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현동 대한항공 부지. 사진=서울시
[데일리한국 주현태 기자] 유동성 위기로 자금 확보가 시급한 대한항공의 속이 타들어가고 있다. 대한항공이 위기타개를 위해 자구책으로 준비하고 있는 서울 종로구 송현동 부지를 서울시가 문화공원으로 바꾸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업계에선 서울시 계획대로 송현동 부지가 문화공원으로 지정되면, 수익을 낼 수 있는 개발이 어려워져 민간이 이 부지를 제값을 주고 살 가능성은 점점 낮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서울시는 종로구 송현동 일대 대한항공 부지를 문화공원으로 바꾸는 변경 방안을 추진중이다. 이를 위해 지난 27일 서울시 도시·건축공동위원회에 자문을 받았다. 시는 위원회 자문 의견을 반영, 6월 중 열람공고 등 관련 절차를 추진하고 올해 안에 송현동 부지를 문화공원으로 결정할 계획이다.

경복궁 옆 3만6642㎡ 규모의 송현동 부지는 대한항공이 2008년 삼성생명에게 2900억원에 사들였다. 당시 대한항공은 복합문화단지 신축을 추진했으나 학습권 침해 등 관련법에 가로막혀 무산됐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유동성 위기에 처한 대한항공은 현재 5000억∼6000억원의 시세로 평가받고 있는 송현동 부지 매각을 진행 중이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 채권단도 대한항공에 1조2000억원을 지원하면서 내년 말까지 2조원 규모의 자본 확충을 요구한 상태다.

문제는 서울시가 문화공원 조성에 적극 나서면서, 과연 이 송현동 부지가 제값을 받을 수 있냐는 점이다. 대한항공은 실효성 있는 조기 매각을 위해 매각 대상을 제한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입장이지만, 서울시의 공원 추진으로 송현동 부지 매각에 급제동이 걸리는 것은 아닌지 전전긍긍하고 있다. 서울시가 제시한 부지 가격은 2000억원 미만인 것으로 알려졌다.

황용식 세종대학교 교수는 “서울시의 발표는 사실상 대한항공을 대상으로 ‘싼값에 부지를 내놓지 않으면, 부지 가치를 완전히 없애버리겠다’고 협박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며 “부지를 사길 희망하는 인수자들한테도 이 송현동 부지가 ‘서울시의 것’이라고 공표한 셈으로, 공원추진이 가시화될 경우 대한항공은 최종적으로 울며 겨자 먹기로 공시가에 팔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황 교수는 이어 “특히 대한항공은 기간산업안전기금 지원단의 눈치도 봐야 하는데, 이런 서울시의 ‘시민의 편익을 위한 공원조성’ 발표에 반발하기도 부담스러운 입장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영민 숙명여대 교수도 “코로나 사태로 비상경영을 할 수밖에 없는 대한항공 입장에서 송원동 부지매각은 사활이 달린 사안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런 정책을 펼치는 서울시의 행보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이를테면 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토지를 합리적인 논의없이 일방적으로 공공화하겠다고 밝힌 것이 정당한 행정이 맞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사유지인 송현동을 서울시에서 일방적으로 문화공원을 만들겠다며 밀어붙이는 상황은 자유 시장경제 체제에선 비상식적인 처분”이라며 “코로나19로 막다른 골목에 몰려 추가 자구안조차 내기 힘든 기업을 더 수렁속으로 내모는 것과 다름없다 ”고 평가했다.

서울시는 지난 3월에도 "대한항공에 송현동 부지에 대한 민간 매각시 발생할 수 있는 개발 요구를 용인할 의사가 없다"며 공매 절차를 중단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대한항공은 자사의 유휴자산 매각은 이사회 의결 절차가 필요한 사안으로, 적정 가격을 받지 못할 경우 배임에 해당될 수 있다는 입장을 서울시에 전달했다.

한편, 이날 조원태 회장은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장인인 고(故) 김봉환 전 의원 빈소에서 "서울시 외에 다른 매수자가 없다면 송현동 부지를 계속 갖고 있을 것 같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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