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H, 임대주택 거주 홀몸 어르신에 유언 집행자로 LH 지정 권유

변창흠 사장 "개선방안 검토" 발언 후 즉각 홍보·안내 전면중단

업계선 "유언 작성자 서비스, 사실상 폐지된 것으로 봐도 무방"

10월 4일 국회에서 열린 국회 국토위원회의 한국토지주택공사(LH) 국정감사에서 변창흠 LH 사장이 의원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편집자주] 국회의 국정감사가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올해 10월 진행된 2019년 국감도 ‘맹탕 국감’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양새다. 국회가 국민을 대신해 국정 전반의 문제점을 들여다보는 국감이 사실상 ‘연례행사’로 전락했다는 지적마저 나온다. 국회의원들이 국감에서 사회적 논란에 휩싸인 국가기관이나 기업에 대한 질타를 쏟아내도, 국감이 끝나면 이들 논란은 홀연히 사라져 버리기 일쑤다. 오히려 논란이 일어난 후에도 아무런 후속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 국가기관이나 기업들도 적지 않다. 이에 데일리한국은 올해 국감에서 논란이 됐던 주요 현안들에 대해 재조명하고, 후속 대책 등이 마련됐는지 5회에 걸쳐 짚어본다.

[데일리한국 박창민 기자]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올해 국정감사 당시 '반인륜적인 정책'이라고 비판받았던 유언장 작성 서비스에 대한 홍보와 안내를 전면 중단한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 10월 국감에서 유언장 작성 서비스가 행정 편의상 조치가 아니냐는 지적이 쏟아졌고, 변창흠 LH 사장이 "다소 오해가 있는 것 같다"며 "해당 사항을 확인해 개선할 수 있도록 조치하겠다"고 밝힌 후 즉각적인 대응이 이뤄진 셈이다.

다만, LH는 유언장 작성 서비스가 홀몸어르신들의 사후 유산 처분을 돕겠다는 취지로 도입한 서비스였던 만큼 이용을 원하는 홀몸어르신이 있을 경우 별도 상담을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국감 직후 이뤄진 LH의 이같은 조치와 관련해 "안내하지 않아 알 수 없는 유언장 작성 서비스를 손수 찾아 이용할 홀몸어르신은 없을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이 서비스는 사실상 폐지된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는 것이 사회복지업계 관계자들의 관측이다.

11일 LH에 따르면, 공사는 국감 직후인 지난 10월말부터 유언장 작성 서비스에 대한 홍보를 전면 중단하고 매입임대주택에 거주하는 홀몸어르신에게도 안내하지 않고 있다.

LH 관계자는 "기존에는 홀몸어르신 살피미들이 홀몸어르신들에게 유언장 작성 서비스 이용을 권유해왔다"라면서 "강제성 없는 권유였지만, 논란이 불거진 이후에는 홀몸어르신들에게 서비스 자체를 안내하고 있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LH는 유언장 작성 서비스는 유지할 방침이다.

LH 관계자는 "(유언장 작성) 홍보와 안내는 중단했지만, 가족과 친족마저 없는 홀몸어르신들에게 본인 사후 유산 처분 문제를 처리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취지로 도입한 서비스이기에 서비스 운영은 유지하면서 이용을 원하는 홀몸어르신이 있다면 별도 상담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유언장 작성 서비스는 LH가 `홀몸어르신 살피미 사업`의 일환으로 고용 취약계층인 장애인을 홀몸어르신 살피미로 채용해 LH의 임대주택에 거주하는 홀몸어르신을 대상으로 제공해온 서비스 가운데 하나다.

LH는 당초 홀몸어르신 살피미가 안부 전화나 세대 방문 등을 통해 홀몸어르신의 민원을 청취하고 말벗 역할을 수행하도록 하겠다는 취지로 이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올해부터 홀몸어르신 살피미가 유언장 작성 서비스도 맡게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유언장 작성 시 유언 집행자로 LH를 지정하도록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실상은 LH의 행정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제도가 아니냐는 지적과 함께 '비윤리적인 정책'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LH는 유언장에 '본인 사망 후 1개월 내 연고자가 유체동산을 처분 또는 수령하지 않을 경우 LH가 임의처분 한다'는 내용과 함께 LH(소속 직원 포함)를 유언 집행자로 지정하는 내용을 포함하도록 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행법상 가족이나 상속인이 없는 무연고자가 사망하게 되면, 해당 재산은 법원을 통해 공탁을 하고 일정기간이 지나면 국고로 귀속된다. LH는 국고귀속 후 행정절차를 통해 채권 회수가 가능하다.

유언 집행자로 지정될 경우 국고로 귀속될 때까지 기다리지 않아 채권 회수를 할 수 있게 된다는 얘기다.

유동완 종합법률사무소 삼인 변호사는 "국고귀속 후 채권 회수까지 2년 이상도 소요되기도 하기 때문에 유언 집행자로 지정받을 시 보다 빠르게 채권회수가 가능하다"며 "이는 임대주택에 거주할 새로운 임차인을 구하는 데 있어서도 속도를 낼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이점이 있는 서비스"라고 언급했다.

임대주택을 운영하는 LH 입장에서는 무연고자 발생 시 유체동산 처분 문제로 새 임차인 구하는 데 상당 기간 어려움을 겪을 수 있는 만큼 유언장 작성 서비스가 필요하다는 전문가 의견도 적지 않아 보인다.

정가영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 변호사는 "임대인은 무연고자 임차인 사후에 냉장고, 텔리비전 등 유체동산 처분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방에 그대로 유체동산을 둬야하기 때문에 새 임차인을 받는 데 상당 기간 어려움을 겪기 마련"이라며 "유언장에 유체동산 내용을 강조한 만큼, 채권 회수 측면보다는 유체동산의 빠른 처리에 중점을 둔 서비스로 보인다"라고 풀이했다.

국감 직후 유언장 작성 서비스의 홍보와 안내가 중단되면서 향후 해당 서비스를 이용할 홀몸 어르신은 없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서울 노인종합복지관에서 홀몸어르신 돌봄서비스 업무 총괄 담당인 이모 팀장(사회복지사)은 "LH가 유언장 작성에 강제성은 없고 권유를 했을 뿐이었다고 할 지라도 문제가 될 수 있다"며 " 그 이유는 홀몸어르신 입장에서 유언장 작성 유무가 임대주택에 대한 다음번 임대차 재계약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하는 우려에 유언장을 작성하게 되는 상황이 충분히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이 팀장은 "LH에서 행정 편의상 조치라는 의도가 없다는 것을 입증할 정도로 이 서비스를 재정비해서 다시 내놓으면 모를까, 홀몸어르신 입장에서 권유하지도 않은 이 서비스를 별도로 찾아서 이용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이 서비스는 사실상 폐지됐거나 중단됐다고 봐야 한다"고 평가했다.

LH는 향후 유언장 작성 운영에 더욱 힘쓰겠다는 입장이다. LH 관계자는 "유언장 작성 영역이 사회적으로 예민한 부분이 있는 만큼, 사회적으로 수용이 가능한 범위 내에서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여러가지를 고려했지만 운영의 미를 살리지 못했다"면서 "앞으로는 이런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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