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노삼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21일 조합원 2200여명을 상대로 한 2018 임금 및 단체협상 잠정합의안에 대한 찬반투표를 진행했다. 투표 결과 합의안 반대 51.8%로 부결됐다. 사진=르노삼성 노조 제공
[데일리한국 박준영 기자] 르노삼성차의 임금 및 단체협약 안이 찬반투표에서 부결되면서 경영정상화도 안갯속으로 빠져들었다.

사측은 회사의 지불능력과 지속가능성 등을 감안한 최선의 잠정합의안을 제시했다는 입장이지만, 잠정합의안 부결의 가장 큰 원인을 ‘기본급 동결’로 보는 노조는 오는 27일부터 천막 농성에 돌입키로 했다.

노조는 22일 오후 1시부터 확대간부회의를 통해 잠정합의안이 부결된 원인과 함께 재협상 일정을 논의했다.

르노삼성 노조는 전체 2219명으로, 1736명이 가입한 기업노조와 444명이 가입한 영업지부, 39명이 가입한 금속지회로 나뉜다.

사측은 합의안 부결의 가장 큰 원인으로 영업지부 소속 조합원 투표를 지목했다. 기업노조와 금속지회가 포함된 부산공장에서는 찬성이 52.2%로 과반 이상 잠정합의안에 동의했지만, 영업지부 소속 조합원 투표에서는 반대표가 65.6%로 찬성표(34.4%)와 큰 차이를 보였기 때문이다.

이에 업계에선 노노(勞勞) 갈등이 잠정합의안 부결로 파생된 것 아니냐는 분석이 일기도 했지만, 노조 측은 기본급 동결을 비롯해 전환배치문제와 외주 용역화 등에 대한 현장 요구안이 잠정합의안에 충분히 담겨있지 않은 점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특히 노조는 영업지부 조합원들이 잠정합의안에 반대표를 많이 던진 이유에 대해서도 비정규직 전환을 지적했다. 영업 A/S정비소에 근무하는 조합원의 경우 부산공장보다 기본급이 낮은 최저임금 미달자가 상당할 뿐만 아니라 외주 용역화로 인한 고용불안이 투표로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노조 관계자는 “기본급 동결 등에 대한 이견이 다소 있었다”면서 “천막 농성 외 추가 교섭과 관련된 내용은 상무 집행간부 회의를 통해, 파업과 관련된 내용은 쟁의대책위원회를 통해 결정키로 했다”고 전했다.

2018 임단협 잠정합의안 부결 후 르노삼성 측이 22일 노조 측에 보낸 담화문. 사진=르노삼성 노조 제공
이처럼 르노삼성의 앞날이 불투명해지면서 수출 물량 확보에도 ‘비상’이 걸렸다. 임단협을 둘러싼 노사 갈등이 장기화되면서 르노-닛산 본사는 지난 3월 부산공장에서 위탁 생산하는 북미 수출용 스포츠유틸리티(SUV) '로그'의 생산 물량을 10만대에서 6만대로 40% 줄이겠다고 르노삼성에 통보했다.

로그는 부산공장의 생산량을 절반가량 차지하고 있지만, 오는 12월 위탁생산은 종료된다. 이를 대체할 물량은 아직 배정되지 않았다.

르노삼성은 내년 1분기부터 부산공장에서 생산하겠다고 밝힌 크로스오버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XM3 인스파이어’의 유럽 수출 물량을 기대하고 있지만, 임단협 갈등이 이어지면서 르노그룹은 해당 물량을 생산비용이 낮은 스페인공장으로 돌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르노삼성 측은 이날 담화문을 통해 "닛산 로그 생산 종료 시점이 임박한 시점에서 협력적 노사 관계의 기반까지 무너졌다"면서 "수출 물량 확보가 이뤄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계획된 물량까지 취소되는 등 미래 생존에 대한 불확실성도 높아졌다"고 밝혔다.

또한 "경쟁력을 상실하고, 고용을 위협하는 추가 안을 제시하면서까지 타협할 뜻이 없다"면서 "물량확보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추가적인 제시를 한다면, 이는 직원들의 고용을 져버리는 안이 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업계에선 이번 합의안 부결에 대해 르노그룹과 수출 물량 협상을 벌이는 르노삼성 측에 악재로 작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르노삼성이 군산공장을 폐쇄한 한국지엠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합의안이 부결되면서 르노삼성은 부산공장의 존립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면서 “외국 기업의 경우 경쟁력을 상실한 공장을 그대로 두지 않는 만큼, 노조도 사측이 많은 요구를 한 번에 들어주길 바라는 것보다는 단계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정상적인 노동생산성을 회복하기 위해 힘써야 할 시기에 합의안이 부결, 정상화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 상황”이라면서 “르노본사 입장에서는 생산성을 좋지 않은 지역에 물량을 배정할 이유가 전혀 없을 뿐만 아니라, 철수까지도 계산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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