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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간한국] [이야기가 있는 맛집(169)] 짜장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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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인시간승인 2015.04.01 14:10
중국 서민 음식 한반도로 건너와 짜장면으로 변화

1894년 청일전쟁 때 한반도로 온 중국인들 즐겨 먹어

‘한국식’으로 변화하면서 ‘국민 음식’으로 확산

‘산동회관’이 시초…‘공화춘’‘신승반점’으로 정착

차이나타운 3대 ‘태화원’, ‘용화반점’ 등 유명

[황광해 음식칼럼니스트]“중국에 짜장면이 있다? 없다?”를 묻는 질문은 얼마 전까지도 상당히 어려운 퀴즈였다. 지금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름대로의 ‘정답’을 가지고 있다. 중국에는 짜장면이 있기도 하지만 없다고 해도 옳다. 이도저도 아닌 대답인데, 이게 정답이다.

짜장면은 ‘짜장면(炸醬麵, 작장면)’이다. 원형은 중국음식이다. ‘작(炸)’은 ‘터지다’ ‘튀기다’는 뜻이 있다. “튀기거나 터트린 장을 면에 얹은 음식”이 짜장면이다. 기름을 두른 웍(WOK)에 장을 볶으면 마치 기름에 장을 튀기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장 속에서 기포가 생기고 고열 상태에서 이게 마치 작은 폭죽처럼 터지는 현상도 볼 수 있다. 웍에 장을 볶아보면 ‘짜장[炸醬]’이란 이름의 의미를 알 수 있다.

‘장’은 ‘첨면장(甛麵醬)’이다. ‘첨甛’은 ‘달 감(甘)’과 ‘혀 설(舌)’이 어우러진 글자다. ‘혀에 달다’는 뜻이다. 맛이 달아서 면을 잘 먹게 만드는 장이 첨면장이다.

첨면장은 대부분 밀가루와 콩을 이용하여 만든다. 콩만으로 만드는 경우도 있지만 산동성 등지에서는 ‘밀가루+콩’으로 만들었다. 원형이다. 중국에도 첨면장을 비롯하여 두반장(豆瓣醬), 두시장(豆豉醬) 등 재래 된장 류가 있었지만 지금은 대부분 공장에서 대량 생산되고 있다. 전통적인, 제대로 된 된장은 사라지고 있다.

국수에 볶은 첨면장을 얹어서 먹는 음식은 우리의 ‘된장+밥’을 비빈 음식과 비슷하다. 가장 기본적인 서민의 음식이다. 중국 산동성 등에서 널리 먹던 음식이다. 흔히 ‘북경 짜장면’이라고 하는데 북경 짜장면도 유래는 산동성 언저리다. 중국 역시 1950, 60년대 ‘국민 건강을 위하여’ 돼지고기 등을 널리 보급시키자는 결정이 있었고 당시 중국 특히 북경 지역의 짜장면은 이런 ‘국민 건강’을 위하여 널리 보급되었다.

한반도 역시 짜장면의 보급은 1950, 60년대부터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다. 짜장면이 처음 한반도에 상륙한 것은 1894년 있었던 청일전쟁이 계기가 되었다. 전쟁을 위하여 한반도에 건너온 청나라 병사들이 있었고 이 군대를 따라서 많은 중국 민간인이 인천 등에 이주했다. 가난한 이들은 이국땅에서 어렵게 새 삶을 시작했을 터이다. 그들이 편하게 먹었던 음식이 바로 짜장면이다. 고향에서 먹었던 음식이고 가장 간편한 서민의 음식이니 가난한 차이나타운의 중국인들이 먹었을 것이다.

흔히 지금도 인천 차이나타운에 있는 ‘공화춘’을 짜장면의 시작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아니다. 이미 인천시도 공식적으로 ‘공화춘 짜장면 시초’ 이야기를 부정하고 있다. 게다가 1980년대 원래 ‘공화춘’의 설립한 이의 후손들이 대만으로 돌아간 다음, ‘공화춘’은 원 주인과는 관련이 없는 사람이 상표등록을 하면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

‘공화춘’도 처음엔 ‘산동회관’이란 이름으로 시작했다. ‘산동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니 음식만 팔던 것도 아니고 숙박도 동시에 운영했다. 짜장면이 주 메뉴도 아니었다. 일제강점기에도 중식당은 비싼 청요리를 팔던 곳이었다. 이름을 ‘공화춘’으로 바꾼 것은 중국인들로서는 상당한 의미가 있는 ‘손문의 공화국’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공화춘(共和春)’은 ‘공화국의 봄’이다. 우리의 ‘서울의 봄’이란 이름과 흡사하다.

‘산동회관’ ‘공화춘’의 설립자 외손녀가 운영하는 집이 현재의 차이나타운에 있는 ‘신승반점’이다. ‘신승(新勝)’이란 이름도 “새롭게 이긴다”는 뜻이다. 예전 선조들 중식당의 명성을 뛰어넘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일제강점기, 해방 직후까지도 짜장면은 널리 알려진 음식이 아니었다. 있었지만 대중적이지 않았다는 뜻이다. 중국인들이 가정에서 먹거나 일부 길거리 음식, 몇몇 중식당에서 메뉴로 내놓았던 음식이었다.

현재 차이나타운에서 3대째 이어온 집이 ‘태화원’이다. ‘태화원’ 측에서는 분명히 “일제강점기까지도 중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집들이 두어 개 정도에 불과했다”고 밝힌다.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짜장면은 심하게 변화, 왜곡되었다. 원형 짜장면은 채소, 첨면장을 볶을 때 돼지기름을 사용했으나 “동물성 기름보다는 식물성 기름이 건강에 좋다”는 엉뚱한 오해 때문에 모두 콩기름 등으로 바뀌었다. 원형은 ‘라드(LARD)’라고 부르는 돼지비계 기름이었다.

가장 심한 변화는 역시 장, 첨면장이다. ‘춘장’이라는 이름은 도무지 유래를 알 수 없는 우리만의 속어이고 원형은 첨면장 혹은 첨장이다. 1950∼60년대 무렵 밀가루가 흔해지고 중식당에서 짜장면, 짬뽕(중화우동) 등을 주력 메뉴로 내놓으면서 오늘날의 ‘짜장’이 개발되었다. ‘캐러멜색소’가 들어간 공장제 소스를 모든 중식당에서 사용했다. 원형 첨면장과는 별 관련이 없는, 이름만 ‘짜장’으로 동일한 소스가 등장했다.

짜장면을 알고 싶다면 일단 인천 차이나타운의 ‘짜장면 박물관’을 가보는 것이 좋겠다. 인천의 노포, 화상(華商) 짜장면 식당도 모두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인천 차이나타운의 ‘신승반점’의 음식이 예전 ‘산동회관’이나 ‘공화춘’과 같지는 않다. ‘공화춘’의 외손녀가 운영하는 집이라는 의미는 있다. 장과 기름이 심하게 왜곡되었으니 ‘잘 만든 짜장면’을 찾기는 힘들다.

‘태화원’은 같은 장소는 아니지만 화교3대가 운영하는 집이다. 비교적 달지 않은 짜장면을 내놓고 있다. 탕수육에 대한 평가도 퍽 좋다.

‘용화반점’은 차이나타운에서 차량으로 10분 정도의 거리에 있다. 중식 마니아들이 인천에 가면 꼭 들르는 집이다. 화상 노포이고 볶음밥이나 짜장면 모두 예전 느낌이 살아 있다.

황광해 음식칼럼니스트 dasani8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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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15/04/01 14:10:00 수정시간 : 2015/04/01 14: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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