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범 후 근무 환경 개선 집중, 일정 성과 거둬

노조 구조 개선·고용불안 해결은 향후 숙제로

[데일리한국 심정선 기자] 첫 게임 노조 출범 1주년에 즈음해 넥슨과 스마일게이트 두 노조가 첫 집회를 진행했다. 예상 인원 100명으로 신고된 현장에는 노조 추산 600명의 대인원이 몰렸다. ICT 업계 종사자들의 이목이 집중된 집회인 만큼 노조원이 아닌 이들도 다수 현장을 찾았다.

노조 측은 출범 이후 1년이 지난 현재 근무 환경이 점차 개선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입장이다. 지금까지의 다양한 활동으로 게임 업계 종사자들의 현실을 알리는데 주력했다면 이제는 현실을 바꾸는데 주력하겠다는 목표도 내비쳤다.

이런 과정에서 차상준 스마일게이트 노동조합 'SG길드' 지회장이 내달 4일로 예정된 고용노동부 국정감사 참고인 참석 요청을 받는 등 사회와 정부의 눈길을 끄는데도 성공했다. 차상준 지회장은 개발자 강제 전환배치, 열악한 업무 환경 등 게임 노동자의 현실을 알릴 예정이다.

서로를 지지하며 서로의 울타리가 되겠다는 이들은 어떤 업계보다 굳건한 노조간 연대를 통해 함께 걸어나가겠다고 강조했다.

포괄임금제 폐지 등 근무 환경 개선 성과

넥슨 노조 '스타팅포인트' 로고. 사진=넥슨 노조 제공
지난해 9월3일 설립된 게임업계 최초 노조인 넥슨노동조합 '스타팅포인트'(민주노총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조 넥슨지회)와 2일 뒤인 9월5일 노조 설립 선언문을 통해 출범한 스마일게이트노동조합 'SG길드'(민주노총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스마일게이트지회)는 최근 설립 1주년을 맞이한 신생 노조다.

두 노조는 ‘포괄임금제’와 ‘크런치모드’ 등 업계 관행으로 자리잡은 악습을 개선하고자하는 목적으로 설립됐다.

설립 선언문을 통해 노조 측은 "대한민국 게임 산업은 급속히 발전해 시장 규모 12조원 대에 육박했고 회사 또한 한국을 대표하는 게임회사로 급성장했다"며 "그러나 회사의 엄청난 성장에도 불구, 임금은 크게 바뀌지 않았고 무리한 일정, 포괄임금제로 공짜 야근을 강요하지만 책임과 과로의 위험은 노동자에게 전가되고 있다"며 비상식적인 관행이 유지되고 있다고 성토했다.

이러한 목표를 가지고 출범한 노조는 다양한 활동을 벌인 끝에 큰 성과를 얻어냈다. 우선 포괄임금제 폐지다. 사측과의 협상을 통해 넥슨, 넷마블, 엔씨소프트, 스마일게이트, 펄어비스, 웹젠, 위메이드, EA코리아, 네오플 등이 포괄임금제 폐지를 결정했다.

포괄임금제는 연장근로수당 등 시간 외 수당을 급여에 포함하는 제도로, 실제 근무시간이 법정 근로시간 초과 시에도 정해진 급여만 지급된다. 일한 만큼의 성과를 받지 못해 공짜 야근으로 불리며 노동자들의 근무환경 악화의 주범으로 꼽혀 왔다.

스마일게이트 노조 집회 현장에 걸린 현수막. 사진=심정선 기자
다음으로 근무환경 저하를 넘어 건강까지도 위협하는 '크런치 모드'를 견제할 수 있는 조항도 만들어졌다. 게임 출시 예정일 직전에 업무가 집중되는 게임 업계의 특성에 따라 '크런치 모드'를 아예 없앨 수는 없지만 과도한 발동을 억제할 수단을 만들었다. 바로 '휴식권 보장' 조항으로, 크런치 모드를 진행하려면 조직원들의 동의가 필요해졌다.

노조의 활약과 회사 측의 결단에 의해 협의 사항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는 시기는 오는 10월이다. 이를 통해 2020년부터는 '포괄임금제' 없고 '크런치 모드'는 적은, 보다 나은 업계로 개선될 예정이다.

첫 집회에 쏟아진 관심, 노조 예상 6배 인원 참석

넥슨 노조 장외 집회 모습. 사진=연합뉴스
지난 3일 넥슨 노조가 진행한 첫 오프라인 집회에는 게임업계 노조원, 비 노조원뿐만 아니라 다른 업계 종사자들도 다수 현장을 찾았다. 노조 추산 600명이 모인 이 집회에서는 프로젝트 해제로 인한 전환배치 대상자의 고용안정 보장을 촉구했다.

잇따른 개발 프로젝트 해체로 일할 팀을 잃은 전환배치 대상자가 200명을 넘었고, 이중 아직까지 전환배치 되지 않은 인력이 약 100명이다. 3개월 안에 배치가 안 될 경우 관행적으로 퇴사해야 해 정상적인 근무가 불가능하다는 게 노조 측 주장이다.

이어 20일에는 스마일게이트 노조가 설립 1주년 기념 첫 집회를 진행했다. 이날 스마일게이트 노조는 포괄임금제 폐지 등 지난 1년 간의 노조활동 성과를 보고하고 전환배치 대상자의 강제 직군 변경을 성토했다.

가장 특징적인 모습은 집회 현장의 밝은 분위기였다. 집회가 예정된 판교 스마일게이트 캠퍼스 앞 공원에서는 스마일게이트의 PC온라인게임 '로스트아크'의 로그인 대기 음악이 흘러나왔다. 집회 시간인 12시가 되자 뮤지컬 공연이 시작됐고 이후 박 터트리기 퍼포먼스까지 진행됐다.

스마일게이트 노조 'SG길드' 이미지. 사진=스마일게이트 노조 제공
차상준 스마일게이트 노조 지회장은 "무거운 주제지만 게임처럼 분위기만큼은 즐겁게 표현하고자 노력했다"며 "최대한 많이 참여할 수 있도록 가벼운 프로그램을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두 집회는 같은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조인 네이버지회와 카카오지회 그리고 두 게임 노조가 연대하는 모습을 보였다. '공동성명' 발표 뿐만 아니라 직접 집회장을 찾아 함께 땀을 흘리며 끈끈한 연대를 증명했다.

게임업계 노조에 대한 관심은 업계 안을 넘어 밖에서도 쏠리고 있다. 차상준 지회장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참석 요청을 받은 것. 차 지회장은 참고인 명단이 확정되면 국감에 참석해 개발자 전환배치, 업무 환경 등 게임 노동자의 현실을 알릴 계획이다.

한시름 놓은 생존 문제, 이후의 과제는 '지속'

네이버, 넥슨, 카카오, 스마일게이트 노조는 IT업계 노조 연합 페이지를 운영하는 등 끈끈한 관계를 유지 중이다. 사진=민주노총 화섬식품 IT'em 페이지 갈무리
두 노조는 직면한 과제였던 '포괄임금제'와 '크런치 모드'에 대한 답을 어느정도 얻었지만 아직 멀었다는 입장이다. 그들은 이제서야 '노동자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고 표현했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차상준 스마일게이트 노조 지회장은 "최우선으로 현재 해결되지 않은 고용안정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며 "그래픽 디자이너에게 QA 업무를 맡기는 등 부당한 배치를 한 것에 대해 회사로부터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확답을 듣는걸 최우선으로 시작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 이후 노동자와 사용자간에 합리적이고 정상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창구를 만들겠다"며 "이를 통해 고용안정에 관한 합리적 프로세스를 정립하겠다"고 밝혔다. 궁극적으로는 노조와 회사가 동등한 입장에서 소통하고 상생하는 것을 목표로 내세웠다.

배수찬 넥슨 스타팅포인트 지부장은 ‘지속가능한 노동조합’을 이후 과제로 꼽았다. 그는 "올해는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바빠 노조의 구조 강화에 집중하지 못한 면이 있다"며 "구성원의 결원이나 교체에도 노조가 충분히 유지 가능하도록 조합의 구조적인 튼튼함에 집중하려 한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지금의 노조는 운영자(간부층)만 있고 중간 층이 없다"며 "이로 인해 한 명이라도 빠지면 큰 일이 나는 상황"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이를 보완해 개인이 아닌 구조적, 시스템적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는 "문제를 공론화할 노동권 인식과 문화가 성립되지 못한 지금의 업계를 벗어나려한다"며 "노조 설립으로 난이도를 '불가능'에서 '아주 어려움' 정도로 바꿀 수 있었다. 이는 아주 긴 변화의 시작에 불과하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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