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발간 앞둔 '대담집' 미리보니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김우중(78) 전 대우그룹 회장이 15년 만에 입을 열었다. 1999년 대우그룹 해체의 내막이다. 이는 신장섭 싱가포르대 경제학 교수가 집필해 26일 출간하는 대담집 '김우중과의 대화-아직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를 통해 세간에 공개된다.

22일 일부 공개된 책의 내용에 따르면 김 전 회장은 '대우그룹의 해체는 기업 부실의 문제가 아니라 당시 경제 관료의 갈등 탓에 기획적으로 이뤄진 것'이라 주장했다. 김 전 회장은 이 과정에서 정부의 잘못된 판단으로 대우자동차와 관련해 한국경제가 30조원의 손실을 입었다고도 했다.

그는 "대우그룹 해체 이후 GM이 대우차를 거의 공짜로 인수했다"며 당시 대우차의 자산가치는 110억달러였는데, GM측이 4억달러에 내고 인수했고, 게다가 산업은행이 20억달러의 자금지원을 해줬다고 말했다. 김 전 회장은 "GM이 대우그룹 워크아웃 이후 4개월이 지난 1999년 12월에 이헌재 위원장 앞으로 '대우차를 50억~60억달러에 인수하겠다'는 비밀의향서를 보냈다"면서 "이로인해 기업 실사 등 투자협상이 진행 중이었는데 정부 당국자들이 느닷없이 협상 결렬을 선언했다"고 말했다.

김 전 회장은 "대우자동차가 잘못된 투자를 했다고 하지만 GM은 중국 시장에 대우차 누비라와 마티즈를 가져가 뷰익엑셀과 스파크라는 이름으로 팔아, 중국 시장에서 1위 자동차로 발돋움했다"며 "대우차가 개발한 소형차를 이용해 중국이라는 거대 신흥시장에서 성공신화를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 정부는 대우차를 실패한 투자라고 판단해 대우 해체에 따르는 비용을 고스란히 부담했고, 투자 성과는 GM이 다 가져갔다"며 "대우 해체는 실패한 정책이고 GM의 성공은 숨기고 싶은 진실이 된다"고 주장했다.

김 전 회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취임 직후 '경제 대통령이 돼 달라'는 부탁을 했다고 전했다. 김 전 회장은 "자신의 주장을 강하게 내세우는 과정에서 경제 관료들과 크게 충돌했다"며 "금융 위기 극복에 대한 철학의 차이지만 결국 감정 대립까지 갔다"고 전했다. 더구나 김 전 회장은 당시 공개석상에서 "관리들이 열심히 안 한다. 자기 할 일을 안 하고 핑계만 댄다. 이래서 나라가 어떻게 되겠나? 자기들이 못하면 자리를 비켜줘야지"라고 공공연히 말한 적도 있다. 이같은 이유 때문인지 그는 "나는 경제 관료들이 나를 제거하려는 프로그램을 갖고 있었다고 믿고 있다"며 "유동성 규제를 할 때에도 대우를 겨냥 하는 등 경제 관료들은 청와대 쪽에 하루가 멀다 하고 대우에 대해 나쁜 보고를 올렸다"고 밝혔다.

또 김 전 회장은 자신과 대우그룹 임원들에게 선고된 23조원 규모의 추징금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김 전 회장은 "대우그룹은 바깥으로 빠져나간 돈이 없이 다 회사로 들어왔다"며 "그동안 금융감독원과 회계법인들이 나서서 조사했지만 횡령으로 잡힌 게 없어 100% 회사 사업이나 차입금 상환 등에 사용된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김 전 회장은 "내용을 모르는 사람은 추징금 판결 때문에 우리가 23조원이라는 엄청난 돈을 해외에 빼돌렸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 전 회장은 추징금 산정에 대해서는 "국내자금을 해외법인으로 보낼 때 신고하지 않은 것, 해외 현지법인 차입금 신고하지 않은 것 등을 전부 합산해 개인들이 외화 불법반출한 걸로 잡아서 추징금을 매겼다"며 "해외송금액은 내보냈다가 다시 들어오고, 또 내보내고 했는데 나간 것만 단순 합산했다"고 덧붙였다. 김 전 회장의 미납 추징금이 17조9,253억원으로 국내에서 가장 많다. 그가 납부한 추징금은 800억원가량으로 전체 추징금의 0.5% 정도에 불과하다.

그는 분식회계와 관련해선 "국민들께 죄송하고 그 질책은 언제든지 다시 받을 마음이 있다"면서도 "상당 부분 당시의 관행이었고 분식을 했어도 비자금 등으로 빼돌린 건 없고 그 규모가 기업을 부실하게 운영했다고 할 수준이 절대 아니었다는 사실은 이해해줬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또 김 전 회장이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대북특사로서 활동한 이야기도 나온다. 대화록은 노태우 정부시절 대북특사로 일하면서 남북기본합의서(1991년)을 만들어내는데 일조했다고 전했다.

김 전 회장은 1999년 대우그룹 워크아웃 결정 뒤 출국해 외국에 머무르다 5년 8개월 만인 2005년 6월 귀국해 분식회계, 외환관리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당시 징역 8년6월과 벌금 1,000만 원, 추징금 17조9,253억 원을 선고받고 복역하다가 2008년 1월 특별사면됐다. 그 뒤 베트남 하노이 인근의 골프 리조트에서 거주하며 대우세계경영연구회의 글로벌청년사업가(GYBM) 양성사업에 힘을 쏟고 있다. 김 전 회장은 책에서 “앞으로 남은 여생을 젊은이들이 세계를 무대로 사업할 수 있도록 키우는데 바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전 회장은 26일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옛 대우그룹 임원 모임인 대우인회, 임직원 모임인 대우세계경영연구회 등 '대우맨' 수백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출판기념 간담회를 가질 예정이다.

1999년 한 때 세계화를 이끌던 대우그룹의 해체는 큰 충격이었다. 이른바 '대마불사(大馬不死)'의 법칙을 깨고 차입경영을 일삼는 부실 기업을 과감하게 퇴출시킨 사례로 평가되는 반면, 밝혀지지 않은 요인에 의해 억울하게 희생 됐다는 시각도 있다. 1967년 창립했던 대우실업을 모태로 한 대우그룹은 재계 서열 2, 3위를 지켜왔으며 1993년 세계경영 전략 채택 이후 1990년대 글로벌 우량기업으로 발돋움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외환위기와 확장경영에 따른 막대한 자금난으로 1999년 워크아웃에 돌입했다. 당시 경기침체의 장기화와 세계 시장의 위축으로 대우의 입지는 크게 흔들렸고, 뒤늦게 실시한 구조조정도 실효성을 거두지 못했다. 특히 그룹의 운명을 좌우할 GM과의 협상(대우차와의 경영권 문제)과 대우전자-삼성자동차 간 빅딜 협상이 모두 실패하면서 결국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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