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임상계획에 국제전문가들 "국제기준 적합"

바이오이종장기개발사업단 "법규·관리감독 부재 해결 선행해야"

돼지의 장기를 사람에 이식하는 '이종(異種) 이식' 임상시험 계획안이 국내외 전문가로부터 타당하다는 평가를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법적 기반 부재로 인해 발목이 잡혔다. 전임상 결과에서 효능을 인정받고 국제적 기준에 맞춘 임상시험 계획을 내놨지만 정부의 외면에 시작 전부터 좌초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바이오이종장기개발사업단은 17일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제전문가들이 무균돼지의 췌도와 각막을 사람에 이식하는 사업단의 임상시험 계획을 심의한 결과, 과학적·윤리적으로도 국제 기준에 준한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17일 밝혔다. 임상시험 계획안 심의에는 세계이종이식학회, 세계이식학회 윤리위원회 등 이종 이식 분야 전문가들이 참여했다.

이종 이식은 인간의 조직 및 장기를 대체하기 위해 특수하게 개발된 동물의 조직 및 장기를 인간에 이식하는 기술을 일컫는다. 장기이식 대기자 수는 매년 증가하는 데 반해 이식에 필요한 장기는 절대적으로 부족한 문제를 해소하는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사업단이 연구해 온 돼지 췌도 이식은 소아에 주로 발병하는 제1형 당뇨병의 근본적 치료법이어서 학계와 환자들의 관심이 많다. 제1형 당뇨병은 태생적으로 췌장에서 인슐린이 분비되지 않기 때문에 췌도 이식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보통 뇌사자 2~4명에서 췌도를 분리해야만 1명에 이식할 수 있어 사람 간 이식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에 사업단은 2015년 당뇨병 원숭이에 돼지 췌도를 이식해 혈당 유지에 성공하는 등의 성과를 냈으나 실제 임상시험을 앞두고는 '국가 차원의 규제가 없다'는 이유로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이종이식 임상시험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며 임상시험 시행 시 각국의 관련법을 따르라고 하는데, 국내에는 관련 제도와 규제는 물론 관리·감독할 부처도 지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종장기 이식 대상자의 지속적인 추적관찰을 위한 법적 근거와 책임 소재가 불분명한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이종이식 특성상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감염이 발생할 수 있어서다. 관련 법이 없어 모든 책임을 연구자가 져야 한다거나 환자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현실적으로 임상시험 시행은 어렵다는 게 사업단의 입장이다.

이 때문에 사업단에서는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이종장기 이식자가 포함될 수 있을지를 소관 부처에 유권해석을 신청하는 등의 방안을 고민 중이다.

박정규 사업단장(서울대 의대 교수)은 "전문가 심의에 따라 내년 1월께 임상시험을 할 수 있게 됐지만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지 않는 한 환자와 국민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으므로 시행하기는 힘들 것"이라며 "임상시험에 앞서 이종이식 환자에게도 감염병 관련 법률이 적용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이종장기 이식 기술이 사장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이미 미국 등에서는 이종 장기이식에 대한 규제와 법적 근거를 마련했는데 우리나라만 뒤처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현재 미국에서는 식품의약국(FDA)이 이종 장기이식에 대한 모든 업무를 관장하고 있다.

리차드 N. 피어슨 하버드대학 교수(전 세계이종이식학회 회장·세계이종이식학회 윤리위원)는 "미국에서는 이종 장기이식 임상을 신청하면 FDA가 무균돼지 생산과 이식, 환자 감시 등에 대한 심의를 지속해서 수행한다"면서 "만약 사업단이 이번 임상시험 계획을 미국에서 신청했다면 FDA의 승인을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단장은 "사업단이 이종 장기이식 분야에서 쌓아온 연구개발 성과는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이라며 "사업단의 회기가 끝나기 전에 임상시험을 시행하지 않으면 이종 장기이식 인적자원과 노하우를 모두 잃게 돼 국가적 손해를 입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업단의 연구 기간은 내년 5월까지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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