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한국 이선아 기자]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가 여의도에서 사라졌다. 지난 5월 대한민국 헌정 사상 여성으로서 최초로 원내대표에 당선돼 큰 주목을 받았던 그가 불과 4개월 만에 본연의 업무인 원내 사령탑 역할을 포기한 것 같은 느낌이다.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이 선임되면서 새정치연합의 원내대표는 더욱 ‘유령(幽靈)’같은 존재가 되고 있다.

문 위원장은 전날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만나 세월호법과 국회 정상화와 관련해 의견을 나눴다. 여야의 원내 문제를 당 대표가 만나 협상하는 것 자체도 극히 이례적인데, 여기서 나온 이야기는 더욱 한심스럽다. 양당 대표는 국회 문제를 원내대표에게 일임하자고 뜻을 모았다고 한다. 여야 원내대표의 주업무가 국회 문제를 놓고 협상하는 일인데, 지극히 당연한 것을 회동 성과라고 내놓은 것이다. 박영선 원내대표에 대한 당내 신뢰도 추락이 얼마나 심했으면 국회법에 명시된 문구를 합의해 발표했는지 기막힐 노릇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박 원내대표에게는 힘이 실리지 않는다. 내부 강경파들은 아직도 사퇴를 운운하고 있고, 최소한 사퇴 시기라도 못박으라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그러니 아무리 여야 대표가 “원내대표끼리 협상하라”고 공개적으로 언급해도 대여(對與) 협상이 이뤄질 리가 없다. 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도 23일 “야당이 통일된 협상안을 갖고 있어야 협상이 진척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박 원내대표에겐 협상의 전권이 없기 때문에 마주 앉아서 합의해봤자 다시 당내로 돌아가면 무위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다.

때문에 당의 의견을 수렴하고 총의를 모아 비대위에 뜻을 전해 추인을 받은 뒤 여당과 만나야하는 게 지금 박 원내대표가 시급히 추진해야할 일이다.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 상황이다. 하지만 박 원내대표는 자신의 주업무에는 영 관심이 없는 듯 하다. 마치 자신과 무관한 일처럼 취급하면서 밖으로만 돌고 있다.

박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경로당 냉난방비 예산 삭감 문제를 들고 나왔다. 그러면서 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 대표를 동시에 겨냥했다. 그러더니 소속 의원들과 마포구 한 경로당을 찾아 노인들에게 큰절을 올린 뒤 한동안 웃으며 환담했다. 법안 처리 0건으로 식물국회가 된데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원내대표가 이를 해결할 움직임은 보여주지도 않고 선거철 표심잡기처럼 노인정을 찾아다니고 있는 것이다.

무릇 정치는 나가고 들어갈 때와 버리거나 잡아야할 때를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원내대표가 자신의 업무는 방기한 채 여의도 밖을 떠돈다는 것은 국가적으로 손해요, 국민 전체에게도 화만 돋우는 일이다. 결과적으로 자신에게 훗날 엄청난 부메랑으로 돌아올게 분명하다. 지금이라도 박 원내대표는 소속 의원들을 만나 세월호법 처리와 국회정상화에 대한 통일된 뜻을 모으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게 싫다면 다른 사람에게 바통을 건네 주는 게 맞다. 원내 130석이란 거대 정당의 원내대표가 유령같은 존재로 계속 남아 있는 것 자체가 코미디다.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뛰든지, 아니면 내려오든지 결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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