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00억원 규모 창사이래 첫 해외 M&A…미래먹거리 확보 ‘뚝심'

사익편취 혐의로 오너리스크…3월 사내이사 재선임 앞두고 '악재'

[편집자주] 국내 10대 건설사(2019 시공능력평가 기준)의 오너 2~4세가 경영 일선에 전면 등장하며 성장이 정체된 건설업계에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해외 기업 인수합병(M&A)을 통한 신사업 진출 등 사업 다각화를 위한 건설사들의 움직임이 더욱 탄력을 받고 있는 게 그 예다. 이에 데일리한국은 지난해 부사장급 이상으로 승진하며 경영 시험대에 오른 건설 오너가(家) 3명의 지난 1년을 되짚어보고, 앞으로의 과제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해욱 대림산업 회장.
[데일리한국 박창민 기자] 대림그룹 오너가 3세인 이해욱 회장이 대림산업 회장에 취임한 지 이달로 1주년을 맞았다.

이 회장은 지난 한해 대림산업을 에너지, 석유화학 분야 글로벌 디벨로퍼로 도약시키기 위한 밑그림을 그렸다. 지난해 영업이익도 1조원 내외로 예상돼 '1조 클럽' 달성도 점쳐진다.

순항한 사업 부문과 달리 대외적으론 이 회장의 오너리스크가 불거지며 그룹 내 지배력 강화를 위한 행보에 제동이 걸렸다.

당장 오는 3월로 예정된 사내이사 재선임 여부도 미궁 속에 빠진 상황. 사모펀드 KCGI(일명 강성부펀드)가 그룹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대림코퍼레이션의 2대 주주에 오르며 지배구조 개편에 대한 압박도 가속화될 전망이다.

◇디벨로퍼 도약 의지 확고…뚝심 보여준 해외기업 인수

이해욱 회장은 지난해 1월 14일 당시 대림산업 부회장에서 회장으로 승진하며 대림산업 3세 경영의 막을 올렸다.

고(故) 이재준 창업주의 손자인 이 회장은 대림의 위기 때마다 선제 대응으로 위기를 극복시켜 온 '난세 영웅'으로 평가받는다. IMF 외환위기 시절 대림산업 구조조정실 차장(1998년)과 부장(1999년)을 맡아 고강도 구조조정과 해외 유수기업과의 전략적 제휴로 대림산업의 재무위기를 넘겼던 사례가 대표적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는 설계혁신과 원가절감을 통해 주택 사업 경쟁력을 높이는 방식으로 어려움을 극복하기도 했다.

또한 그는 대림산업 아파트 브랜드 'e편한세상' 도입(2000년), 민자발전사업을 위한 대림에너지 설립(2013년), 국내 최초 미국 석유화학 제조기술 라이센스 계약 체결(2015년) 등을 주도하며 성장동력을 확보하는 데 '강한 면모'도 보여 왔다.

그런 이 회장이 지난해 취임 이후 공들인 분야는 에너지와 석유화학 중심의 디벨로퍼 사업이다. 건설업에서의 안정적인 수익을 토대로 디벨로퍼 사업에 투자를 확대해 미래 먹거리로 키우겠다는 게 이 회장의 복안.

특히 지난해 이 회장은 석유화학 부문에 굵직한 행적을 남겼다. 지난해 10월 30일 미국 크레이튼(Kraton)사의 카리플렉스 TM 사업부 인수를 결정한 것이다. 신성장 동력 기반을 발빠르게 마련하려는 이 회장의 '뚝심'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5억3000만달러(6200억원) 규모의 이번 인수는 창사 이래 첫 해외기업 M&A다.

김기룡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현재 인수 관련 세부 조건을 논의 중인 크레이튼사 카리플렉스 사업 인수 건을 비롯해 올해 하반기 예정된 미국 에탄분해시설(ECC) 투자, 2021년 말 사우디 폴리부텐 증설 발표 등으로 대림산업은 점차 화학회사로의 변모를 구체화 해 나갈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이 회장은 그간 위기 때 더 부각되는 모습을 보여온 것은 사실"이라면서 "'인수 카드'까지 활용해 석유화학 부문을 강화하는 등 작년은 이 회장에게 신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적극적인 행보를 보인 한해"라고 평가했다.

대림산업은 실적 측면에서도 호조세를 이어갔다.

증권가는 대림산업의 지난해 영업이익을 1조원 내외로 예상하는 만큼 '(영업이익) 1조 클럽' 달성도 점쳐진다. 이는 전년 영업이익(8453억원)보다 대폭 개선된 전망치다.

이같은 실적 개선에는 리스크 최소화와 수익성 증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대림산업의 전략이 시장에서 통했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특히 리츠를 활용한 임대 사업에 힘을 싣은 것이 효과를 발휘했다. 올해부터는 지난해 11월 워크아웃을 졸업한 대림산업 계열사인 고려개발의 실적도 대림산업의 연결 실적에 포함되는 만큼 영업이익 증가세가 더욱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김세련 이베스트증권 연구원은 "다른 건설사와 달리 대림산업의 주택 매출이 꺼지지 않고 고마진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공공지원 민간임대 연계형 정비사업에 적극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면서 "대림산업은 임대관리를 위해 리츠 자산관리회사인 대림에이엠씨를 설립한 상황이며, LH(한국토지주택공사)의 첫 주택개발리츠인 인천 영종 역시 대림산업이 단독 입찰해 수주에 성공했다"고 설명했다.

◇3월 주총 ‘지배력 시험대’…국민연금의 '곱지 않은 시선'

순항한 사업 부문과 달리 이 회장은 오너리스크가 불거지며 그룹 내 지배력을 강화하려는 계획이 어려움에 부딪혔다.

이 회장은 부당 사익편취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가운데 오는 3월 대림산업 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 재선임을 놓고 지배력 시험대에 오르기 때문이다.

외국인 투자자들의 표심 향방을 예단할 수 없는 가운데 대림산업 주요 주주이자 최근 주주권이 한층 강화된 국민연금이 이 회장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은 만큼, 이 회장은 사내이사 재선임 여부에 긴장감을 늦출 수 없게 됐다.

지난해 말 이 회장은 대림그룹의 호텔 브랜드인 '글래드(GLAD)'를 이용한 부당 사익편취 혐의로 검찰에 불구속 기소됐다.

이런 가운데 당장 3월 23일 주총에서 이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이 회장은 2018년 3월 대림산업 대표이사에서 물러났지만, 사내이사로서는 회사 경영 전반을 총괄해 왔다.

이 회장이 최대주주로 있는 대림코퍼레이션이 보유한 대림산업 지분율은 23.12%에 불과해 지배력이 느슨한 상황이다.

외국인 투자자와 국민연금의 대림산업 지분율은 각각 48.9%, 12.2%다.

최근 국민연금의 주주권을 강화하는 가이드라인과 시행령이 잇달아 통과된 것도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국민연금은 사회적 물의를 빚은 오너의 사내이사 선임에 꾸준히 반대표를 던져 왔다.

지난달 27일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는 '법령상 위반(사익편취, 횡령, 배임) 우려'로 기업가치가 훼손되는 데 기업이 개선 의지가 없다고 판단되는 경우 국민연금이 이사 해임 및 정관 변경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국민연금기금 적극적 주주활동 가이드라인'을 의결했다.

법령상 위반 우려의 판단 기준을 검찰 기소나 법원 1심 판결로 정한 만큼, 이 회장과 대림산업도 이에 해당된다.

지난 21일에는 국민연금이 앞으로 기업에 정관변경 주주제안 등을 시도해도 경영참여로 보지 않기로 하면서 국민연금의 단기차익 반환의무를 없애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이 국무회의서 의결됐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국민연금이 한진칼에 시도했던 사례와 같이 대림산업 주총에 앞서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정관변경을 제안할 가능성도 점치고 있다.

이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 실패 시 그룹 내 지배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필상 서울대 교수(경제학부)는 "우리나라 지배구조에서 오너가 그룹 핵심 계열사 사내이사를 맡는 것은 지배력 강화에 주요 수단이라는 점에서 이 회장이 재선임에 실패할 경우 그룹 내 지배력 약화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기룡 연구원은 "대림산업에 대한 오너 지분율이 취약한 점을 고려하면 주주총회를 앞두고 이 회장과 관련한 이슈가 부각될 경우 주총 결과에 대해 예단하기 힘들 수 있다"라면서 "이 회장 연임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질 경우 시장에선 대림그룹의 경영권 분쟁이라는 프레임이 확장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회장이 무난히 재선임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채상욱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다수 주주들은 사내이사 재선임에 반대표를 던질 만큼 이 회장에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이해욱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 여부를 떠나 KCGI을 중심으로 대림그룹에 대한 전방위적인 지배구조 개편 압박은 거세질 전망이다.

KCGI는 지난해 대림그룹의 사실상 지주사 역할을 하는 대림코퍼레이션의 2대 주주(지분율 32.6%)로 올라섰다. 한진그룹 한진칼의 2대 주주(15.98%)이기도 한 KCGI는 한진그룹에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하는 등 경영권에 깊숙이 관여해 온 전력이 있다.

KCGI는 지난해 9월 27일 대림코퍼레이션 2대 주주로 올라선 직후 보도자료를 통해 "이해욱 회장 체제에서 대림그룹에 잔존하는 경영 비효율성을 개선하고 투명한 기업문화를 정착해 합리적인 지배구조 개선이 이뤄질 수 있도록 협력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와 관련 금융업계 관계자는 "KCGI의 현재 지분율로는 주주총회에 안건을 올릴 자격이 없고, 특별결의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수준의 권한 등만 가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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