퀄리티 중심 마일스톤으로 시간 압박은 적은 편

부사장과 인턴이 '맞담배'도 가능한 개방적 문화

회사가 먼저 '워라밸' 챙겨줘 직원들 만족도 높아

[데일리한국 심정선 기자]한국 게임 업계의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국내 콘텐츠 수출의 일등공신으로 꼽히는 게임산업이 수년만에 기술력과 개발 속도 모두에서 한국을 앞지른 중국과, 힘있는 IP(지식재산권)와 탄탄한 자체 시장을 갖춘 일본의 틈바구니에서 고사 위기에 처하게 됐다. 이러한 현상은 11월 구글플레이 매출 순위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매출 5위권 내에 자리한 중국 게임은 3종으로 지난해부터 이미 이같은 흐름이 굳어진 상태다. 반면 고고도미사일방어(사드)체계 배치 문제가 불거진 지난 2017년 이후 중국 시장에 진출한 국내 게임사는 아예 없을 정도로 세가 꺾였다. 예상 손해액만 2조에서 4조원으로 추산되는 등 중국 시장에서의 매출없이 한국 시장의 파이만 빼앗기고 있는 형국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개발사들은 지난해 7월부터 300인 이상 회사에 적용된 '주 52시간 근무제'가 목을 옥죄며 국제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토로한다. 이에 데일리한국은 한국과 중국, 일본에서 게임 개발 중인 개발자들을 취재해 문제점과 대안이 무엇인지 짚어봤다. <편집자주-끝>

◇ 연 평균 근로시간 韓 대비 -313시간…포괄임금제 없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018년 연간 총 근로시간 통계를 보면 한국은 근로시간 3위로 1993시간이며 일본은 근로시간 22위로 1680시간이다. 국내와 비교해 평균 근로시간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이러한 통계는 게임 개발사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현지에 진출한 개발자들은 한국 대비 총 근무시간이 확실히 적다는 반응이다.

현재 사이게임즈에 재직 중인 A씨는 "한국의 주 52시간 근무제나 중국의 3교대 같은 시스템은 없다"며 "대부분의 경우 7시 칼퇴근한다"고 말했다.

물론 출시 시점과 업데이트 전후로는 국내와 동일하게 '크런치 모드'가 존재한다. 야근해야 할 만큼의 일이 있을 때는 야근을 하기도 한다. 다만 잔업 시 사전에 회사의 허가를 받아야한다. 한국이 연봉제와 포괄임금제를 채택한 것과 달리 일본은 대부분 월급제를 채택하고 있어 야근에 대한 보상이 주어진다. 매달 잔업 수당을 계산해 기본급에 더해 지급한다.

OECD 추산 국가별 2018년 연간 총 근로시간 통계. 사진=OECD 홈페이지 갈무리
업무 분위기도 야근을 종용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요스타에서 재직 중인 중국인 B씨는 "야근을 강요하거나 눈치주는 일은 적다"며 "(중국과 한국처럼) 윗 사람 보다 먼저 퇴근하는게 눈치 보이거나 퇴근 직전 업무를 던지는 등의 일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당일의 일을 다 마치면 상사 보다 먼저 퇴근하는 것이 일반화돼 있으며, 반대로 퇴근하는 사람에게 눈치를 주는 것 자체가 문제시되는 분위기라는 설명이다. 일이 없는데도 잔업을 하다 적발되면 오히려 월급 도둑으로 징계 대상이 된다.

특이한 것은 야근을 해도 석식을 따로 제공하지 않으며 저녁 시간도 따로 없다. '잔업시간=돈' 이기에 외부에서 식사를 하면 그 시간은 공제처리된다. 그래서 야근을 하는 직원 대부분이 편의점 음식을 사와서 본인의 자리에서 일하며 먹는 편이며 단체로 저녁을 먹으러 가는 경우가 아닌 이상 멀리까지 가서 저녁을 먹는 경우는 드물다.

물론 야근을 강요하는 회사도 있다. 일부 회사는 '미나시잔교'를 정해 매달 일정 시간의 잔업 비를 기본급에 포함한다. '미나시잔교 20시간'이라고 되어있다면 매달 20시간의 야근 비용은 기본급에 포함해 지급하며 20시간까지는 추가 수당이 없다는 뜻이다.

A씨는 "이 '미나시잔교'를 의무 야근 시간으로 만들어 야근 수당을 기본급에 포함시켜 사실상 포괄임금제로 악용하는 경우도 있다"며 "이전 재직하던 일본 개발사가 그런 식이었는데, '미나시잔교'를 채우지 않으면 눈치를 줬다. 이런 점은 일부 한국 개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전했다.

◇ 개방적인 사내 문화와 퀄리티 중심 마일스톤

요스타 로고. 사진=요스타 제공
일본 개발사들의 가장 큰 특징은 생각보다 상하 관계를 따지는 일이 적다는 점이다. 일반 사원이 부사장 등 임원에게 면담을 신청해도 일정만 맞다면 대부분 수락된다.

B씨는 "회사에 다니기 시작한 지 얼마되지 않은 인턴 시절에 부사장 면담을 신청했는데, 기다리라는 답이 왔다"며 "거절을 돌려말하는구나 생각했는데, 다음날 부사장이 직접 와서 혹시 담배 피우냐고 물어보고 같이 담배피러 갔다"고 말했다. 이후 면담에서도 인턴과 부사장 사이의 대화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격의가 없는 대화를 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수직적 조직 문화가 대부분인 일본 기업들에 비추어 보면 굉장히 놀라운 일면이다. 직원들간 커뮤니케이션도 활발해 여러 개발사에서 사내 커뮤니티 채널을 만들어 서브컬쳐 문화를 적극 권장하기도 한다.

B씨는 "요스타에서는 대표가 가장 활발하게 커뮤니티 활동을 한다"며 "대표가 직원들과 회의실에서 진지하게 무언가를 토론하고 있길래 끼어들었는데 '안경파냐 렌즈파냐', '모에란 무엇인가' 등을 토론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임원과 직원간이 굉장히 열려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설명이다.

게임 개발은 퀄리티 중심으로 진행되는 편이다. A씨는 "퀄리티에 대한 집착이 커 장인 정신에 가까운 느낌을 받는다"며 "개발 마일스톤도 비교적 넉넉해 쫓긴다는 느낌을 덜 받았다. 특히 관리자급이 모두 수긍해야 다음 페이즈로 넘어가는 방식이라 신기했다"고 말했다.

다만 퀄리티에 중점을 뒀기에 1년을 개발한 게임이라도 만족할만한 게임성과 품질이 보장되지 않을 거라는 판단이 들면 바로 프로젝트를 중단하기도 한다.

B씨는 "C사에 파견 형태로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1주 정도 회의하더니 1년이 넘게 개발한 게임의 개발 중단을 결정했다"며 "리소스 활용도 없이 대부분의 데이터가 파기됐고 해당 팀은 3D 아이돌 프로젝트로 변경됐다"고 말했다.

◇ 회사가 챙기는 '워라밸'

반다이남코 로고. 사진=반다이남코 제공
일본의 대형 개발사는 '워라밸'(워크-라이프 밸런스 일과 삶의 균형)을 신경쓰기로 유명하다.

반다이남코는 지난 2011년부터 2000만원이 넘는 지원금을 제공하는 파격적인 출산 장려 제도를 진행하고 있다. 반다이남코는 게임과 완구를 파는 기업이므로 ‘아이들은 미래의 고객’이라며 이 같은 제도를 마련했다.

그룹 전체에 적용되는 이 육아 지원 제도는 첫째와 둘째 자녀 출산 시 20만 엔(약 215만 원)을 지급하며 셋째 자녀부터 200만엔(약 2150만원)의 육아 지원금을 지급한다. 또한 지원금은 남녀 사원 모두 받을 수 있으며 의무적으로 출산 후 56일 이내에 1주일 이상의 육아 휴가를 내야한다.

육아 휴가를 낸 직원은 ‘육아 리포트’를 제출해야 해, 유명무실했던 남성 직원의 육아 휴가의 현실화도 꾀했다. 자금 지원뿐 아니라 출산 후속 지원책도 마련됐다. 여름과 겨울방학 기간 초등학생 자녀를 맡길 수 있는 사내 어린이집을 운영 중이다.

닌텐도의 대표 캐릭터 루이지, 요시, 마리오. 사진=픽사베이
지난 6월 E3 2019 콘퍼런스에서의 닌텐도의 발언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당시 닌텐도는 기대작 '모여봐요 동물의 숲'의 발매 연기를 발표하며 직원들의 워라밸을 위해 일정을 늦췄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닌텐도는 기네스북에 등재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게임사인 동시에 개발자 중심으로 운영되는 회사로도 유명하다.

닌텐도 아메리카 사장 더그 바우저는 "우리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사람들을 미소 짓게 만드는 것"이라며 "이것은 우리 직원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라고 운을 띄웠다. 그는 "직원들 역시 좋은 워라밸을 유지해야 하며 출시에 급급해 완성도가 부족한 게임을 내는 것 보다는 연기해서라도 완성도를 끌어 올리겠다"고 말했다.

직원들이 출시일을 맞추기 위해 무리해 일하는 것을 지양한다는 표현과 함께 퀄리티에 대한 고집도 내비친 것. 닌텐도에서 재직 중인 C씨는 "일부 프로젝트 팀의 이야기가 아니라 회사의 전체적인 문화"라고 전한다.

C씨는 "회사의 전체적인 기조와 일치하는 발언"이라며 "일본 기업으로는 유일하게 패스트컴퍼니(FastCompany)가 2018년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회사'에 18위에 랭크되는 등 가장 오래된 개발사지만 가장 선도적인 개발사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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