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회장, 지난 7월 대리급 이하 직원 200여명에 휴가비 20만원씩 직접 건네

일부 직원 "최 회장이 '환호성 크면 더 주겠다'고 말했다…인격 농락당해" 주장

최병오(좌측 상단) 패션그룹형지 회장이 직원들에게 휴가비를 직접 건네는 자리에서 환호 소리 크게 지를수록 더 많은 액수를 주겠다는 식의 제의를 수차례 했다는 주장이 회사 내부에서 제기됐다. 사진=권오철 기자(사옥), 패션그룹형지 제공

[데일리한국 권오철·박준영 기자] 최병오(65) 패션그룹형지 회장이 직원들에게 휴가비를 직접 건네는 자리에서 환호성을 크게 지를수록 더 많은 액수를 주겠다는 식의 제의를 수차례 했다는 주장이 회사 내부에서 제기돼 논란이 일고 있다. 일부 직원은 매번 말뿐인 최 회장의 강요에 인격적 농락을 당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호소했지만, 정작 회사 측은 '사실 무근'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11일 복수의 패션그룹형지 직원에 따르면, 최 회장은 지난 7월 서울 강남구 논현로에 자리한 패션그룹형지 사옥의 지하 강당에서 사원·주임·대리급 직원 200여 명을 모아놓고 직접 하계 휴가비를 건넸다.

이때 최 회장은 휴가비 지급에 대한 '환호 소리'를 내면 더 많은 액수를 주겠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고 한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패션그룹형지 직원 A씨는 "최 회장이 '내 마음 속 주머니에 봉투가 있는데, 환호성이 커질수록 두께가 두꺼워진다'고 말했다"고 떠올렸다.

현장에 있었던 또 다른 직원 B씨는 "최 회장이 금액을 더 주겠다며 휴가비에 대한 (리)액션을 수차례 강요했다"며 "실제로 환호 소리가 휴가비에 반영되진 않았겠지만 그렇게 요구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B씨는 당시 최 회장의 발언에 대해 "인격이 우롱당함을 느꼈다"며 "적은 액수의 돈인데. 그거 안 받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으로 안다. 그 돈 받기 위해 우리가 이런 농락을 당하고 있어야 하나"라고 자괴감을 드러냈다.

지급된 휴가비 액수는 현금 10만 원, 형지 상품권 10만원 등 총 20만 원이다. 직원들이 줄을 서서 사인을 하고 돈을 받아갔던 것을 감안하면 실제로 환호 소리에 따른 휴가비 차등 지급은 없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하지만 최 회장이 보상을 전제로 환호를 요구했다가 아무런 보상을 해주지 않은 사례가 이전에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B씨는 "(최 회장의 말이) 이미 직원들에게는 신뢰가 없기 때문에 '환호를 해 봐야 안 줘'라는 목소리가 더 큰 상황"이라고 사내 분위기를 전했다.

패션그룹형지 사옥의 지하 강당. 최병오 회장은 이곳에 대리 이하급 직원 200여 명을 모아놓고 휴가비를 건넸다. 사진=권오철 기자

이 같은 상황에 대해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 소장은 "(직원들에게 휴가비를) 더 못 줘서 미안하다, 실적이 좋으면 더 주겠다고 해야 근로 의욕이 고취될 텐데"라며 "적은 금액으로 환호를 강요하고, (더 주겠다며) 희망을 불러일으키고 수차례 기만한 것은 또 다른 형태의 갑질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최진수 민주노총 서울지역본부 공인노무사는 "환호를 강요한 것은 직원들 위에 군림하는 쾌감을 느끼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면서 "그 과정에서 주관적 시각에 따라 어느 직원에겐 모욕감을 줬을 것이고, 또다른 직원에겐 그렇지 않았을 수 있지만 소수의 직원이 모욕감을 느꼈다면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 노무사는 "모든 직원 위에 군림하는 자라면 모든 직원이 만족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고 한 사람이라도 불편을 느낄 만한 발언은 쉽게 해서는 안 될 것"이라며 "예를 들어 백 명의 직원 중 한 명의 동성애자가 근무하고 있는 환경에서 회장이 동성애를 혐오한다는 발언을 해서는 안 되는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패션그룹형지 관계자는 "(최 회장이) 휴가비를 지급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최 회장이 보상을 전제로 환호를 강요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사실 무근"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그는 "직원들의 흥을 북돋우기 위해 박수치고 환호성을 낼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한편 1982년 설립된 패션그룹형지는 형지I&C, 형지에스콰이아, 형지엘리트, 형지쇼핑, 형지리테일 등 패션 및 유통 계열사를 거느린 모기업이다. 대표적인 패션·슈즈 브랜드로는 △크로커다일레이디 △샤트렌 △올리비아하슬러 △까스텔바쟉 △예작 △에스콰이아 △영에이지 △엘리트 등이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스템에 따르면 패션그룹형지는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 5042억 원, 영업이익 337억 원, 당기순이익 113억 원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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