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사진=삼성전자 제공
[데일리한국 박현영 기자]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선친인 호암(湖巖) 이병철 삼성 창업주 별세 이후 1987년 삼성그룹 2대 회장에 올라 삼성그룹을 이끌었다. 고인은 "삼성을 세계적인 초일류기업으로 성장시키겠다"라는 비전을 가지고 고군분투하며 꿈을 현실로 만들었다.

이 회장은 그룹 회장 취임 전인 1970년대부터 미국 실리콘밸리를 누비며 하이테크 산업 진출을 모색했다. 삼성의 해외사업추진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다양한 경험으로 무장한 이 회장은 반도체 사업 등을 잇따라 성공시키며 글로벌 시장에서 주목받지 못하고 있던 삼성을 단숨에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올려놨다.

실제 삼성이 IT 산업의 모태인 반도체를 시작한다고 했을 때 아무도 삼성이 지금과 같은 위치에 오르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1974년 이 회장이 파산 직전의 한국반도체를 인수한다고 했을 때 모두가 반대했다.

일각에선 'TV 하나도 제대로 못 만들면서, 최첨단으로 가는 것은 위험하다', '미국 일본보다 20,30년 뒤쳐졌는데, 따라가기나 하겠는가?' 등의 목소리가 높았다. 일본의 한 기업 연구소는 '삼성이 반도체를 할 수 없는 다섯 가지 이유'라는 보고서를 내놓으며 비판 하기도 했다.

현재 반도체 하면 '삼성'을 떠올리는 시대가 됐지만, 당시만 해도 한국반도체 인수는 말도 안되는 공상과 같은 이야기였다. 그러나 이 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언제까지 그들의 기술 속국이어야 하겠나? 기술 식민지에서 벗어나는 일, 삼성이 나서야한다. 제 사재를 보태겠다”라며 반도체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1986년 7월 삼성은 1메가 D램을 생산하면서 반도체 산업을 본격적으로 꽃 피우기 시작했다. 이어 1992년 세계 최초로 64M D램 반도체 개발에 성공했다. 삼성 반도체가 메모리 강국 일본을 처음으로 추월하며 세계 1위로 올라서는 순간이었다.

삼성은 64메가 D램 개발로 기술 주도권을 확보한데 이어 생산량을 늘리며 시장 점유율도 1위를 기록, 기술과 생산 모두에서 명실상부한 세계 1위 기업으로 올랐다. 그러나 이 회장은 세계무대에서의 1위라는 기쁨에 젖어있지 않았다. 오히려 심각한 위기의식을 느꼈고, 밤잠을 설치며 다가올 위기에 대비하기 위해 고민했다.

이 회장은 1993년 오사카 회의 당시 “지난해 중순부터 고민을 하기 시작해서 지난해 말부터 하루에 3시간에서 5시간 밖에 잠이 안 왔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회장이 감지했던 위기는 바로 닥쳐왔다. 1993년 품질보다 생산량 늘리기에 급급했던 생산라인에서 불량이 난 세탁기 뚜껑을 손으로 깎아서 조립하는 사건이 발생했던 것이다. 이같은 모습이 사내 방송으로 보도됐고 파장이 커지면서 질보다 양을 앞세우던 기존 관행에 제동이 걸렸다.

당시 이 회장은 삼성의 글로벌 위상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미국을 방문 중이었다. 이 회장은 미국의 대표적인 전자제품 양판점인 'Best Buy'를 돌아보다가 진열대 구석에서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는 삼성 제품을 바라보았다. 이를 본 이 회장은 “삼성이라는 이름을 반환하라. 먼지 구덩이에 처박힌 것에 어떻게 삼성이라는 이름을 쓸 수 있겠는가”라며 질타했다.

이 회장은 그동안 쌓여온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는 말로 유명한 신경영 선언을 내놓았다.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시작된 신경영 대장정은 총 8개 도시를 돌며 임직원 180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350여 시간의 토의로 이어졌다.

쇄신을 거듭한 삼성은 대한민국이 OECD 회원국에 가입한 1996년, 삼성은 연평균 17%의 성장률을 기록하게 됐다. 그러나 이 회장은 멕시코 티후아나 전자복합단지를 방문 중,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긴급 사장단 회의를 소집했다. 성장일로에 들어서 안심하고 기뻐하고 있는 임직원을 질책하기 위해서다. 당시 이 회장은 "반도체가 조금 팔려서 이익이 난다 하니까 자기가 서있는 위치가 어디인지도 모르고, 그저 자만에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이 회장의 질책과 함께 삼성은 내부 자만을 경계하고 장래 위기에 대비하기 위해 비상경영에 돌입했다. 삼성그룹은 경영 전 분야에 걸쳐 3년 동안 원가 및 경비의 30%를 절감하겠다는 '경비 330 운동'을 강력하게 추진했다. 한계 사업을 과감히 정리하고 차세대 사업에 집중하는 한편 경영 합리화와 사업재구축을 목표로 비상경영을 진행했다.

한편 이 회장은 반도체의 성공에 이어, 휴대폰 분야에서도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뤄냈다. 신경영 선언 이후 이건희 회장은 삼성의 신수종 사업으로 휴대폰 사업을 예견했다. 당시 이 회장은 "반드시 1명당 1대의 무선 단말기를 가지는 시대가 온다. 전화기를 중시해야 한다"고 전망했다.

삼성은 1995년 8월 애니콜을 전세계 휴대폰 시장 1위인 모토로라를 제치고, 51.5%의 점유율로 국내 정상에 올렸다. 당시 대한민국은 모토로라가 시장점유율 1위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유일한 나라였다.

이 회장은 2000년 신년사를 통해 21세기 초일류 기업의 비전을 달성하기 위한 또 한 번의 계기를 만들었다.

이 회장은 "새 천년이 시작되는 올해를 삼성 디지털 경영의 원년으로 선언하고, 제2의 신경영, 제2의 구조조정을 한다는 비장한 각오로 사업구조, 경영 관점과 시스템, 조직 문화 등 경영 전 부문의 디지털화를 힘있게 추진해 나가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남보다 먼저 변화의 흐름을 읽고 전략과 기회를 선점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신경영' 외에도 '천재경영', '창조경영', '마하경영'이라는 경영전략으로 안주할 수 있었던 삼성을 성장시켰다. 이러한 경영 철학을 바탕으로 각 계열사 사장들과 경영진은 '위기경영', '준법경영', '나눔경영', '상생경영'을 그룹 전체로 확산, 삼성의 미래를 이끌어 왔던 것이다.

이 회장이 취임한 1987년 10조원이 채 못되던 삼성그룹의 매출은 2018년 기준 386조원을 넘기면서 39배 늘어났다. 시가총액은 1조원에서 396조원으로 396배나 커졌다. 세계가 놀란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삼성을 세계적인 초일류기업으로 성장시키겠다"는 이 회장의 꿈과 약속이 있었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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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20/10/25 16:10:58 수정시간 : 2020/10/25 16: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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