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호 SK텔레콤 사장. 사진=SKT 제공
[데일리한국 이윤희 기자]한국 재계에서 SK그룹은 1990년대 후반에 이미 전문경영인(CEO) 체제의 모델을 보여준 기업으로 알려져 있다.1998년 최종현 전 회장의 타계 이후 장남인 최태원 회장과 그룹 공동경영의 한 축을 맡았던 손길승 SK텔레콤 명예회장은 가장 높은 위치에 올라간 평사원 출신 경영인이었다.

당시 마흔도 채 되지 않았던 대주주와 선친의 ‘파트너’로 불렸던 전문경영인이 함께 경영한 SK그룹은 주도적 사업 다변화와 공격적 경영 전략으로 재계 3위까지 껑충 뛰어올랐다. 한국형 CEO의 탄생이었다.

이런 연유로 현재까지도 SK그룹에는 유능한 전문 경영인들이 곳곳에 배치돼 있다. 수원의 작은 섬유회사가 에너지·통신기업으로 또 반도체·바이오 회사로 커나가는 동안 걸출한 전문 경영인들이 나타났다. 특히 올해는 세계 최초로 5세대(5G) 통신을 상용화하면서 그룹 내에서도 주목받고 있는 CEO가 있다. SK텔레콤 박정호 사장이다.

1963년생인 박 사장은 1989년 SK의 전신인 선경에 입사한 ‘SK맨’이다.박 사장은 SK텔레콤의 대표를 맡기 전 사업개발부문장(부사장)으로 재직하면서 2012년 SK텔레콤의 하이닉스 인수를 성사시킨 주역이기도 하다. 모두가 반대하는 가운데서도 최태원 회장의 '야성적 충동'을 최전선에서 밀어붙인 실무자는 최 회장의 비서실장을 지낸 박 사장이었다.

박 사장의 특기는 역시 기업 인수합병(M&A)이다. 박 사장의 '인수 감각'이 갈고 닦아진 건 입사 초부터 신사업과 M&A 프로젝트에 실무자로 일했기 때문이다. SK그룹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였던 1994년 한국이동통신 인수와 신세기통신 인수를 두루 경험한 그는 대한텔레콤(SK텔레콤의 전신)에서 근무하며 주요 보직을 거쳤다.

2004년 SK 정책협력(CR)지원팀장을 거쳐 2009년부터 2012년까지 SK텔레콤에 돌아와 사업개발실장, 사업개발부문장 등을 역임하고 2013년 SK C&C코퍼레이트 디벨롭먼트사업장을 맡았다. 그 동안 2000년 IMT-2000 사업자 선정, 2012년 SK그룹의 하이닉스 반도체 인수, 2017년 한미일 도시바메모리 인수까지 그룹의 중요한 협상을 주도하며 입지를 다졌다.

2015년 SK C&C 대표이사 사장이 돼 그룹 주력 계열사 최연소 CEO에 오른 그는 SK C&C와 주식회사 SK의 합병을 이끌어 지금의 지배구조 체제를 마련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ADT캡스와 티브로드 등 통신 M&A도 그의 작품이다.

지난 2017년 SK텔레콤 CEO로 선임돼 복귀한 직후부터 이동통신사업의 성장 한계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인 수익구조 수립과 모험적인 사업 다각화로 호평을 받고 있다. 그는 박 사장은 사물인터넷(IoT)과 인공지능(AI) 등 새로운 정보통신기술(ICT) 사업과 동시에 보안, 미디어, 커머스 등 비통신사업을 함께 키워내며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5G 상용화 이후 비용 압박과 보조금 경쟁 등으로 경쟁사들의 실적이 급감하는 중에도 SK텔레콤의 실적은 개선됐다. ADT캡스와 11번가 등 비통신 부문의 실적 개선 덕분이었다. 그의 비통신 투자가 주효했다는 분석이 나오는 까닭이다. 박 사장은 SK브로드밴드 사장을 겸직하며 SK브로드밴드와 티브로드의 기업합병도 추진 중이다.

박 사장은 글로벌통(通)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특유의 친화력으로 팀 쿡 애플 CEO,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 젠슨 황 엔비디아 CEO, 인도 바르티 에어텔의 바르티 회장, 마윈 전 알리바바 회장 등 글로벌 거물급 인사들과의 돈독한 인맥을 구축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내수사업이었던 통신사업의 글로벌 진출을. 꿈꾸며 MWC, CES 등 전세계 IT 관련 행사에도 참여하고 있다. 그룹 내에서 박 사장은 글로벌성장위원회를 맡고 있기도 하다. 연말 즈음 정기인사를 발표해온 SK그룹의 관행상 박 사장의 거취도 곧 결정이 날 전망이다. 그는 현재 사장 연임은 물론 부회장 승진까지 점쳐지고 있어 결과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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