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기사와 관련이 없음. 사진=KBS W 방송화면 캡처
[데일리한국 신수지 기자] '화장품 보존제' 파라벤을 둘러싼 논란이 가속되고 있다. 여성들의 유방암 등 질병의 원인이 파라벤 때문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잇달아 나왔기 때문이다. 최근 유럽연합이 유해성 위험이 높은 파라벤류 성분을 사용 금지한 가운데, 우리나라에서는 2012~2013년까지 해당 성분이 함유된 74억 원 어치의 화장품이 유통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은 더욱 커지는 양상이다.

파라벤은 미생물성장을 억제하는 역할을 하는 화학 물질이다. 1920년대 미국에서 개발돼 화장품의 변질을 막는 보존제로 널리 사용돼 왔다. 그런데 10여 년 전부터 영국과 유럽 등 해외 학계를 중심으로 파라벤의 안전성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최근 영국에서는 파라벤을 정상적인 유방 세포에 노출시켰더니 세포가 계속 커지거나 다른 곳으로 전이되는 등 암세포와 똑같은 성질로 변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주목받았다.

파라벤이 암을 일으킬 수 있다는 연구 결과는 과거에도 있었다. 지난 2004년 영국 리딩대학 연구진은 유방암으로 사망한 28명 중 18명의 세포조직에서 파라벤 성분이 검출됐다고 밝혔다. 파라벤이 체내에 들어오면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과 결합해 호르몬 교란을 일으키고, 암을 유발할 수 있다는 지적이었다. 파라벤은 여아의 성조숙증, 남성의 불임과 고환암의 발병 위험을 높이는 원인으로도 지목되고 있다. 파라벤 독성이 영유아나 어린이에게서 더 크게 나타난다는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부설 아동병원의 연구 결과도 있는데, 이에 따르면 프로필 파라벤과 부틸 파라벤 등 3개 항균물질들이 소아와 청소년의 알레르기 증가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관찰됐다.

때문에 세계 각국에서는 파라벤의 유해 가능성을 인지하고, 제조업체들로 하여금 사용을 금지시키는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다. 지난 2011년 덴마크가 3세 이하 영유아 제품에 부틸파라벤, 프로필파라벤, 이소부틸파라벤, 이소프로필파라벤 사용을 금지한 데 이어 유럽연합(EU)도 화장품류에 펜틸파라벤, 페닐파라벤, 벤질파라벤 등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다. 프로필과 부틸파라벤에 대한 규제도 대폭 강화해 내년부터는 0.19% 이상 넣지 못하도록 했다. 이달부터는 유해성 논란이 많은 이소프로필파라벤과 이소부틸파라벤의 사용도 금지됐다.

소비자들의 불안감이 갈수록 커지자 아모레퍼시픽이나 LG생활건강 등 국내 화장품 업체들도 자체적으로 파라벤 프리 제품들을 내놨다. 아예 파라벤 성분을 빼버리거나 다른 성분이 포함된 제품을 판매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해 유럽연합에서 금지한 이소프로필파라벤과 이소부틸파라벤에 대해 국내 함량 기준인 0.8% 이하라면 안전하다는 입장을 취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됐다.

이에 따라 2012년부터 2013년까지 2년간 해당 성분이 포함된 기능성 화장품 43품목 74억원 어치가 국내에 유통된 상태다. 파라벤이 들어간 화장품은 국내에서 생산한 6품목을 제외한 37품목으로 해외에서 수입돼 고가에 팔렸다. 다만 이러한 조치가 도마 위에 오르자, 식약처는 다시 한 번 위해성 평가를 진행해 내년 6월까지 완료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현재 우리나라 식약처에서 허용한 파라벤은 모두 7가지로, 페닐파라벤과, 메틸파라벤, 에틸파라벤, 프로필파라벤과, 부틸파라벤, 이소프로필파레벤, 이소부필파라벤이 이에 속한다. 이 중 페닐파라벤은 지난 9월 식약처가 법 조항을 바꿔 올해 말부터는 사용할 수 없게 됐다.

일각에서는 파라벤의 안전성 논란이 과장됐다는 지적도 있다. 각 성분들이 피부를 통과해야하기 때문에 실제 체내 흡수는 떨어지며 허용치 내일 경우 별다른 문제의 소지가 없다는 것이다. 고대안암병원 유방내분비외과 정승필 교수는 “파라벤은 에스트로겐에 비해 수용체에 결합하는 능력이 만 배에서 백만 배 가량 약하다”며 “아직까지 파라벤의 장기간 사용이 유방암뿐 아니라 우리건강에 무해한지, 아니면 직접적인 나쁜 영향을 끼치는지 밝혀지지 않았다”는 입장을 내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파라벤 성분의 유해 가능성을 밝히는 연구 결과가 지속적으로 발표되고 있는 만큼 ▲현재 허용기준에 대한 재검토 ▲보다 안전한 성분을 개발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여전히 높다. 더욱이 여러 화장품을 겹쳐 쓰는 성향이 강한 우리나라 여성에게는 지금보다 더 엄격한 함량 기준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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