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무순위 청약 예비당첨자 비율 확대 이후 남은 과제

사전 무순위 청약, 마케팅 수단 전락 가능성…폐지 주장도

지난 20일부터 투기과열지구의 청약 예비당첨자 비율이 500%로 확대됐다. 무순위 청약제도가 '현금부자들만의 잔치'가 된다는 비판이 일자 정부가 내놓은 대책이다.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 개정과 함께 지난 2월 변경된 무순위 청약제도가 시행된 지 석달여만에 청약제도가 또 다시 바뀐 것이다. 시장에서는 이번 조치가 과열된 무순위 청약시장을 잠재우는데는 일조할 수 있겠지만, 강력한 대출규제로 앞으로도 미분양·미계약 물량이 속출할 수 있는 점에 대해서는 우려의 시각을 내비치고 있다. 또한 사전 무순위 청약제도가 건설사의 마케팅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이에 본지는 바뀐 무순위 청약제도의 효과와 전망, 과제에 대해 상·하로 나눠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데일리한국 박창민 기자] 정부의 청약 예비당첨자 비율 5배수 확대 조치를 놓고 전문가들의 긍정적인 평가와 함께 '반쪽짜리' 대책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이번 조치가 과열된 무순위 청약시장을 억제시키는 데는 기여하겠지만, 대출규제의 허들을 낮추지 않는 한 앞으로도 분양시장에서 강남 등 일부 인기지역을 제외하곤 다량의 잔여물량이 나올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선별적 대출규제 완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최근 미계약 물량이 늘어난 배경에 대해 전문가들은 정부의 강력한 대출 규제를 우선 꼽았다.

박원갑 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대출 규제, 고분양가, 집값 상승에 대한 수요자들의 기대감이 낮아졌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도 "더욱 까다로워진 청약제도로 부적격 당첨자가 많아지고, 대출 규제로 분양가격 9억원 이상에 대한 중도금 집단 대출이 안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분양가격 9억원 이하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보증을 통해 중도금 대출이 가능한 반면, 9억원이 넘으면 중도금 대출이 불가능하다.

최근 9억원이 넘어도 건설사의 신용으로 중도금 대출을 알선해주는 곳도 있지만 대출 건수 제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등에 걸려 중도금 대출을 전액 받기가 어려운 계약자가 적지 않다.

건설사가 주도적으로 나서 중도금 납부회차 중 절반까지만 납부하면 남은 회차는 연체되더라도 계약해지 없이 연체이자도 기존보다 저렴하게 적용받는 이른바 '중도금 연체 마케팅'까지 하는 실정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다수의 전문가들은 미계약 물량이 속출하는 현재 분양시장에 선별적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생애 최초 주택구입자나 장기무주택자, 실거주를 목적으로 주택 이전 수요가 있는 1주택자 등에 대한 규제 완화가 대표적인 예다.

권대중 명지대 교수(부동산학과)는 "1주택자의 경우 주택 이전 수요가 있음에도 대출 규제로 인해 이사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면서 "1주택자이면서 실수요자라면 주택 구입을 할 수 있도록 대출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함 랩장도 "정부에 무조건 대출 규제를 완화해야한다고 요구할 순 없지만, 생애 최초 주택구입자나 장기 무주택자 등에 한해서 만큼은 중도금 규제를 완화해줄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청약자가 개인 사정에 따라 중도금 납부회차 중 특정회차를 선택해 부분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을 제안하는 전문가도 있었다.

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팀장은 "중도금 대출 규제 전체를 완화하진 못해도, 예를 들어 중도금 납부횟수가 6회라면 청약자가 자신의 자금 상황에 맞춰 1, 2, 3회나 4, 5, 6회 등 특정회차를 선택해 대출할 수 있게 해 대출을 탄력적으로 받을 수 있게 해야한다"고 조언했다.

권 팀장은 이어 "예비당첨자 비율을 높여 무주택자들에게 당첨 기회를 높여줘도 자금이 없으면 무주택자에게 분양은 다른 사람이야기일 뿐이다"라면서 "무순위 청약시장을 규제하기 앞서 대출 규제를 풀어야 순서가 맞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량의 잔여물량이 나오는 또 하나로 거론되는 부적격 당첨자 문제는 연내 구축 예정인 '청약자격 사전검증시스템'이 해결책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함 랩장은 "까다로운 청약제도로 부적격자 다수가 청약에 당첨되는 문제는 오는 10월 아파트투유 청약관리주체가 금융결제원에서 한국감정원으로 바뀌면 국세청·행정안전부·법원 등과 연계해 청약자가 직접 입력하지 않고도 주택수·무주택기간·세대주 여부 등을 확인할 수 있게 될 것으로 보여 부적격 당첨자 문제를 일부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특히, 일각에서는 건설사의 마케팅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는 사전 무순위 청약제도를 폐지하는 방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흘러나온다.

함 랩장은 "무순위 청약제도 자체가 미계약된 물량에 대해 일종의 패자부활전을 여는 셈인데, 무순위 청약에는 사전 무순 청약뿐 아니라 사후 무순위 청약도 있기 때문에 굳이 사전 무순위까지 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라며 "사전 무순위청약을 없애면 과대 포장된 마케팅으로 인한 착시효과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공급자인 건설사 입장을 고려해 사전 무순위 청약 폐지는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권대중 교수는 "미계약 물량이 계속 나오고 있는데 공급자인 건설사 입장에서 분양에 도움을 줄 여러 방안이 필요한 시점"이라면서 "합법적인 범위 내에서 건설사의 분양은 시장 논리에 맡길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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