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0 순천·곡성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한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가 30일 오후 전남 순천시 새누리당 전남도당 사무실에서 당선이 유력시되자 부인 김민경씨의 손을 잡고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정현 새누리당 후보의 당선은 7ㆍ30 재ㆍ보궐선거가 낳은 최대 이변이다. ‘박근혜의 남자’로 불리는 이 당선인은 ‘여당의 무덤’이나 다름없는 전남 순천ㆍ곡성 보궐선거에 출마해 서갑원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를 꺾었다. 그의 당선은 새누리당으로선 1996년 15대 총선에서 당시 신한국당 강현욱 후보가 전북 군산에서 당선된 이후 18년만에 처음이다.

이 당선인이 청와대 홍보수석에서 물러났을 때 정가에서는 그가 서울 동작을에서 출마하는 것 아니냐고 관측했다. 하지만 이 당선인은 고향인 전남으로 향했다. 이 당선인은 1995년 광주 광산구 시의원 선거에서 민자당 후보로 나선 때부터 지역주의라는 큰 벽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그의 당시 득표율은 10.1%였다. 하지만 이 당선인의 도전은 멈추지 않았다. 2000년 16대 총선에서 광주 서구을에 출마했고 겨우 720표 득표에 그쳤다. 2012년 19대 총선에선 같은 광주 서구 을에서 득표율 39.7%를 거두며 선전했지만 역시 분루를 삼켜야 했다. 호남에서만 3연패였다. 그렇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았다. 네 번째인 호남 도전에서 승리를 거머쥠으로써 정치사에 큰 획을 그었다는 평가다. 18년 만의 새누리당 당선이란 점에서 이 당선인이 지역주의의 높은 벽을 깼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여당 무덤'으로 알려진 전남 순천ㆍ곡성 재보선에 출마해 당당히 압승을 거둔 이정현 새누리당 후보. 자료사진
이 당선인은 박근혜 대통령의 ‘복심’으로 유명하다. 2007년 8월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패한 박근혜 전 대표가 캠프를 해체한 뒤 이 당선인에게 “떠나지 왜 그랬냐”고 묻자 이 당선인은 “대표님이 떠나라면 아예 정치판을 떠나겠다”고 답했다는 일화도 있다. 이 당선인은 이후 18대 비례대표 의원을 지내면서 박근혜 당시 의원의 '입'역할을 자임했고 청와대를 떠나기 직전까지 박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활약했다. 이렇게 박 대통령의 신임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이 당선인은 선거전에서 “순천ㆍ곡성에 예산 폭탄을 퍼붓겠다”며 ‘힘 있는 국회의원론’을 들고 나오자 지역 표심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결국 ‘노무현의 남자’로 통하던 새정치연합 서갑원 후보를 꺾고 18대 비례대표에 이어 재선에 성공하면서 그는 이변의 드라마를 연출했다.

이 당선인의 재선 성공은 이미 사전 여론조사에서 조금씩 감지되기 시작했다. 여수MBC와 순천KBS가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이 당선인은 38.4%를 얻어 새정치연합 서갑원 후보(33.7%)를 4.7%포인트 차로 따돌리는 것으로 나타나 이변을 예고했었다. 이에 새정치연합은 안철수 공동대표와 문재인 의원까지 순천에 내려가 지지층 결집에 나서는 등 순천ㆍ곡성에 비상을 걸었다. 물론 그래도 당 안팎에서는 ‘막상 뚜껑을 열면 서 후보가 이기지 않겠느냐’는 낙관론이 우세했었다. 하지만 이 당선인은 이같은 전망도 깨고 18년만에 호남에 깃발을 세운 여당 후보란 기록도 세우면서 3전4기의 오뚝이 정치인이란 닉네임도 얻는 영예를 한몸에 받게 됐다. 새누리당의 유일한 호남 지역구 의원인데다 친박의 핵심 의원이 여의도에 복귀했다는 점에서 그의 위상은 더욱 커질 것이 분명하다. 벌써부터 이 당선인을 호남 출신 여당 대선주자로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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