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한국 고은결 기자] 국내 게임 산업의 위상이 갈수록 불안하다. 고인 물처럼 신선하지 못하고 답습만 이어진다는 지적이 쏟아진다. 중국 게임시장의 역습, 국내 PC방을 휩쓴 ‘오버워치’, 최근의 포켓몬 고 열풍까지 몰아치는 가운데 이와 대비돼 더욱 초라해진 형국이다. 과거 ‘게임 강국’ 타이틀은 이미 반납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왜 그런 걸까?

22일 업계에 따르면 닌텐도의 모바일 게임 ‘포켓몬 고’(Pokemon Go)가 국내에서도 인기를 얻는 가운데 이와 관련된 각종 서비스들이 등장하고 있다. 국내 증강현실(AR) 서비스 스타트업 소셜네트워크는 내달 모바일 게임 ‘뽀로로 GO’(뽀로로 고)를 선보인다. 이용자가 피카츄 등 포켓몬 대신 ‘국산 캐릭터’ 뽀로로를 포획하는 점 외에는 큰 차이점이 없어 보인다. 포켓몬 고 관련 정보를 짜깁기한 링크 서비스들도 쏟아지고 있다.

반면 포켓몬 고의 열풍과 관련한 국내 대형 게임사들의 입장은 ‘침묵’이다. 굵직한 기업 중 AR 분야는 물론, 가상현실(VR) 분야에 적극 나선 곳도 거의 없다. 수년째 비슷비슷한 게임이 판친다는 지적이 이어질 만큼 다양성을 찾기 힘든 상황이다.

◇ 포켓몬 고 대박에 국내업계 '눈총'

포켓몬 고의 '대박 신화'는 개발사 나이앤틱의 개발력과 포켓몬스터 IP, 구글 지도 데이터가 시너지를 낸 것으로 풀이된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포켓몬 고 게임에 적용된 미드테크(mid-tech) AR 기술이 국내에서도 가능한 수준의 기술이었다는 점을 되짚으며 뒤늦게 탄식했다. 허나 포켓몬스터라는 메가 히트 IP가 없었다면 포켓몬 고의 성공도 없었다는 것이 지배적인 관측이다. 20년 가량 사람들의 추억속에 머물던 포켓몬스터가 새로운 무기를 장착하고 부활한 것이지, 어느날 갑자기 출현한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이런 상황 속에서 업계에 쏟아지는 질타의 내용은 거의 천편일률적으로 비슷해 보인다. “왜 우리는 그런 게임을 만들지 못했나?” 글로벌 게임시장에서 공전의 히트작이 나올 때마다 어김없이 나오는 지적이다. 포켓몬 고 바로 이전에는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의 슈팅 게임 ‘오버워치’와 비교하며 눈을 흘겼다.

2010년대 초에는 핀란드 개발사 로비오의 ‘앵그리버드’의 성공을 두고 한국판 앵그리버드를 만들지 못하는 이유에 대한 갖가지 분석과 논평이 봇물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시간을 조금 더 돌려, 2009년 초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우리도 닌텐도 같은 게임기를 가져야 한다”고 언급해 큰 화제를 낳으며 ‘명텐도’란 단어가 유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당시보다 업계를 둘러싼 환경이 크게 나아졌다고 보기는 힘들다. 게임업계는 10여년 전부터 장기적인 안목의 산업 육성책을 요구했음에도 2010년대 이후 등장한 ‘셧다운제’처럼 여전히 제도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따가운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다만 최근 문화체육관광부가 '소통과 공감의 게임문화 진흥계획안'을 발표하면서 개선 가능성에 눈길이 모아지고 있다. 포켓몬 고 광풍에 급하게 내놓은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지만 방향성 만큼은 긍정적으로 평가받기 때문이다.

계획안에 따르면 셧다운제는 부모가 허락할 시 풀어주는 ‘부모선택제’로 완화될 전망이다. 내년부터는 게임 사업자 스스로 등급을 분류하는 자율게임등급분류제를 확대하고 VR이나 AR 등 융복합 콘텐츠 제작 지원을 강화한다.

여기에 보조를 맞춰 게임업계는 한국게임산업협회 등과 협의해 향후 5년 간 458억 원을 쏟아낼 방침이다. 산업 육성에 초점을 맞췄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게임을 하나의 문화로 보고 진흥시키겠다는 의도다.

사진=유토이미지

한편 일각에서는 국내 게임산업의 부진이 규제에 가로막혔던 측면도 있지만 더 큰 문제는 업계 내부에 있다고 꼬집고 있다. 수년 간 업계를 지배한 트렌드에 ‘베끼기 관행’과 ‘짙은 상업성’이 꼽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게임 업계의 한 관계자는 “최근 국내 시장에서 가장 주목받는 모바일 신작을 직접 해보니 다른 게임과 비슷한 점이 너무 많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업계 내부에서도 비슷비슷한 게임에 대한 자조의 목소리가 공공연히 담장 밖으로 흘러나오고 있다. 또 다른 문제 중 하나는 이른바 ‘날림 퀄리티’다. 이 때문에 이용자들 사이에서는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개발했다는 게임들의 게임성에 대한 평판이 바닥에 떨어진 경우가 수두룩하다.

여기에 대형 게임사 넥슨이 ‘검풍’에 휘말리면서 업계를 이끌어가는 굴지의 기업이 CEO 리스크 및 브랜드 이미지 타격 위기에 처한 점도 악재가 아닐 수 없다.

아울러 글로벌 시장에 대응할 뚜렷한 방향성이나 킬러 콘텐츠를 갖추지 못한 점도 지적받는다. 여기에 갈수록 거세지는 외부 환경도 고민거리다. 중국의 정보통신기술(ICT) 기업 텐센트의 국내 게임사들에 대한 지배력이 급증하며 국내 게임산업의 종속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시류에 흔들리기보다는 뚜렷한 방향성을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한동안 규제에 발목잡혀 부침을 겪은 업계가 분위기 쇄신을 위해서는 자기만의 경쟁력을 빨리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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