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국적 항공사들이 초비상에 걸렸다. 최근 2~3년간 항공 시장 급성장으로 이른바 ‘초호황’을 누렸던 국내 항공업계가 대내외 산적한 악재들로 끝이 보이지 않는 암흑 터널에 갇혔다. 올해 항공여객 성장세가 주춤하는 와중에 미중 무역 분쟁, 환율·유가 상승, 일본 제품 불매 운동 등 각종 악재마저 겹치면서 국적 항공사들이 사실상 사면초가에 빠진 형국이다. 이에 데일리한국은 국적 항공사들을 둘러싼 위기 상황을 진단하고, 국내 항공산업 보호를 위한 대안 등을 4회에 걸쳐 연재한다.

국적 저비용항공사(LCC) 항공기. 사진=각 사 제공

[데일리한국 이창훈 기자] “국내 항공 역사상 최대 위기다.”

국내 항공업계가 초유의 위기 상황에 직면했지만, 정부는 국내 항공 산업 보호와 관련해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는 지적이다. 항공업계에서는 “정부의 정책 기조에 적극 부응하기 위해 채용 확대 등에 심혈을 기울였는데, 정작 항공업계 위기에 대한 정부의 지원 정책은 전무한 상황”이라는 성토가 쏟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가만히 놔둬도 힘든데, 정부가 항공사 ‘옥죄기 정책’에만 골몰하고 있다”는 비판마저 나오고 있다. 그야말로 국적 항공사 ‘수난시대’가 아닐 수 없다.

◇“정부 정책 기조 적극 협조했는데…항공산업 보호 정책 실종”

9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지난 5~6일 김포공항 국제선청사에서 ‘제2회 항공 산업 취업 박람회’가 열렸으나, 이번 박람회가 사실상 ‘보여주기’식 박람회였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국적 항공사 관계자는 “항공사 신규 채용은 노선 개설 등 사업 확장을 전제로 이뤄지는 것”이라며 “현재 위기 상황에서는 채용 자체가 어려운데, 정부의 압박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박람회에 참여한 분위기”라고 불만을 털어놨다.

또 다른 국적 항공사 관계자는 “채용 계획이 확정되지 않은 국적 항공사들 사이에서는 올해 채용 박람회 참가에 대한 회의적인 의견이 많았다”며 “일부 항공사들은 구직자들에게 ‘채용 계획이 확정되면 알려 주겠다’고 답하는 등 진땀을 뺐다고 한다”고 전했다.

국내 항공업계는 지난해 처음 대규모로 항공 산업 취업 박람회를 열었다. 당시 국적 항공사들은 신규 취항 등 사업 확장에 따라 채용을 확대한 것도 있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정부의 일자리 창출 정책 기조에 적극 부응하기 위함이었다.

국적 항공사들이 정부의 일자리 창출 정책 기조에 적극 협조한 것과 달리, 정부는 국적 항공사들이 맞고 있는 초유의 위기 사태에 대해 별다른 관심이 없는 분위기다. 국토교통부는 일본 제품 불매 운동에 따른 일본 노선 수익 악화와 관련해 지난 7월 국적 항공사들을 대상으로 간담회를 실시했으나, 이후 구체적인 후속 조치는 없는 상황이다. 간담회 당시에도 실효성 있는 대책 등은 논의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국적 항공사의 한 관계자는 “국토부가 지난 7월 간담회에서 현재까지 취항하지 않은 지역에 신규 노선을 개설하면 지원을 한다는 식으로 제안을 했으나, 회의적인 반응이 많았다”며 “현재 수익을 낼만한 대부분 노선에 취항한 상황이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새로운 지역의 신규 취항으로 수익을 내기 어려운 만큼, 실효성 있는 지원 정책은 아니라는 것이다.

진에어 B777-200ER. 사진=진에어 제공

◇“정부, 항공사 ‘옥죄기 정책’에만 골몰”

항공업계에서는 정부가 항공산업을 보호할 의지 자체가 없다는 말까지 나온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항공 산업 보호가 아니라, 항공사 ‘옥죄기 정책’에만 골몰하고 있다”는 비판마저 흘러나온다.

대표적인 사례가 진에어 대한 국토부 제재다. 국토부는 지난해 8월 퇴직 임원의 갑질 논란 등을 이유로 진에어를 상대로 신규 노선 허가 제한, 신규 항공기 등록 및 부정기편 운항 허가 제한 등의 제재를 가했다. 하지만 1년이 넘은 현재까지 그같은 고강도 제재를 유지해 업계에서도 의아해하고 있다. 갑질 논란의 원인 제공자이자 장본인인 조현민 전 진에어 부사장(현 한진칼 전무)은 이미 지난해 4월 퇴사한 상태다. 하지만 국토부는 별다른 이유없이 제재를 풀지 않은 채 어정쩡한 상황을 이어가고 있다.

국토부가 국적 항공사들에 지나치게 과도한 과징금 처분을 내리는 등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고 있다는 지적도 고개를 들고 있다.

진에어는 안전 규정 위반 등으로 지난해 국토부로부터 총 6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당시 국토부의 과징금 액수는 국적 항공사에 내려진 최대 금액이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국적 항공사에 대한 최대 과징금은 국토부가 지난해 위험물 운송 규정 위반과 관련해 제주항공에 90억원의 과징금 처분을 내리면서 바뀌었다. 진에어는 지난해 10월 국토부의 60억원 과징금 처분이 부당하다며 국토부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해 현재 1심이 진행 중이다. 제주항공 역시 국토부의 제재가 과도하다며 행정소송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행정안전부의 경우 지난해 8월 ‘지방세 관계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면서 올해부터 자산 규모 5조원 이상의 대형항공사(FSC)에 대해서는 항공기 취득세와 재산세 감면 대상에서 제외한바 있다. 아울러 국적 저비용항공사(LCC)의 재산세 감면 기한도 5년으로 제한했다.

이에 따라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1987년 항공기 취득세와 재산세 감면 제도가 도입된 이후 32년 만에 감면 대상에서 빠지게 됐다.

지난달 27일 공포된 항공사업법 개정안에는 재무 상태가 좋지 않은 항공·운송사업자에 대한 면허 취소 요건을 완화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개정안에 따라 국토교통부 장관이 부실 항공사에 대한 사업 정지 등을 명할 수 있는 자본잠식 기간 요건은 3년에서 2년으로 1년 단축됐다.

국적 항공사 관계자는 “김현미 국토부 장관이 2017년 6월 취임한 이후 국적 항공사에 대한 엄격한 제재가 이어지고 있다”며 “국토부의 규제는 당연하지만, 다른 업계와 비교하면 형평성에 맞는 제재 수위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고 볼멘소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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