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여행 트렌드 (16) DMZ투어]

외국 관광객 "같은 나라인데 북한을 망원경으로 훔쳐보는 현실이 슬프다"

임진각 '자유의 다리', 도라산역 '평양 방면' 표지판..."갈 수 없는 현실"

"DMZ 관광객 대부분 외국인...통일 위해 한국 젊은이들도 관심 가져야"

도라산 전망대.
[파주= 데일리한국 이서진 기자] 비무장지대(De-Militarized Zone·이하 DMZ)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의 발길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특히 지난 8월 북한의 지뢰 도발 사태로 남북관계가 급랭됐을 당시 전 세계 외신을 통해 DMZ 관련 보도가 나가면서 DMZ투어 이용객들이 더 늘어났다. 외국인 관광 전문여행사 코스모진에 의하면 올해 8~9월 이 회사의 DMZ투어 고객은 작년 동기 대비 10% 증가한 월 평균 2,200여명(일 평균 80명 이상)인 것으로 집계됐다. 앞서 6월과 7월 초 메르스 여파로 파주 민간인통제선 이북 지역(민북 지역) 관광이 중단됐던 것을 감안하면 급속히 활기를 되찾은 것이다.

DMZ는 과거 동서 두 진영의 20여 개국이 치열한 전쟁을 벌였던 곳이다. 이토록 다양한 민족과 국가가 한 자리에서 전투를 치른 경우는 역사상 유래가 없다. 여기에 ‘세계 유일의 분단 국가’인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관광지인 점도 DMZ투어가 눈길을 끄는 이유다. 이철수 코스모진 패키지부 팀장은 “판문점에 이어 외국인들에게 두 번째로 인기가 높은 관광 장소가 DMZ”라면서 “땅굴 탐험에서 오는 긴장감까지 있어서 꾸준히 외국인들의 흥미를 끌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데일리한국> 기자가 한국의 대표적인 관광상품으로 자리잡은 DMZ투어를 체험해봤다.

DMZ 영상관.

‘전쟁 잔해와 평화의 공존‘ 임진각 관광지

호텔 앞 픽업서비스를 이용해 관광버스를 타고 임진각 관광지에 도착했다. 이날 투어는 영어로 진행되기 때문에 참여한 외국인 관광객 29명 중 대부분이 캐나다, 호주, 영국 등 영어권 국가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담당 가이드가 DMZ의 역사적 배경에 대해 설명하자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들은 뒤 질문을 던졌다. 북한 지도자 김정은이 거론되자 그 이름을 잘 안다는 듯이 표정을 짓는 외국인도 있었다. 가이드는 “이용객 중 40% 정도가 한국 관광 자유 일정의 하나로 DMZ투어를 신청한다”면서 “이밖에도 비즈니스, 친구 방문, 국제회의 참석 등을 이유로 한국을 방문했다가 우연히 참여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임진각은 1971년 남북 공동성명 발표 직후 개발된 국내의 대표적인 통일관광지이다. 한때 냉전의 상징이었던 임진각 관광지에는 현재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는 복합문화공간이 조성돼 있다. 본관 건너편에는 매년 명절마다 실향민들이 고향을 향해 절을 하는 장소인 망배단(望拜壇)이 자리하고 있다. 특히 망배단 뒤쪽에 위치한 ‘자유의 다리’를 향해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외국인들이 유난히 많았다. 이 다리는 휴전협정 이후 한국군 포로 1만 2,773명이 자유를 찾아 귀환한 곳이다.

이밖에도 임진각 통일공원 내에서 미군 참전 기념비와 트루먼 동상, 판문점 회의장 모형 등을 볼 수 있었다. 통일공원 왼편에는 남과 북을 오가던 마지막 '경의선 장단역 증기기관차’가 철로 위에 묶여 있었다. 이를 본 호주 출신의 한 남성 관광객은 “기관차에 한국전쟁 당시 맞은 1,020개의 총알 자국이 남아 있다는 설명을 듣고 놀랐다”면서 “녹슬고 흉한 기관차의 모습이 전쟁의 비극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도라산역 내부.
안보관광의 명소..‘북한의 남침 야욕 현장’ 제3땅굴

이어 안보 관광의 명소로 꼽히는 제3땅굴로 이동했다. 땅굴의 길이는 약 20분 안팎이면 도보로 왕복이 가능하다. 관람로의 경사가 가파르기 때문에 관광객들은 가방과 무거운 소지품 등을 사물함에 보관한 후 출발해야 했다. 또한 울퉁불퉁한 땅굴 천장에 머리를 다칠 수 있어서 헬멧 착용이 필수였다. 내리막길을 걷다보면 ‘북한이 굴착 작업 중 아군에게 발견되어 작업을 중단한 지점’이라고 명시된 팻말이 나왔다. 관광객들은 이곳에서 발길을 돌려 다시 출구로 향했다.

제3땅굴은 파주시 군내면 점원리에 위치해 있다. 총 길이 1,635m, 폭 2m, 높이 2m에 이르며 1시간에 무장군인 1만 명이 이동할 수 있는 통로다. 이 땅굴은 지난 1978년 문산까지의 거리가 12km, 서울까지의 거리는 52km 지점에서 발견됐다. 북한은 땅굴이 적발되자 오히려 "남한에서 북침용으로 뚫은 것"이라고 강변했었는데, 내부 갱도를 살펴보면 굴을 팔 때의 폭파 흔적이 남쪽을 향하고 있어서 북한의 주장이 허구임을 알 수 있다.

땅굴의 입구에는 내·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기념품점이 있었다. 주로 남북한의 병사 인형 및 DMZ 기념엽서와 필기구, 각종 식료품 등을 판매하는 곳이다. 담당 가이드는 “파주가 주산지인 개성인삼과 장단콩을 이용해 만든 초콜릿, 질 좋은 대나무술이 외국인들에게 인기”라고 귀띔했다.

도라산역 외부.

“북한이 눈앞에” 최북단의 도라 전망대·도라산역

도라 전망대에 도착하자 외국인들이 환전소로 가서 동전을 바꿔왔다. 이 곳에서 단돈 500원을 넣고 망원경을 통해 개성의 김일성 동상과 개성공단, 송악산, 북한의 선전 마을인 기정동 마을, 개성시 변두리, 장단역, 기차화통, 금암골 협동농장 등을 볼 수 있었다.

도라 전망대는 송악산OP 폐쇄에 따라 1986년 국방부에서 남측의 최북단(해발 156m) 전망대이다. 투어에 참여한 에스토니아 남성은 “날씨가 맑아 기정동 마을이 비교적 선명하게 보이는데도 사람은 한 명도 돌아다니지 않는 것 같다”면서 “같은 나라인데도 북한을 망원경으로 훔쳐보듯 관찰하는 현실이 신기하면서도 슬프다”고 말했다.

이어 방문한 도라산역은 비무장지대 남방한계선에서 700m가량 떨어진 남쪽 최북단역이다. 특히 ‘평양 방면’이라는 표지판이 달린 도라산역 개찰구는 외국인들에게 인기 있는 사진 촬영지였다. 이 곳에서 서로 사진을 찍어주던 호주 여성 관광객 2명은 "역이 있는데도 기차가 달릴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입을 모았다.

도라산역은 이중적 의미를 지닌다. 현재 분단의 상징이지만 향후 경의선 철도가 연결되면 남북 교류의 관문으로 자리잡게 되기 때문이다. 2001년 10월 임진강역 개통에 이어 2002년 2월 12일 설날에 철도운행이 중단된 지 52년 만에 임진강을 통과하는 특별 망배열차가 운행되기도 했다.

역사 한쪽에는 도라역 기념방문 도장도 마련돼 있었다. 관광객들은 입장권이나 지폐에 도장을 찍어 기념으로 가져갔다. 별도의 입장료를 내면 승강장 안으로 들어가는 것도 가능하지만 이날 승강장 내부를 구경한 외국인은 없었다.

도라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북녘.

외국인 관광객만 늘어가는 DMZ…국내 젊은이들 관심 필요해

DMZ는 분단 70년의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의 슬픔이 아로새겨져 있는 곳이다. 그러나 정작 한국인보다 외국인들이 더 많이 찾는 장소이기도 하다. 실제로 투어에 나선 날 기자를 제외한 이용객 중 내국인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코스모진의 통계에서도 DMZ투어 올해 전체 신청자 중 한국인들의 비중은 10%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들도 고국 방문과 외국어 공부를 위한 관광, 수도권 구경 등을 목적으로 투어에 참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에 DMZ투어를 전문적으로 진행하는 업체는 10여 곳이지만 이 가운데 95%이상이 외국인을 주 고객으로 하는 상품만을 판매하고 있다. 한국인들의 관심이 그만큼 적기 때문이다. 관련업계 종사자들은 "통일을 준비해가야 하는 시점이므로 국내 젊은이들이 DMZ에 대해 기본적인 지식과 관심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서울 소재 한 새터민 지역적응센터 관계자는 “새터민들과 함께 DMZ투어를 하다 보면 젊은 한국인은 찾아보기 힘들다”면서 “자발적으로 관심을 가지는 한국인들은 대부분 6·25를 경험했거나 간접적으로 듣고 자란 50대 이상의 고령층”이라고 말했다. 그는 “새터민들이 이처럼 분단 상황에 관심이 없는 남한 젊은이들을 보고 실망할 때가 있다”며 “북한의 도발이나 정책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도 좋지만 정작 가까이 있는 곳부터 체험하고 느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임진각 관계자도 “국내 젊은이들보다 외국인들이 DMZ와 관련한 문의를 많이 한다”면서 “요즘 국내 학교에서 오는 단체견학이 전보다 늘어났지만 여전히 DMZ의 개념 자체도 모르는 청소년이나 대학생이 많다”고 지적했다.

1980년대 이후에 대중화된 DMZ투어는 프로그램의 세분화, VVIP 투어와의 접목 등으로 발전해가며 국내 관광업의 효자 노릇을 해왔다. 지난해에는 ‘한국 관광의 별’에 선정된 만큼 파주시 등에서도 관련 상품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하지만 DMZ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 관광 자원이기 이전에 한민족의 아픔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공간이다. DMZ투어를 마치고 돌아오며 생각했다. 전쟁의 참상과 그에 따른 상흔을 이해하려는 우리 국민들의 노력이 선행된다면 DMZ투어는 외국인들에게도 흥미로운 관광 이상의 의미를 가지게 될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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