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전 대통령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한국경제가 다른 신흥국보다 유독 휘청거렸던 데에는 노무현·이명박 정부의 금융정책 실패가 적지 않은 영향을 줬다는 주장이 나와 주목된다. 김학렬 연세대 동서문제연구원 객원교수는 최근 발간한 <금융강국 신기루>에서 “금융강국 건설이라는 신기루에 홀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나라 전체가 경제위기 국면에 봉착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1978년부터 2008년까지 한국은행에서 근무하며 국제수지과장, 금융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경제교육센터원장 등을 지낸 김 교수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싱가포르나 대만, 태국, 말레이시아 등 다른 신흥국이 한국과 같은 환율급등이나 주가폭락을 겪지 않았다는 점에서 논리를 풀어나갔다.

반면, 2007년 11월 달러당 902원이었던 원·달러 환율은 외국자본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면서 2009년 3월에는 달러당 1,574원까지 급등했다. 2007년 10월 2,065로 사상 최고치를 찍었던 종합주가지수는 2008년 10월 939로 반 토막이 났다.

저자는 이런 위기의 원인이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리먼 브러더스의 몰락 등 외부요인 때문만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가 공통적으로 야심차게 추진했던 금융강국 정책이 혼란을 부추겼다는 것이다. 두 대통령은 대선공약인 연 7%의 높은 성장률을 달성하기 위해 신선장 동력 확보가 절실했고, 찾은 대안은 금융산업의 전략적인 육성이었다.

노무현 정부는 ‘동북아 금융허브 건설’을 모토로 2003년부터 금융강국 정책을 추진했고 뒤이어 이명박 정부도 이를 이어받았다. 먼저 정부는 금융기관 경쟁력 확보해 대형화 시책을 추진했다. 은행들은 '몸집 불리기'를 위해 인수합병에 나서는 한편, 필사적으로 대출경쟁과 외화 영업경쟁을 벌였다.

그 결과 은행의 예대율(총예금에 대한 총대출 비율)이 치솟았고 단기외채는 급증했다. 특히 단기외채 증가는 금융시장 불안을 키운 주 요인이었다. 금융건전성 유지를 최우선으로 해야 할 금융당국은 이를 감독하기는커녕 각종 규제를 완화하는데 전력투구했다. 금융규제를 영국과 같은 선진국 수준으로 완화해야 금융강국을 이룰 수 있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정부의 무리한 금융강국 시책은 금융공기업의 투자실패로도 드러났다고 저자는 지적했다. 자산운용업 특화발전을 위해 2005년 설립한 한국투자공사(KIC)가 이 외환보유고를 넘겨받아 마련한 자금으로 메릴린치 지분투자에 나섰다가 투자원금의 절반 가까이를 날린 것이 대표적 사례다. 산업은행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리먼 브러더스를 인수하려 나섰다가 막판에서야 당국의 제지를 받고 추진을 중단했다.

이와 관련 김 교수는 “2008년초 정권을 잡은 이명박 정부 초기의 정책실패는 물론 직전 5년간 집권한 노무현 정부의 정책실패가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문제가 발생한 것”이라며 “이런 점 때문이었는지 야당도 정부정책 실패를 추궁하려고도 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위기의 재발방지를 위해서라도 당시 사태의 원인을 제대로 규명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데일리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