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패션 대결 ⑱ 운동화]
'여심' 잡는 달콤한 디자인이 새 트렌드… 연예인 모델 내세워
굽 높은 구두 벗어던지고 편안함·멋 찾는 '운도녀' 크게 늘어
1980~90년대 추억 되살리는 '레트로 운동화' 폭발적 인기

운동화가 여성들의 일상화로 자리잡고 있는 추세다. 사진=뉴발란스 제공
[데일리한국 신수지 기자] 서울 강남구로 출퇴근하는 직장인 박민아(33) 씨는 "최근 우리집 신발장 풍경이 달라졌다"고 말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신발장을 가득 메우고 있던 것은 굽 높이가 5cm 이상인 정장 구두였지만, 요즘에는 굽이 낮은 운동화가 대부분이다. 박 씨는 “이전에는 상사들이 딱 떨어지는 정장 스타일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서 구두도 그에 맞게 신고 다녔는데, 최근에는 직장 분위기가 많이 유연해졌다”고 말했다. 그는 “평소 출퇴근할 때에는 오피스룩에도 잘 어울리는 너무 튀지 않는 디자인의 운동화를 신고 다니고, 휴일에 친구나 남자 친구를 만날 때에는 사랑스러운 파스텔 색상의 운동화를 코디해 입는다”고 말했다.

여심 사로잡는 '달콤한 디자인' 운동화가 새 트렌드

애슬레저 룩(운동을 뜻하는 athletic과 여가의 의미인 leisure의 합성어로 스포츠웨어를 일상복처럼 입거나 스포츠웨어에 일상복을 함께 코디해 입는 패션)이 젊은 여성층을 중심으로 새로운 패션 트렌드로 떠오르면서 운동화도 '일상화'로 자리잡는 추세다. 이에 따라 운동화 업계는 여성 고객 잡기에 여념이 없다. 특히 기능성을 강조했던 과거와 달리 올 봄에는 레깅스, 스커트 등 캐주얼 의류와 함께 입었을 때 여성미를 드러낼 수 있는 색상을 사용하고, 다리가 길어보이도록 뒷굽을 높이는 등 디자인을 전면에 내세운 '라이프스타일화'를 출시한 업체들이 많다.

스포츠 브랜드 휠라(FILA)는 최근 ‘젤라또’라는 이름의 제품을 출시했다. 봄을 맞아 본격적인 외출을 준비하는 여성들을 겨냥해 출시한 산뜻한 콘셉트의 운동화다. 이 제품은 젤라또 아이스크림을 연상시키는 파스텔 색상에 스커트 등에도 무난하게 코디할 수 있도록 뒷굽을 높인 스타일로 제작됐다. 여기에 실제 젤라또 아이스크림의 명칭으로 쓰이고 있는 프라골라(딸기 젤라또), 멘타(민트 젤라또), 초콜라또(초콜렛 젤라또) 등의 애칭도 붙였다.

휠라가 여성 고객들을 겨냥해 출시한 '젤라또' 시리즈. 사진=휠라 제공

그런가하면 뉴발란스도 최근 상큼한 파스텔 색상의 ‘ML999AA라벤더’와 ‘CM1600LB’, ‘ML999CCW’를 잇따라 선보였다. 일반 기능성 라인과는 달리 스웨이드 원단을 사용해 여성스러운 느낌을 살렸다. 출시와 동시에 배우 하연수와 모델 장윤주를 내세운 패션 화보를 공개해 여심을 자극하기도 했다. 지난 3일에는 지난해 폭발적 인기를 모았던 벚꽃을 콘셉트로 한 운동화 ′999 체리블라썸′을 다시 내놓았는데, 출시 하루 만에 완판되며 품귀 현상을 낳았다.

여성 가수 아이유를 전속 모델로 영입하면서 화제를 모았던 스베누 역시 올해 블루, 핑크, 스카이블루, 민트 등 사탕을 연상시키는 색상의 ‘캔디(can:D)시리즈’ 로 여성 고객 잡기에 나섰다. 나이키 또한 3월 7일 세계 여성의 날에 맞춰 뉴욕, 도쿄, 밀라노 등 각 도시를 상징하는 색상과 꽃 패턴을 적용한 ‘나이키 우먼스 에어맥스'를 선보였다.

기능성 제품을 주로 출시하던 업체들도 최근 노선을 달리하고 있다. 워킹화를 주력으로 하는 프로스펙스는 최근 라이프스타일 워킹화 ‘W LITE ZEB’를 출시했다. 기능을 강조했던 과거와 달리 검정색과 흰색이 섞인 과감한 지브라(얼룩말) 패턴을 적용하면서 패션성을 부각했으며, 부드럽고 고급스러운 천연 가죽 소재를 적용했다. 아웃도어 브랜드 밀레도 올해에는 패션성을 강화한 워킹화를 선보였다. 기존에 주력으로 내세웠던 등산화와 달리 날렵한 디자인이 특징이며, 젊은층이 즐겨 입는 청바지, 레깅스 등과 함께 연출이 가능하다. 일상복과의 무난한 코디를 위해 브라운, 카키, 네이비 등 전반적으로 톤 다운된 색상을 사용했다.

업계 관계자는 “일상에서 패션 소품으로 두루 착용할 수 있는 운동화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디자인이 강화된 라이프스타일화가 인기”라며 "특히 용도와 기능에 따라 제품을 주로 선택하는 중·장년층에 비해 등하교, 출퇴근, 가벼운 운동까지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제품을 찾는 젊은 여성층 고객들이 시장에서 '품절 대란'까지 일으킴에 따라 이들을 잡기 위한 업계의 노력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금강제화의 '르느와르 스튜디오' 드레스 스니커즈. 사진=금강제화 제공

'출퇴근길 하이힐' 벗어던지고 운동화 신는 '운도녀'들

과거 '직장인 여성 패션', '오피스룩'하면 흔히 떠오르던 것은 정장 치마에 굽이 있는 구두를 갖춰 입은 모습이다. 하지만 최근 복장에 크게 규제를 두지 않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운도녀’(운동화를 신는 도시 여자)가 트렌드로 떠오르면서 활동성과 편안함이 강조된 패션을 찾는 여성 직장인들도 많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치마나 바지에 운동화를 조합해 입고 출퇴근하는 여성들을 거리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됐다.

실제로 지난 9일 금강제화가 발표한 봄 정기 세일 1주차(4월 1일~7일) 여성 신발 판매 결과에 따르면 3cm 이하의 굽이 낮은 신발 판매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6%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 업체가 지난달 '운도녀'를 겨냥해 신규 브랜드로 출시한 '르느와르 스튜디오'의 스니커즈들은 여성 신발 판매량 상위 10위권을 대부분 차지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게 관계자의 전언이다. 금강제화는 이 브랜드의 스니커즈에 ‘드레스 스니커즈'(Dress Sneakers)라는 이름을 붙여 홍보하고 있다. 출근길이나 격식 있는 자리에 정장과 함께 입기 쉬운 운동화라는 의미다. 제품은 이름에 걸맞게 20~30대 여성에 반응이 좋은 크리스털, 스터드, 글리터 가죽 등 화려한 장식을 적용해 세련미를 강조했다.

금강제화 관계자는 “예년보다 굽이 낮은 신발을 선호하는 여성 직장인들이 늘 것으로 예상해 물량을 20% 더 준비했지만 일부 제품은 벌써 품절될 정도로 인기가 좋아 주문 판매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빠르게 캐주얼화 제품군을 확대하고 있는 금강제화는 현재 매장 내 운동화 제품이 절반에 가까운 45%에 달한다.

금강제화뿐 아니라 여성 정장 구두를 주력으로 출시하던 슈콤마보니, 탠디 등 업체들도 다양한 캐주얼화를 속속 내놓는 추세다. 특히 아찔한 하이힐이 트레이드 마크였던 슈콤마보니는 2013년 운동화 '스카이'를 출시한 뒤 1년 새 4만 족을 팔아치웠고, 지난해 11월에는 후속작 ‘헤븐’을 내놓았다. 이 제품도 출시 5개월 만에 5만 족 이상 팔려 나가며 역시 높은 인기를 누렸다. 천연 소가죽과 매쉬 소재 등을 섞은 고급스러운 디자인이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화제를 모았다. 탠디의 경우에는 지난해에 비해 캐주얼화 비중을 두 배 가까이 늘리면서 춘하 시즌 남녀화를 통틀어 40%로 구성했다.

지난해 구두 등 드레스 슈즈 군 비중이 60%였던 디에프디의 소다는 올해 캐주얼화를 60% 비율로 구성하며 노선을 변경했다. 별도로 스니커즈 코너를 만들어 슬립온(끈이나 장식이 없어 발이 미끄러지듯이 들어가 쉽게 신고 벗을 수 있는 신발)과 일반 운동화 등으로 제품을 다각화했고, 이달에만 130개의 캐주얼화를 출시했다. 비경통상의 구두 미소페와 편집숍 솔트앤초콜릿도 모두 캐주얼화 비중을 전년 대비 2배 이상 높게 잡았다.

업계 관계자는 "매장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최근 정장 구두가 아닌 캐주얼화 구매를 염두에 두고 구두 매장을 찾는 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구두 브랜드들이 스포츠용품 브랜드와의 차별화를 위해 가죽, 스웨이드와 같은 고급 소재를 사용해 출시 단계부터 오피스룩으로 활용도가 높게 만든 운동화를 속속 출시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아디다스가 70년대 출시된 '슈퍼스타'를 50가지 색상으로 다시 내놨다. 사진=아디다스 제공

'80~90년대 추억 살린 레트로(복고) 운동화' 폭발적 인기

'여성'뿐 아니라 '레트로' 또한 요즘 운동화 시장을 설명할 수 있는 대표적인 용어다. 나이키, 아디다스 등 주요 브랜드들이 1980~90년대 출시됐던 운동화들을 다시 내놓으면서 운동화 시장에도 '레트로' 바람이 불고 있기 때문이다. ‘레트로(Retro)’란 복고주의를 지향하는 패션 트렌드로 회상·회고·추억이라는 뜻의 영어 ‘Retrospect’의 준말이다.

업계에 본격적인 레트로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약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1년 영화 '써니'가 폭발적인 흥행 기록을 세운 뒤 tvN의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이 1990년대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화제를 모았다. 이후 영화 '국제시장', MBC '무한도전-토토가' 등 문화계 전반에 복고 열풍이 불어닥치면서 운동화 시장에도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각 업체들은 1980~90년대에 등장했던 운동화 디자인을 최대한 유지한 채 기능적인 면 등에서 약간의 개선을 거쳐 운동화를 재출시하고 있다.

패션 전문 쇼핑몰 아이스타일24에 따르면, 지난 2월 1일부터 26일까지 복고 패션인 레트로 운동화 판매량이 전월 대비 200% 신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1970년대 농구화로 출발해 80년대부터 미국 뉴욕의 비보이와 래퍼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전성기를 누린 '아디다스 오리지널 슈퍼스타'는 판매량이 전월보다 무려 710% 상승했다. 전체 레트로 운동화 판매량 가운데 아디다스 오리지널 슈퍼스타가 차지하는 판매 비중은 66%로 절대적이다. 국내에서는 올해가 제2의 전성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4년 출시 당시 운동화 끈을 없애고 끈의 역할을 펌프로 대신해 인기를 끌었던 리복의 '인스타펌프 퓨리 오리지'널도 판매량이 전월보다 67% 상승했다. 지난해 출시 30주년을 맞은 '나이키 페가수스 83'의 판매량은 전월보다 50% 상승했으며, 지난해 출시 20주년을 맞은 '나이키 에어조던 레트로'의 판매량도 43% 늘었다.

눈길을 끄는 것은 레트로 운동화를 주로 구매한 세대가 80~90년대 향수를 가지고 있는 3040세대가 아닌 2030세대 젊은층이라는 점이다. 레트로 운동화를 구매한 연령을 살펴보면 20~30대가 전체의 73%를 차지했으며, 특히 20대의 구매 비율이 30대보다도 5%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레트로 운동화 소비를 주도한 쪽은 여성이 64%로 확연히 높았다.

아이스타일24 스포츠 카테고리 담당 오정현 MD는 "최근 복고 트렌드가 확산되면서 레트로 운동화 판매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며 "레트로 운동화가 대부분 한정판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고 희소가치와 패션성, 복고 트렌드를 동시에 가지고 있어서 유행에 민감한 2030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최근 각 브랜드들의 레트로 제품 출시는 더욱 봇물을 이루고 있다. 아디다스는 지난 7일 세계적인 팝스타이자 패션 디자이너인 퍼렐 윌리엄스와 콜라보레이션(협동 작업)으로 50가지 색상의 '슈퍼스타 슈퍼컬러팩'를 출시했다고 밝혔다. 지난 2월에는 슈퍼스타 출시 45주년을 맞아 제품의 역사와 이 제품을 활용한 예술 작품 등을 전시한 임시 매장을 열기도 했다.

휠라(FILA)는 1990년대 NBA스타들의 농구화를 현대적 감각을 재해석한 레트로 슈즈 컬렉션 ‘헤리티지BB’를 내놓았다. 이번 컬렉션 중 특히 ‘스파게티’는 ‘넥스트 조던’이라 불리던 농구선수 제리 스택하우스의 시그니처 운동화(유명 인사의 상징적인 패션이 된 운동화)를 그가 95년 필라델피아팀 소속 당시 착용했던 원조 디자인 그대로 재현한 것이다. 스파게티 면을 연상케 하는 사선 포인트가 특징이다.

과거의 디자인에 최신의 기술력을 더해 운동화를 출시하는 경우도 있다. 뉴발란스는 최근 과거 출시작에 새로운 기술을 적용해 ‘MRT 580’를 출시했다. 충격 흡수 기능을 향상시켰고 무게도 한층 더 가벼워졌다. 프로스펙스는 1970년대에는 제품에 벌커나이즈드·에바(EVA) 스펀지 등을 썼지만, 내구성이 약하고 무겁다는 점을 보완하기 위해 새로운 스펀지를 사용한 레트로 제품을 내놨다. 휠라의 스파게티도 기존보다 경량성이 향상돼 출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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