수 있는 묘안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국회의 방만한 지원 기구를 정비하는 살을 깎는 모범을 보여야 한다. 나아가 중첩되는 행정부의 국책연구원을 통폐합하고, 필요한 조직과 인력을 강화하는데 국회가 앞장서면 국민들의 박수가 나올 것이다. 연구원에서 근무하는 많은 박사들도 연구다운 연구를 할 수 있는 날을 고대하고 있다. 이를 위해 국책연구원에 대한 정치적·관료적 입김을 차단해야 한다. 악순환 고리를 끊어 관료들의 정책 능력도 기르도록 해야 한다.

■임도빈 서울대 교수 프로필
서울대 사회교육과, 서울대 행정대학원, 파리정치대학 사회학박사- 충남대 자치행정학과 교수-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현)- 한국 행정학회 회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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