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정선 데일리한국 경제부 기자

[데일리한국 심정선 기자] 얼마전 플레이스테이션 클래식, 닌텐도 슈퍼패미콤 미니 등 구형 콘솔 기기를 작은 크기로 구현한 ‘미니’ 제품이 인기를 끌었다. 크기가 작아지고 당시 유명 타이틀이 내장돼 있다는 장점 때문이었는지 많은 게이머들이 기꺼이 주머니를 열고 제품을 구입했다. 이전과 동일한 버전이어서 과거의 버그가 그대로 들어있기도 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불만을 드러내는 이는 거의 없었다. 이들이 구매한 것은 단순제품이 아니라 '추억'이었기 때문이다.

요즘 20~30대 연령층의 추억은 게임으로 새겨지는 일이 많다. ‘가슴이 아직도 두근대는 걸 보니 내 첫사랑은 디아블로’까지는 아니지만 친구 관계에서 갈등과 화해, 협력 등 강렬한 감정이 표출되는 포인트가 팀 플레이 게임인 경우가 많아서다. 이러한 추억은 즐긴 게임이 MMORPG라면 더욱 진해진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맺음과 갈등이 최고의 콘텐츠인 장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지난 16일 넥슨이 서비스 종료를 발표한 ‘야생의 땅: 듀랑고'(이하 듀랑고) 이용자들은 남은 시간을 그들의 추억을 기리는데 오롯이 사용하고 있다. 독특한 게임성과 부족원들 간의 협력을 강조해 눈길을 끌었던만큼 큰 이슈가 됐다. 서비스 종료 시점은 12월 18일로 해외 서버도 같은 날 서버가 종료된다.

넥슨의 야심작 '듀랑고'는 넥슨이 6년간 개발에 힘쓴 모바일 게임으로, '마비노기', '마비노기 영웅전' 등을 개발한 스타 개발자 이은석 프로듀서가 공룡, 시간여행, 생존을 콘셉트로 만들어낸 타이틀로 화제를 모았었다.

서비스 종료까지 두 달여가 남은 상태에서 넥슨은 기대만큼 아쉬움도 큰 듯, 이용자가 지금까지 진행된 스토리의 결말을 알 수 있도록 업데이트하는 것은 물론 아직 공개되지 않았던 신규 콘텐츠들도 경험할 수 있도록 빠르게 추가해나갈 방침이다.

'야생의 땅: 듀랑고' 팬페이지 '굿바이, 듀랑고 - 듀랑고 게임닷'. 사진=홈페이지 갈무리
이용자들도 '듀랑고'에 대한 애정을 남김 없이 드러내보이고 있다. 먼저 '굿바이, 듀랑고 - 듀랑고 게임닷'이라는 웹페이지가 오픈됐다. 일반 이용자가 만든 이 웹페이지에는 듀랑고의 남은 서비스 시간을 실시간으로 표기되며 마지막 인사를 남길 수 있다.

이 곳은 '듀랑고'와의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많은 이용자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이들은 그 간의 추억을 적어두거나 서비스 종료를 아쉬워하는 등 남기고 싶은 말로 추억을 쌓았다.

또 한편으론 '듀랑고'를 살려달라는 온라인 청원을 진행하는 이용자도 있었다. "듀랑고의 여정이 여기서 끝이 아니길 바란다"는 이 이용자는 "의미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고,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청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현 가능성은 없더라도 이용자들의 마음을 표하고 싶었다는 설명이다. 23일 현재 3700여 명이 해당 청원에 사인했다.

이미 게임에 잘 접속하지 않던 이용자들이 서비스 종료 소식에 게임에 접속하는 모습도 눈에 띈다. 이들은 오랜만에 만나는 부족원(길드, 혈맹)들에게 안부를 전하고 그 동안 관리되지 않았던 자신의 사유지를 정리하는 '셀프 장례식'을 치르며 추억을 되새기고 있었다.

해묵은 앙금을 푸는 이용자도 발견할 수 있었다. 부족간 다툼을 화해하는 이들이나, '부족 털이범'이라 불리는 부족의 공유 아이템들을 훔쳐가는 이들이 사과하거나 자신의 정체를 밝히는 식으로 끝을 준비하고 있었다.

'듀랑고'는 한 개의 성공 두 개의 실패로 서비스 종료를 맞았다. 우선 출시 전 이슈 몰이에는 크게 성공했다. 스타 개발자와 독특한 게임 콘셉트는 출시 전부터 많은 관심을 끌어모았고 해외에서도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이로 인해 출시전 게임을 즐길 수 있는 클로즈베타테스트 쿠폰이 고가에 거래되기도 했다.

첫 번째 실패는 이 초반 기세를 이어가지 못했다는 점이다. 높은 관심만큼 많은 이용자가 몰려들었지만 이용자 유입량 관측 실패로 이를 감당할만한 서버를 구비하지 못했다. 게임에 접속하기 위해 대기자 수 2만 명 정도를 기다리는 일은 예사였다. 몇 시간을 기다려 접속한 이용자를 맞이한 것은 크고 작은 오류와 튕김 현상이었다.

'오류의 땅: 듀랑고'라고 불릴 정도로 많은 버그가 산재했다. 또 이를 해결하기 위해 잦은 점검이 진행된 점도 이용자들을 멀어지게 했다. 오류 중에서는 클로즈베타테스트 기간에 많은 이용자들이 제보했던 것도 다수 포함돼 있어 불만이 높아졌다.

두 번째 실패는 사업 방향이다. 국내 서비스 이전부터 북미, 유럽, 동남아시아 등 14개 국가에서 해외 베타 테스트를 진행하는 등 초반부터 해외 시장에 투자해왔다. 국내 서비스 시작 1년4개월이 지난 5월 경 의욕적으로 해외 서비스에 도전했지만, 론칭 이후 미국, 캐나다 등 빅 마켓에서는 순위권에 이름조차 올리지 못하고 일부 국가에서만 중위권에 이름을 올리는 등 부진한 성과를 거뒀다.

애초부터 해외 시장을 노린 듯한 게임성이 특징으로 꼽혔지만 정작 해외 시장에서는 국내에서 보다 더 낮은 성적을 거뒀다. 제대로 된 타겟 설정에도 실패한 셈이다. 과금(BM)면에서도 부정적인 평가가 많다. 랜덤 획득 아이템 대부분이 치장, 수집 아이템 등으로 이뤄져 있어 일견 이용자 친화적으로 보이지만, 사용한 금액 만큼의 만족감을 주지 못해 '지르는 맛'을 충족시켜주지 못했다.

물론 이를 통해 '돈슨' 이미지를 타피하는데는 성공했다. 과도한 과금 유도 게임이 아니라 이런 게임도 만들 수 있다는 이미지는 쉽게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러나 최근 넥슨이 겪은 잇단 악재를 떨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용단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저작권자 © 데일리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