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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간한국] [이야기가 있는 맛집(310)] 권오복분틀막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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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인시간승인 2018.01.29 07:02
옛날 방식 분틀, 국내산 메밀 사용…막국수‘원형의 맛’ 간직

어린 시절 먹던 메밀국수를 장사로… 아내 이름 딴 ‘신동옥옛날분틀메밀국수’ 열어

나무 분틀로 만든 국수, 기계 제면기로 만든 것과 차이…메밀 고유 맛 유지

  • 2013년 권오복 씨가 메밀 제분기 앞에서 메밀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 분틀로 메밀온면 만드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권오복, 신동옥 씨 부부.
막국수가 아니라 메밀국수. 원조, 수타, 옛날 등의 수식어를 사용한다. 강릉 ‘권오복분틀막국수’. 주인은 권오복 씨다. 예전 이름은 ‘신동옥옛날분틀메밀국수’였다. 아내 이름이 신동옥이다.

원조, 수타, 옛날 등의 이름을 사용했던 이유는 간단하다. 부부가 어린 시절 먹었던 강원도 산골의 원형 국수를 그리워하기 때문이다.
  • 국산 메밀 100% 매밀국수.
어린 시절 먹었던 분틀 메밀국수

분틀은 이름만 남았다. 메밀국수, 막국수 전문점들은 ‘유압식 제면기’를 사용한다. 분틀은 ‘가루 분(粉)+틀’이다. 곡물가루로 국수 만드는 기계다. ‘분(粉)’에는 ‘쌀(米)’ 자가 들어가 있다. 반드시 쌀가루를 가리키는 말은 아니다. 곡물 가루다. 겉껍질 벗긴 것을 ‘녹쌀’ ‘메쌀’이라고 부른다. 쌀이 귀하던 시절 강원도 태백산맥 언저리에서는 메밀을 상식했다. 메밀은 ‘쌀’이었다. 메밀쌀이라고 부른 이유다.

구면이지만 개인적인 이야기를 들을 기회는 없었다. 인터뷰를 하자고 이야기를 시작했는데도 개인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메밀 이야기만 늘어놓는다.
  • 메밀국수가 휜 모습을 지니고 있다.
“왜 ‘권오복분틀메밀국수’를 시작했느냐?”고 묻는다.

“고향이 진붑니다.”

진부는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이다. 영동고속도로를 가다 보면 인근에 하진부, 횡계 등이 있다. 깊은 산골이다. 영동고속도로 덕분에 비교적 가깝게 느껴지지만 깊은 산골이었고 지금도 고속도로를 벗어나면 외진 산길이 이어진다.

“대부분의 강원도 산골처럼 우리 집도 가난했으니까 먹고 살 길이 없었지요. 어린 시절 가출 아닌 가출을 했습니다. 대가족이 밥 먹을 만한 땅도 없고 다른 농사도 없고, 내 한 입 덜어내면 가족들에게는 도움이 되었지요. 어린 나이에 외지에서 운전을 배웠습니다. 트럭 조수 생활을 했지요.”

트럭 기사 생활을 하다가 택시를 장만했고 택시 기사를 했다.

“그 무렵에 문득 메밀국수 생각이 나더라고요. 기억 속에 가장 맛있었던 음식이었고, 어린 시절 최고의 고급 음식이었으니까.”

산골에서 살던 10대 초중반의 나이. 열 살쯤 위 동네 형들이 가끔 추렴을 했다. 몇푼 돈을 모아서 메밀을 구하고 국수를 내려 먹었다. 동네 혼사가 있으면 또 분틀 메밀국수를 먹을 수 있었다. 메밀국수는 권오복 씨의 혀와 머리, 가슴에 남았다.
  • 메밀 녹쌀. 메쌀이라고도 부른다.
분틀메밀국수? 아무도 만들지 않는다면 내가 만든다

“여러 곳에서 메밀국수를 먹어봤습니다. 내가 어린 시절 먹었던 그 메밀국수를 먹고 싶은데 그런 메밀국수를 내놓는 집이 없었습니다.”

“맛있는 메밀국수를 만들면 장사해도 되겠는 걸”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내를 내세워 메밀국수집을 냈다. 가게 이름이 ‘신동옥옛날분틀메밀국수’였던 까닭이다.
  • 가게의 전면, 간판.
아내 신동옥 씨 역시 정선군에서 자랐다. 두 사람은 권씨 누나의 중매로 결혼했다. 누나는 이웃의 참한 처녀를 친동생에게 중매했다.

권씨는 여전히 택시기사 생활을 하고 아내는 가게 일을 시작했다. 가끔 손님이 많아 가게가 바빠지면 권씨도 택시를 멈추고 가게 일을 도왔다. 그렇게 몇 해가 지났다.

“분틀을 포기할 수가 없더라고요. 이게 무척 불편하고 비효율적이긴 한데 문제는 분틀로 내린 메밀국수와 기계로 내린 게 맛이 다르다는 점입니다.”

다행히 권씨는 손재주가 있다. 직접 제작한 분틀로 국수를 내렸다. 예전 분틀을 그대로 재현했다. 더하여 가게 군데군데 크기가 다른 분틀을 배치했다. 모두 권씨가 직접 깎은 것이었다.

조선 말기, 대한제국 시기의 화가 기산 김준근(생몰미상)의 풍속화 중 ‘국수 내리는 모양’이 있다. 나이든 사내가 분틀의 막대기를 쥐고, 다리는 벽에 걸친 후 용을 쓰고 있다. 온몸의 힘으로 분틀 막대기를 내리 누르며 국수를 뽑는다. 1980년대 초반까지도 ‘막국수(메밀국수)내리는 사내 치고 앞니 성한 이 없다’는 말이 떠돌았다. 분틀 막대기를 누르다가 실수하면 막대기는 얼굴을 친다. 앞니가 성할 리 없다.

권씨는 분틀도 개선했다. 아내가 발로 꾹 밟으면 지렛대 원리로 분틀 막대기는 아래로 내려가고 국수는 뜨거운 물로 떨어진다. 가게 이름에 분틀을 고집하는 이유다.
  • 메밀온면 만드는 과정.
  • 메밀 온면
이 정도면 어린 시절 그 메밀국수와 비슷하지 않을까?

2017년 12월 중순 무렵, 권씨로부터 전화가 왔다. “메밀 온면(溫麵)을 만들었으니 지나는 길에 한번 들러 달라”는 이야기였다. 애당초 인터뷰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었고 조만간 가볼 예정이었다.

과연 권씨는 온면을 제대로 만들고 있었다. 제대로 된 ‘뜨거운 메밀국수’였다. 메밀국수는 국수로 만들자 말자 삶는다. 그 다음엔 바로 냉수처리를 해야 한다. 국수 모양을 만드는 글루텐 성분이 적으니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마치 풀죽 같이 쉬 풀어져버린다. 메밀 온면이 힘든 이유다.

‘권오복분틀메밀국수’의 온면은 국수 모양을 온전히 지니고 있었다.

권씨와의 대화 내용은 모두 메밀에 관한 것이다. 국산 메밀과 중국 수입산, 분틀로 내렸을 때와 기계를 사용했을 때의 맛 차이까지.

개인사를 듣고 싶었지만 이날도 개인사보다는 역시 메밀 이야기가 훨씬 많았다.

“제가 살았던 이야기는 강원도 산골에서 1960∼70년대를 보낸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이야깁니다. 먹고 살기 힘들었다는 이야깁니다. 다른 이야기는 없지요.”
  • 강원도 식 갓김치.
권씨의 개인사를 조금 더 적는다.

1959년 생. 8남매의 셋째다. 위로 누나가 둘, 아래로 남동생이 셋, 여동생이 둘이다. 권 씨와 아내 신동옥 씨를 중매한 이는 둘째 누나다. ‘고한에 살았다’고 했다.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이다. 어차피 같은 정선군이다. 진부면이나 고한읍 모두 외진 곳이다. 고한은 사북, 태백과 이웃하고 있다. 탄광촌이다. 초등학교(초등학교)를 겨우 마치고 가출하다시피 집을 나갔던 권오복 씨는 스물일곱 살 나던 해 결혼했다. 1남2녀를 두었다.

“지금 살고 있고, 메밀국수집을 운영하고 있는 이곳이 평생 처음 내 집이라고 장만한 곳입니다. 여기서 제대로 된 메밀국수를 만들어 보고 싶어서 메밀국수집을 냈습니다.”

1986년의 일이다.

“분틀을 고집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제면기로 뽑은 국수는 차가운 느낌이 듭니다. 나무 분틀로 만든 국수는 아무래도 면발에서 따뜻한 느낌이 듭니다.”

국산 메밀을 사용하는 이유도 간단하다. 국산 메밀가루와 달리 수입산 메밀가루를 반죽하면 퍼석거리는 느낌이 든다. 어린 시절부터 만져본 메밀가루다. 어떤 게 가장 맛있는 메밀 향을 지니는지 권씨는 정확히 알고 있다.

“지금도 시골에 가면 분틀을 사용하는 곳이 있습니다. 식당에서 분틀을 사용하기 힘듭니다. 생산성이 떨어지지요.”
  • 일본식 소바로 내놓는 메밀 국수.
‘출장 메밀국수’를 아십니까?

재미있는 것은 ‘메밀국수 출장’ 이야기다.

강원도 토박이 노인들은 여전히 예전 분틀 메밀국수의 맛을 기억한다. ‘막국수’라는 이름은 1980년대 이후 서울에서 시작되었다. 강원도 출신 노인들은 어린 시절 어느 동네나 혼사 등 주요 이벤트가 있으면 ‘메밀국수를 내렸다’. 전라도 사람들이 홍어 없는 혼사는 없다고 하면, 강원도 깊은 산골에서는 메밀국수 없는 혼사는 없다는 식이었다.

소중한 날, 기억에 남을만한 날에는 늘 메밀국수가 곁에 있었다. 굳이 메밀을 택한 이유도 간단하다. 그나마 국수를 내릴 수 있는 것이 메밀이었다. 감자나 옥수수는 국수로 만들기 힘들다.

지금도 모임이 있으면 당연히 메밀국수를 먹어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분틀도 사라졌고 분틀로 메밀국수를 만들 수 있는 이도 없다. 권씨는 이런 모임에 여러 번 불려 다녔다. 이른바 ‘출장 메밀국수’다.

“이동할 수 있는 분틀을 만들었지요. 하도 여기저기 부르니 안 갈 수도 없고, 아니 제가 먼저 가고 싶었지요. 그래서 크기가 작고 이동 가능한 분틀을 만들어서 그런 모임에서 부르면 달려갔지요. 돈을 얼마 버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지요. 메밀국수 맛을 아는 분들입니다. 이런 분들이 메밀국수를 먹으며 행복하게 웃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어린 시절 먹었던 바로 그 맛이라는 소리가 최고의 찬사지요.”

국산 메밀, 녹쌀 상태로 구입한 후, 직접 제분, 분틀 제면까지. ‘어린 시절 먹었던 메밀국수’는 여전히 권씨에게 화두다.

“몇 가지 나름대로 정리한 것은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봉평 산 메밀이 좋다고 하는데 제가 써보니까 정선 산 메밀이 오히려 좋더라고요. 개인적인 경험이니까 틀릴 수도 있지만. 메밀을 굵게 갈아서 국수를 만들었을 때 메밀향이 훨씬 강하게 느껴지더라는 것, 메밀을 갈 때 뜨거운 상태에서 갈아내면 향이 쉽게 사라지고, 차가운 상태에서 갈아야 향이 오래 남더라는 것. 여름 메밀 맛이 떨어지는 것은 제분 과정에서 열을 받는 것도 주요한 이윱니다.”
  • 메뉴, 가격표와 최근 권오복 씨가 만든 피노키오 인형.
  • 예전 가게에 있었던 각종 분틀의 모형. 권오복 씨가 직접 깎은 것이다.
분틀로 제면을 하면서 알게 된 이야기 하나.

“면 소다를 사용하면 분틀 제면이 되지 않습니다. 국수 누르기가 힘들어집니다.”

메밀뿐만 아니라 밀가루 국수를 만드는 이들도 ‘어쩔 수 없이’ 소다를 사용한다고 주장한다. 분틀로 국수를 만들면 오히려 제면이 힘들다. 분틀을 고집하는 이유 중 하나다. 온면을 시도한 이유도 간단하다. 권오복 씨의 ‘메밀 실험’의 한 과정이다.

국수 틀, 분틀을 만들고 국수를 만든 지 30년이 가까워진다. 권오복 씨는 여전히 메밀국수가 화두다. 손재주가 좋아 분틀을 여러 개 만들고, 최근에는 나무로 피노키오 인형을 깎아서 가게 군데군데 장식품으로 둘러놓았다. 여전히 화두는 메밀국수다. 어린 시절 먹었던, 당시 제법 고급음식이었던 메밀국수. 그 국수를 만들어서 내놓고 싶다.

글ㆍ사진= 황광해 음식칼럼니스트 dasani87@naver.com

[메밀100% 메밀국수집 4곳]

삼군리메밀촌
  • 삼군리메밀촌
‘채널A_착한식당’에 100% 국산 메밀국수를 내놓는다고 소개되었다. 주인은 강원도 봉평 출신으로 횡성에서 살았다. 메밀묵과 메밀전병도 내놓는다. 수준급.

전씨네막국수
  • 전씨네막국수
강원도 인제에서 양구로 넘어가는 광치령 입구에 있다. 국산 메밀 100% 국수 외에 두부전골도 권할 만하다. 역시 국산 콩으로 직접 두부를 만든다.

송월메밀국수
  • 송월메밀국수
양양에 있는 메밀 100% 국수집이다. 두부가 좋고 반찬으로 내놓는 겨울 김장김치나 동치미 등이 아주 좋다. 비교적 세련된 모양새. 음식 맛은 토속적이다.

옛날공이메밀국수
  • 옛날공이메밀국수
영동고속도로 속사IC 부근에 있다. ‘공이’는 제면기에 넣기 전 메밀반죽의 모습을 이르는 표현이다. 예전에는 메밀국수의 양을 공이로 셈했다. 한 공이는 4-6인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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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18/01/29 07:02:36 수정시간 : 2018/02/02 10:3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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