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여행 트렌드⑱ '큰 손' 유커]

중국인 관광객, 메르스 후 회복세… 2020년 연간 1280만 명 유치 전망

유커 여행객 절반 이상 2030세대… 강남·홍대·대학로에서 중국어 들려

서울 명동 거리를 가득 메운 중국인 관광객 인파.

[데일리한국 신수지 기자] 서울 용산구에 거주하는 김모(36) 씨는 “최근 강남 가로수길로 쇼핑을 나갔다가 깜짝 놀랐다”고 입을 열었다. 가로수길 상점을 하나씩 지날 때마다 중국어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김 씨는 “중국인 관광객들은 명동 거리나 제주도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강남권으로도 영역이 확대된 모양이더라”며 “길거리를 지나다가 한국 대학생인 줄 알았던 젊은 여성이 중국어를 해 놀랐던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인 관광객들의 옷차림이나 화장법도 한국인과 비슷한 느낌이 나는 경우가 많아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유커, '관광 큰 손' 으로 떠오르다

2010년 일본을 제치고 미국에 이어 G2로 부상한 중국은 2012년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의 관광시장으로 부상했다. 특히 중국 아웃바운드(중국 관광객의 해외여행) 관광시장은 2010년 5,739만 명을 넘었으며 지난해에는 처음으로 1억 명을 돌파했다. 스페인의 세비아 등 전 세계적으로 '중국인 친화도시'(Chinese Friendly City)를 표방하는 곳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을 정도로 중국인 관광객들의 영향은 거세다.

우리나라에서도 ‘유커'(遊客)라 불리는 중국인 여행객들은 관광 분야의 ‘큰 손’으로 불린다. 유커란 본래 관광객을 통칭하는 중국어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중국인 관광객’을 특정해서 부르는 말로 사용하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최근 내놓은 ‘중국 관광객 유치 활성화를 위한 대응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을 방문한 중국 관광객수는 2001년 48만 명에서 2014년 613만 명으로 연평균 21.5% 증가했다. 현재 추세대로라면 2020년에는 중국 관광객을 1,280만 명까지 유치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여파로 인해 한동안 한국 관광 기피 현상이 일어나기도 했으나 최근에는 완연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2일 한국관광공사 등에 따르면 올해 국경절(이달 1~7일)에 한국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유커)은 전년(16만 3,534명) 대비 30%가량 증가한 21만 명으로 전망된다. 이미 지난달 말 일평균 중국인 입국자 수도 2만 3,000명대로 지난 5월(1만 9,000명)에 비해 크게 증가했다.

여기에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기업 등이 힘을 합쳐 ‘유커 잡기’에 총력을 기울인 효과가 컸다는 평이다. 문화체육관광부, 한국관광공사 등 관계 부처와 기관은 최근 여행업계 관계자, 언론인 등을 대규모로 국내에 초청해 한국 관광 홍보에 나섰다. 국토교통부는 중국 남방항공 등 메르스 사태로 운항 횟수를 줄인 항공사에 재취항 서한을 보내는 등 국제항공 업무에 공을 들였고, 박원순 서울시장과 원희룡 제주지사는 중국 상하이 등을 직접 방문해 유커 잡기에 나섰다. SK와 두산 등의 기업이 유커 관광 활성화를 위한 ‘코리아 그랜드 세일’ 행사에 참여했고, 이부진 호텔 신라 사장도 직접 중국 베이징과 상하이를 여러 차례 방문해 한국 관광에 대해 설명했다. 롯데면세점도 중국의 여행사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롯데호텔, 롯데월드어드벤처와 함께 중국 현지에서 한국 관광 홍보 행사를 진행했다.

한국관광공사 관계자는 “방한 중국인 관광객 수가 예년 수준을 서서히 회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 내 한국 여행정보 제공·예약 사이트 ‘한유망’ 관계자도 “여행 상품 예약이 기존 수준을 회복한 모양새”라며 “이제는 유커들이 한국을 여행할 때 메르스 발병에 대해 크게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메르스 사태 이후 한국관광공사 주최로 개최된 중국 완다여행사 방한 단체 1,000명 환영 행사. 사진=한국관광공사 제공

단체 관광보다 자유여행…달라진 유커 여행 풍속도

한국을 찾는 유커 연령대의 중심은 명품 쇼핑을 즐기는 40~50대에서 유행을 중시하고 인터넷과 친숙한 20~30대, 이른바 ‘바링허우’(80後·1980년 이후 출생 세대)로 옮겨가고 있다. 올해 초 KDB대우증권이 중국 최대 인터넷 여행예약 사이트 씨트립(Ctrip·携程) 통계를 분석한 결과 바링허우가 방한 중국 여행객 가운데 60%나 차지했다. 과거 유커들이 즐기는 한국 관광이 가이드를 따라다니는 패키지 여행, 필수 관광지와 쇼핑 중심의 터치앤고(touch and go)형 여행이었다면, 이들 바링허우는 자신이 직접 계획을 짜 여행지를 돌아다니는 자유 여행을 즐긴다. '짜이서울', '한유망' 등의 한국 여행정보 제공 사이트나 블로그가 이들이 여행 정보를 찾는 수단이다.

실제 한국 자유여행에 대한 중국인의 인터넷 검색량도 단체여행에 대한 검색량의 2~3배 수준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관광공사가 지난해 말 중국 최대의 인터넷 포털인 바이두와 공동으로 바이두 사용자의 검색 트렌드 등 빅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2011~2014년 한국 자유여행에 관한 검색량은 단체여행 검색량의 2~3배 수준에 달했다. ‘한국 관광’을 검색한 중국인은 여성 비중이 55%로 남성을 앞질렀다. 특히 20~30대 여성이 방한 여행에 가장 큰 관심을 보였다.

한국 인바운드(해외 관광객의 국내 여행) 여행사 관계자는 “자유여행을 선호하는 유커들이 늘다보니 여행사들도 ‘반자유’식으로 전체 일정 중 하루이틀 정도는 여행자가 개별적으로 관광하는 형태의 상품을 늘리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인 자유 여행객들이 한국 여행 정보를 찾기 위해 찾는 '한유망' 웹사이트.

강남·홍대·대학로…'유커 없던' 곳에 유커가 떴다

자유여행을 선호하는 젊은 관광객들이 많아지다 보니 명동, 동대문 시장이나 제주도에만 머무르던 유커들의 발길도 강남과 홍대, 대학로 등으로 계속 넓어지고 있다.

최근 강남구청 집계에 따르면 강남구를 찾은 외국인 관광객 수는 2012년 131만명에서 지난해 602만명으로 2년 새 5배 가까이 늘었다. 올해는 700만명을 돌파할 것으로 업계와 강남구청은 내다보고 있다. 특히 압구정에 조성된 한류스타 거리와 가로수길 등을 중심으로 개별 관광객이 늘어나는 추세다. 국내 젊은 층에게도 인기가 높은 서교동 카페거리와 상수·연남동, 이화벽화마을이 있는 대학로, 동대문 ‘닭한마리’ 골목 등에도 중국인 관광객들이 많아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여전히 서울의 명동이나 제주, 한류 드라마 속에 등장한 장소 등이 쇼핑 관광지로 압도적인 인기를 구가하고 있지만, 최근 한국을 찾는 바링허우들을 중심으로 인터넷 블로그나 SNS를 참고해 직접 관광지를 선택하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며 "'뻔하지 않은' 관광지를 찾는 유커들이 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삼성역의 코엑스몰이나 고속터미널역의 센트럴시티, 잠실의 제2롯데월드도 최근 떠오르는 관광지이고, 레저 활동이 가능한 서울 근교의 여행지를 찾는 중국인들도 요즘 자주 눈에 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추세를 따라 관광공사는 최근 신규 방한 상품 개발을 위한 대규모 팸투어를 실시하기도 했다. 이 행사에서 공사는 방한 여행업자들에게 영동 와인열차, 춘천 물레길, 광명 동굴테마파크 등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는 비교적 덜 알려진 테마관광지를 소개했다.

공사는 중국 배낭여행·자유여행 전문 여행사 담당자를 초청해 '서울 맛골목 기행 상품' 기획 답사 활동을 실시하기도 했다. 이 행사에서는 ▲서울지하철역 ▲신당동 떡볶이골목 ▲오장동 냉면거리 ▲동대문 닭한마리 ▲신림동 순대타운 ▲노량진 수산시장 ▲장충동 족발골목 등이 맛 골목으로 소개됐다.

관광공사가 최근 방한 여행업자들에게 새로운 유커 여행지로 소개한 영동 와인열차. 사진=한국관광공사 제공

‘다시 찾고 싶은’ 한국 만들기에 주력해야

한국을 찾는 유커들의 영역은 넓어지고 있지만 재방문율이 낮아지고 있다는 점은 문제로 꼽힌다. 최근 4년 간 방한 중국관광객의 1회 방문자 비중은 2011년 68.5%에서 2014년 79.8%로 증가한 반면, 재방문자 비중은 14.8%에서 11.6%로 감소했다. 체제 기간도 2011년 10.1일에서 2012년 7.5일, 2013년 7.1일, 2014년 5.7일로 점차 줄고 있는 추세다. 관광 활동 또한 쇼핑에 치우쳐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중국인 관광객을 대하는 관광업계에서도 국내 관광의 중국인 유치 실태에 대한 부정적 답변이 대다수였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중국인 관광상품을 취급하는 국내 여행업체 300곳에 중국인의 한국관광에 대한 이미지를 묻자 ‘나빠지고 있거나 그저 그렇다’는 기업이 81.6%나 차지했다. ‘좋아지고 있다’고 답한 기업들(18.4%)도 유커 증가 추세에 대해 묻자 ‘지속가능하지 않다’(56.3%)고 답변한 경우가 ‘지속될 수 있다’(43.7%)고 응답한 경우보다 많았다.

이런 가운데 일본과 태국 등의 중국 관광객 유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특히 일본의 경우 최근 중국인 관광객의 재방문을 유도하기 위해 단체관광객 비자, 복수 비자, 가족관광 비자 등을 발급하는 혜택을 제공하고 항공노선 확충 등 다양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 중국인을 대상으로 한 계층 맞춤형 여행상품 개발도 이뤄지고 있다. 중저가 생활필수품을 판매하는 드러그스토어에서 5,000엔 이상 물건을 사면 소비세 8%만큼을 깎아 면세가로 판매하는 서비스가 등장하는가 하면, 일본의 호텔 예약 사이트인 ‘이큐’에서는 부유층 관광객을 겨냥한 고급 식도락 여행 상품을 개발해 판매 중이다.

최근에는 엔저 영향이 더해져 2015년 1월부터 4월까지 일본을 방문한 중국인이 133만 명을 기록하는 등 전년 대비 두 배 증가했다. 지난 1월 여행 사이트 트래블주가 중국인 4,3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가장 가고 싶은 여행지’ 설문조사에서도 일본은 39.6%의 지지로 1위에 올랐다. 태국은 저가 패키지 상품을 근절하는 방식으로 유커를 끌어 모으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중국인 관광객 국내 유치의 지속 가능성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질 낮은 저가 여행상품과 단체 관광객 중심의 수용 태세를 꼽았다. 자유여행 트렌드가 대세가 되고 있는데도 국내 관광업계는 재방문자보다는 최초 방문자 중심의 유커 유치 패턴을 보이는데다, 쇼핑관광과 바가지 요금에 의존하는 저가 여행상품 판매 관행이 만연해 있어서 중국 관광객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밖에 대형 항공편에 치우친 운송 수단, 미온적인 관광 불평·불만 처리, 중국인 관광객이 새롭게 즐길 수 있는 관광상품 부족 등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실제 지난달 일주일 간 한국 관광을 하고 간 중국인 A씨(27)는 기자에게 “K-POP에 관심이 있어 한국을 찾았는데 쇼핑 외에 크게 즐길거리가 없다는 인상을 받았다”면서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가 끝나고 나왔더니 택시기사가 바가지 요금을 씌우는 등 몇 번 불쾌한 경험을 해 이러한 부분에 대한 개선도 필요하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당시 함께 여행에 나섰던 중국인 B씨(26)의 경우에는 "상인들이 중국인들을 조금 만만하게 본다는 인상을 받았다"며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쇼핑이 목적이면 한국에 갈 돈으로 차라리 일본을 가라'는 이야기도 있더라"고 전했다.

장병권 호원대 교수는 "쇼핑관광과 바가지요금에 의존하는 저가 여행상품을 근절하고, 중국의 20~30대를 대상으로 한 상품 개발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관광서비스 품질 향상, 스마트 관광서비스 인력 양성 등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여행업계 관계자도 “해외 사례와 같이 유커의 가치관과 감성을 헤아려 맞춤형 상품을 개발하고 홍보하는 각계의 노력이 시급하다”면서 “한류의 영향만 믿을 것이 아니라 하루빨리 유커들의 볼거리를 충족시키고 쇼핑 영역에 편중된 유커 소비를 타 분야로 확산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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