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왼쪽)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 사진=연합뉴스 제공
[데일리한국 안병용 기자] 대기업 회장 직함을 갖는다고 총수로서의 기업 지배력이 공식화되는 것은 아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동일인(총수) 변경 절차가 끝나야만 ‘진짜 총수’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정부가 대기업에 부과하는 모든 규제의 책임은 동일인이 지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매년 총자산 5조 원 이상인 그룹을 대기업집단으로 지정하고, 동일인도 새롭게 지정한다.

13일 공정위에 따르면 올해는 현대자동차그룹, 효성그룹, 현대중공업그룹, 코오롱그룹, 대림그룹 등 10여개 그룹사가 동일인 변경을 신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을 대상으로 공정위는 오는 30일 그룹 동일인을 새로 지정해 발표한다.

공정위의 동일인 교체 절차는 그간 매우 보수적으로 이뤄져 왔다. 이건희 회장의 와병이 길어지자 동일인을 이재용 부회장으로 변경한 삼성그룹처럼 기업을 간접적으로도 지배하지 못할 때만 제한적으로 총수 변경을 허락해 왔다.

삼성의 전례를 보면 건강이 좋지 않은 총수들이 동일인으로 지정돼 있는 현대차와 효성은 현 회장으로 변경될 것이 유력해 보인다. 현대차는 정몽구 명예회장을 정의선 회장으로, 효성은 조석래 명예회장을 조현준 회장으로 동일인을 변경해 달라고 공정위에 신청했다.

나머지 그룹은 동일인 변경이 불투명하다. 다만 최근 공정위가 동일인 지정 기준을 ‘누가 그룹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지’로 결론내린 것으로 전해져, 변경 대상에 오른 대기업 중 상당수의 총수가 바뀔 가능성이 큰 것으로 예상된다.

공정위 기준에 따르면 코오롱과 대림의 경우,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이웅열 전 회장과 이준용 명예회장이 각각 이규호 코오롱글로벌 부사장과 이해욱 회장으로 동일인이 변경될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현대중공업도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 회장 대신 실질적 총수 노릇을 하고 있는 정기선 현대중공업 부사장으로 변경될 공산이 높아 보인다.

동일인 변경 신청은 기업뿐만 아니라 당사자 입장에서도 쉽지 않은 문제다. 동일인 자신은 회사 현황과 구성에 대한 책임을 지는 한편 내부거래 공시를 의무적으로 해야 하고, 그의 특수관계인 총수 일가는 사익편취 제재대상에 오르게 된다.

즉 이번에 동일인 변경을 신청한 기업들은 지배구조 관련 각종 규제에 대한 모든 책임을 총수가 지겠다는 선언을 공개적으로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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