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산풍속도 '개도살자(屠漢)' (사진=숭실대박물관 제공)
18일 초복을 앞두고 개고기 식용 논란에 다시 불이 붙었다. '개식용 금지를 위한 인도주의 행동연합'은 지난 11일 기자회견을 열어 불법 운영 중인 개 도살장을 폐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복날마다 심각하게 대두되는 개고기 논쟁에 보신탕 업주들은 난감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요즘에는 경기가 어려워서인지 손님이 없다"며 "개고기 식용 금지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복날이 되도 찾는 손님이 줄고 있다. 우리도 힘들다"고 밝혔다. 해묵은 개고기 식용 논란이 올 여름 복날을 앞두고 다시 재연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 당국도 난처하긴 마찬가지다. 허용하자니 국내외 비판여론이 걱정되고, 개 도살장 폐쇄에서 영업 금지 등 강경 조치에 나서자니 관련 업계 종사자들의 반발도 무시할 수 없다. 때문에 개고기에 대해서는 '해결되지 않은게 해결된 것'이란 말로 어정쩡한 상황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개고기 식용 논란은 조선시대에도 있었다. '개고기 마니아'로 알려진 다산 정약용이 형 정약전에게 보낸 편지에 '개고기 먹는 것을 타박하는 사람들이 잘못된 선입견을 갖고 있다'고 지적한 걸 보면, 당시에도 개를 먹는 일에 논란이 분분했던 모양이다. 실제로 오래전부터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마을 굿에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가 올라와도 개고기가 오르는 법은 없었다. 개에 대한 종교적인 터부가 과거부터 존재했던 것이다.

'동의보감'에 나온 개고기의 효능
복날에 개를 먹는 풍습은 중국의 진나라 때 덕공이란 인물이 삼복 때 개를 잡아 사대문 안에서 제사를 지낸 데서 유래했다. '동의보감'에는 "개고기는 오장을 편하게 하고, 장과 위를 튼튼하게 하며, 허리·무릎을 따뜻하게 해 기력을 증진한다"고 나와 있으며, 고기가 귀했던 그 시절 더운 여름 기력을 보충하는 데 개고기만 한 게 없었다고 한다. 동물애호가들의 비난 속에서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 보신탕. 찬반 의견을 떠나 보신탕이 전통적인 복날 음식이었다는 사실만은 부정할 수 없다.

조선 시대에는 계급을 막론하고 개고기를 즐긴 것으로 전해진다. 흔히 먹던 개고기 요리는 요즘은 '보신탕'이라 불리는 '개장국'인데 오늘날까지 그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개장국이 보신탕이라는 명칭으로 바뀐 것은 1942년 무렵. 한국전쟁 전에는 개장국과 보신탕이라는 명칭으로 섞어 쓰이다가 그 후 보신탕이라는 이름이 더 널리 사용됐다. 서민들이 즐겨 먹는 육개장이란 말이 개장국에서 유래한 걸로 미루어 보면 개장은 서민의 보편적인 음식이었던 셈이다.

수면제 바른 빵 먹이고 개 훔쳐
1970년대 들어 개도둑이 극성을 부렸다. 서울 시내의 개전문절도단만 10여 개 파가 넘었을 정도다. 개도둑들은 훔친 개를 주로 시내 보신탕집에 팔았다. 1971년 3월 11일 자 경향신문에는 '봄철 되자 늘어난 개도둑'이라는 제목으로 개전문절도단의 행태에 대해 서술했다. '지난 1년간 300여 회에 500여 마리나 훔쳐왔을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으나 그중 피해자들이 경찰에 신고한 것은 단 10여 건밖에 안 된다. 두목 박 씨는 오래전에 개장사를 한 경험이 있고 개도둑을 시작한 지 10여 년째로 개전문가 사이에서는 널리 알려진 베테랑. 일꾼들은 박 씨의 집에서 숙식을 하며 낮에는 시내를 맴돌며 고급개가 있는 집을 확인, 갖고 있던 빵이나 고기 등을 던져줘 낯을 익혀둔다. 이들의 활동시간은 통금이 끝나는 새벽 4~6시 사이. 낮에 얼굴을 익혀 놓은 개를 이때 쉽사리 접근해 밖으로 끌어낼 수 있는데 훈련받은 개는 짖어댈 염려가 있어 수면제를 섞거나 바른 빵, 고기를 먹여 잠들게 한 뒤 끌어낸다. 대개 하루 2, 3마리가 고작이지만 한 고급주택가를 몽땅 털 때도 많다. 이럴 경우에는 골목 어귀에 용달차나 짐차를 미리 대기시켜 놓았다가 한꺼번에 10여 마리를 훔쳐 두목 박 씨의 집이나 미리 계약해놓은 중간상인 집으로 옮긴다.'

보신탕 금지에 '위장간판' 성행
1980년대 들어 보신탕은 혐오식품 대열에 합류한다. 1984년 3월부터 서울시에서는 보신탕, 뱀탕, 개소주, 토룡탕(지렁이탕) 등 혐오감을 주는 업소의 영업행위를 금지했다. 서울에서 열리는 각종 국제대회에 대비, 위생업소 질서 확립방안의 하나로 일반인들에게 혐오감을 주는 업소를 정비하려는 조치였다. 1984년 9월에는 전국으로 확대됐으며 위반업소에 대해 식품위생법시행령에 따라 처벌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당시 당국에서 금지조치 이유로 내세운 것은 88올림픽이다. 사람과 가장 가까운 동물인 개를 잡아먹는 것이 문명인으로서 외국인들에게 어떻게 비치겠느냐는 것이었다. 이에 대한 반론도 거셌다. 보신탕은 뱀탕, 토룡탕과 달리 삼국시대부터 전해 내려온 민간 토속음식이며 우리 입맛에 맞는 영양보충 식품이라는 주장이었다. 이 같은 여론을 의식한 당국은 88올림픽 때까지만 보신탕 금지조치를 단행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보신탕이 금지된 지 1년 만인 1985년 보신탕집들은 위장간판을 내걸고 어엿하게 장사를 했다.

북한 '단고기'를 아시나요
북한에는 '오뉴월에는 보신탕 국물이 발등에 떨어져도 약이다'란 속담이 있을 정도. 여유 있는 집에서는 개를 통째로 사서 직접 요리해 먹고, '복날에 단고기(개고기)를 먹어야 더위를 피한다'라는 믿음이 있어 아무리 가계가 어려워도 복날 단고기장(보신탕) 한 그릇은 꼭 먹는다고 한다. 1994년 5월 1일 자 동아일보에 실린 '귀순 유학생의 북한 이야기 단고기'에는 이를 자세히 설명했다.

'서울살이를 하면서 보니 여자들이 개고기를 먹는 것을 무슨 흠이나 되는 양 굉장히 창피해 하며 먹지 않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모든 주민이 아주 자랑스럽게 즐겨 먹는다. 북한에서도 이전에는 개고기라고 불렀으나 개고기를 먹지 않는 외국인들이 '개장집'이라고 쓴 간판을 보고 북한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진다고 하여 그 후부터는 '단고기'라고 부르도록 국가적인 조치가 취해졌다. '개장집'이라는 간판이 '단고기집'으로 바뀌었으며 평양 중심가와 같이 외국인들이 자주 다니는 곳에서는 영업을 못하도록 했다. 북한에서 개를 기르는 용도는 고기 외에 가죽을 얻기 위해서다. 소비재가 귀한 북한에서는 사람들이 고기보다 가죽을 더 중요하게 여기므로 남한과 같이 개를 잡을 때 개털을 불에 그슬려 개 가죽을 다 못쓰게 하는 것은 상상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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