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명예회장. 사진=현대차 제공
[데일리한국 안병용 기자] “잘 가요, 몽구형”

25일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현대차그룹 경영에서 완전히 물러난 정몽구 명예회장에 대해 “우리나라 2세대 기업 경영인들 중에서도 대들보 같은 인물”이라며 이 같은 말로 아쉬움을 표했다.

현대차의 ‘정몽구 시대’가 51년 만에 완전히 저물었다.

정 명예회장은 지난 24일 현대모비스 사내이사 임기 1년을 남겨두고 스스로 물러났다. 이는 정 명예회장이 지난 6년 간 하나씩 떼기 시작했던 ‘계열사 직함 내려놓기’의 마지막 결단이다.

1938년생으로 올해 84세인 정 명예회장은 지난 2015년 현대제철 이사직에서 물러나며 처음으로 후계 작업을 시작했다. 이후 2018년 현대건설 이사직을 내려놓으며 계열사 경영에서 물러나는 행보를 본격화했다. 후계 구도가 가시화된 것은 2020년이다. 2월 현대차 사내이사에서 물러나는 것을 시작으로, 3월에는 현대차 이사회 의장직을, 10월에는 그룹 회장직을 모두 정의선 회장에게 물려주며 명예회장으로 추대됐다.

마지막까지 유지해오던 현대모비스 등기이사직도 내려놓으며 마침내 정 명예회장은 기업 경영인 생활 51년 만에 ‘자유인’으로 돌아갔다.

정 명예회장이 현대차와 인연을 맺은 것은 평사원으로 입사하던 1970년이지만, 현대그룹의 계열사에 머무르던 현대차를 국내 최초 자동차 전문 그룹으로 출범시킨 것은 현대자동차써비스를 설립하면서 독자경영의 길을 걷기 시작한 1974년 이후 26년 만인 2000년이다.

정 명예회장은 출범 당시 10개 계열사와 자산 34조400억 원 규모로 재계 서열 5위에 머무르던 현대차를, 2019년 말 기준 54개 계열사와 234조7060억 원 규모의 재계 2위로 성장시키는 탁월한 경영 능력을 보여줬다. 이 기간 현대차는 국내를 넘어 글로벌 자동차 기업으로도 자리매김하면서 2000년 이후 20년간 1억900만대를 팔아 세계 5위 완성차 업체로 도약했다.

이 같은 현대차의 성과는 정 명예회장의 깐깐한 ‘품질경영’ 고집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현대차는 1998년 데이비드 레터맨쇼에서 “우주선 내부에 현대차 엠블럼을 붙이면 우주선 조종사가 깜짝 놀라게 될 것”이라며 조롱받을 정도로 한 때 ‘싸구려 차’의 대명사였다. 당시는 현대차가 미국 소비자조사업체인 ‘JD파워’의 신차품질조사에서 ‘꼴찌’ 수모를 당한 해이기도 하다.

이때부터 정 명예회장은 품질경영의 씨앗을 뿌리기 시작했다. 2001년 서울 양재동 사옥으로 이사하며 사내에 ‘품질상황실’, ‘품질회의실’, ‘품질확보실’을 마련해 24시간 가동시킨 것이다. 그는 2002년 오피러스 수출 차량을 직접 시험 주행하다가 미세한 소음이 들리자 선적을 40일가량 멈추고 “엔진 소리 잡으라”고 지시하는 등 품질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갖은 노력을 다했다. 품질 향상에 대한 그의 부단한 노력과 강한 의지는 2006년 ‘JD파워’ 품질조사 사상 첫 1위라는 결실로 돌아왔다.

이러한 품질경영 철학은 정 명예회장이 2020년 한국인 최초로 미국 ‘자동차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는 토대가 됐다. 비록 몸은 떠나지만, 정 명예회장은 여전히 현대차의 정신적인 지주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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