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듬 시인 세 번째 시집 <말할 수 없는 애인> 출간
한 편의 영화를 보거나 한 권의 책을 고를 때, 우리는 '내 안의 편견'을 발견한다. 배우나 작가, 감독의 이름값으로 작품을 보며 자신의 취향이 나름 고상하다고 착각한 적이 한 번씩은 있을 테니까.

물론 이와 반대로 인상 깊은 작품을 접하며 배우와 감독, 작가의 이름을 머릿속에 새겨두기도 한다. 어떤 장르에 대해 자신만의 심미안을 가졌다고 확신할 때는 이런 이름값을 무시하고 제 취향을 타인 앞에 드러낼 수 있을 때가 아닐까.

이 편견으로 상당히 많은 독자가 잃어버린 작가가 있다. 시인 김이듬이다.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부산대를 졸업하고 2001년 <포에지>로 등단한 그녀는 지금도 진주에 살며 지방대에서 문학 강의를 한다.

쉽게 말해 비주류 코스를 정석대로 밟았다. 낯설고, 난해하고, 불편한 그녀의 시는 이른바 미래파로 불린, 2000년대 유행처럼 번진 가방끈 긴 시인들의 한 조류로 분류돼 시단에서 언급되는 정도였다. (미래파의) 황병승이 예의 삐딱한 기질로 의도적 불편함을 만들고, 김경주가 현학적 비문으로 역설적인 아름다움을 만든다면, 김이듬의 시는 분열증적인 자아를 내세워 독자에게 주이상스(쾌락)를 던졌다.

그러나 서정시도 안 읽는 시대에 지방에 사는 이름 모를 작가의 시를 공부해가며 읽을 독자는 많지 않다. 그래도 좋은 시의 진가를 아는 이들은 있는 법이어서, 그녀의 시를 본 출판사들은 언제나 먼저 시집 출간을 제안했고, 당대 최고의 평론가들이 그녀의 시를 해설하고 평했다.

최근 시인 김이듬이 세 번째 시집 <말할 수 없는 애인>과 장편 소설 <블러드 시스터즈>를 냈다. 능숙한 화술, 밀도 높은 구성으로 이뤄진 이전 두 권의 시집에 비해 세 번째 시집은 저자의 자아고백적인 모습이 많이 보인다.

그래서 세 권의 시집 중 가장 '무난하게' 읽힌다.시인의 말대로 "제가 변한 것도 있지만, 주위 환경이 바뀐 탓"도 있을 게다. 세 권의 시집이 나오는 10년 사이, 공부하며 읽어야 할 시집이 수십 권은 족히 쏟아졌으니까.

이 자아고백의 정점은 시집 끝 부분에 실린 '여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다. 시인은 어느 매체에 산문으로 발표한 작품을 다듬어 시로 썼고, 이 시를 모티프로 다시 첫 장편소설을 썼다. 때문에 최근 나온 두 권은 마치 한 세트처럼 읽히기도 한다.

이미 그곳에 있는 말

워밍업으로 김이듬에 대해 소개한다. 문학평론가 이광호는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오늘의 문학'코너에서 김이듬의 시 '푸른 수염의 마지막 여자'를 소개하며 이렇게 썼다.

'김이듬의 세이렌(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바다의 요정)은 단순한 여성 유혹자가 아니다. (…) 이 이상한 나라의 세이렌은 자신의 강박증을 세상의 상징질서를 위반하는 분열증적인 시적 에너지로 전환한다.'

무슨 말이냐면 김이듬의 시에서 화자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어 분열하는 자아, 다중인격의 자아라는 말이다. 그의 시에서 화자는 '여자도 남자도 아니고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니라는 말' (시 '푸른 수염의 마지막 여자' 3연 1행)이다.

미래파 시인들의 시 특징 중 하나는 다채로운 화자가 등장한다는 점인데 이 낯섦이 '난해함'으로 비판받을 때가 종종 있었다. 하지만 이 낯섦은 기실 이 시인들과 일반 독자들의 독서량에서 오는 괴리감이다.

이전 서정시가 연과 연, 행과 행 사이의 아득한 거리를 통해 문학성을 보여주었다면, 최근의 젊은 시인들의 시는 언어가 종이 위에 놓인 '구조'를 통해 문학성을 쟁취한다. 물론 이런 시도도 계보는 있는 법이고, 젊은 시인들은 자신들이 읽은 책을 발판 삼아 '업그레이드 버전'을 선보인다.

'오랫동안 수척했던 불만스러운 체류자가/ 거대한 도시 벗어났으니, 이제는 자유로이, 새처럼 자유로이, 원하는 곳에 정착하리.

(…)

여기서, 당시 젊디젊은 여행자였던 내가/ 보았던 것, 그리고 지금 날마다 고향의 친숙한/ 산책 길에서 보는 광경을 마음속에 불러일으키며,/ 여기서 잠시 멈추고, 자연에게, 그리고 인간의/ 마음이 지닌 힘에, 자신들의 내면 모습/ 그대로의 인간들에게 경의를 표해도 되겠지.'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로 알려진 워즈워드의 대표작은 그가 죽은 뒤 발표한 시 <서곡>이다. 시인은 자신의 삶을 서사적으로 써내려간 13권으로 된 장시를 완성했고, 이 시는 죽어서 발표됐다. 주목할 점은 시의 화자인데, 앞 연의 화자는 죽은 자이고 다음 연의 화자는 산 자의 청년 시절이다.

같은 화자가 한 연에서는 죽은 자, 한 연에서는 산 자로 존재한다. 고로 이런 시는 '(소리 내)읽기'가 아니라 '보기'로 감상할 때 이해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이는 현대시가 말하기 방식이 아니라 쓰기의 방식으로 존재함을 의미한다. 황병승이 '내 안의 무수한 나'로 분화된 주체를 화자로 삼고, 김행숙이 '끊임없이 유동하는 나'를 화자로 삼는 건 이런 계보에서 시작된다.

분열된 자아를 통해 독특한 말하기 방식을 선보인 김이듬의 시 역시 각 연과 행마다 화자를 달리 보면 '난해하지 않는 시'이고, '이해될 수 있는' 세이렌의 언어다.

말할 수 없는 애인

두 권의 시집에서 도발적이고 날카로운 시적 자의식을 선보인 저자는 세 번 째 시집 <말할 수 없는 애인>에서 한층 힘을 뺐다. 앞에서 설명한 '분열하는 화자'는 단정해진 모양새로 가다듬어졌고, 시의 서사도 간결해졌다.

시인은 이번 시집을 "말해줄 수 없는 것에 대한 고백이고 사랑"이라고 말했다. 어떤 절실한 감정을 말하지 못할 때의 안타까운 심정, 이것이 말해지는 방식, 이 말을 기록하는 시인의 자의식이 이번 시집을 관통하는 내용이다.

총 3부로 나뉜 이 시집에서 저자는 초반 시적 자의식이 강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표제작을 비롯해 '문학적인 선언문', '죽지 않는 시인들의 사회' 같은 작품이 대표적이다. 그는 "늦은 감이 있지만 이번 시집에서 시가 뭐고 내가 문학을 왜 하는지에 대해서 고민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음악도 도입부가 있는 것처럼 가벼운 작품으로 (시집을) 시작하고 싶었어요. 부담 없이 첫걸음 떼고 오케스트라 협연처럼 깊이 들어갔다 다시 고요한 음악으로 빠져나오는 것처럼. 음악 앨범처럼 생각하고 묶었죠."

그의 말처럼 시집의 본격적인 재미는 2부 후반과 3부 초반에 있는 시들에서 볼 수 있다. 필자는 '성으로 가는 길'을 흥미 있게 읽었다고 말했고, '여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를 자전적 고백의 시로 읽었다고 말했다. 시 '성으로 가는 길'에서 화자는 '성으로 가는 길'이란 작품을 쓰리라 다짐하고 도전과 실패를 반복한다.

마치 "고도 씨를 기다리는"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처럼. 도둑맞은 편지를 찾으려고 아등바등거리지만 정작 편지 내용은 끝내 밝혀지지 않는 애드거 앨런 포의 '도둑맞은 편지'처럼. 시의 마지막에 화자는 말한다.

'언젠가 밀레나와 함께 이 성을 빠져나가면 <성으로 가는 길>을 세밀한 약도처럼 쓸 수 있을 것이다' (시 '성으로 가는 길')

"시집 제목 '말할 수 없는 애인'처럼 말하려고 하지만 말할 수 없고, 만나려고 하지만 만날 수 없는 이중모순적인 게 삶인 것 같아요. '성으로 가는 길'에서 화자가 쓰려던 '성으로 가는 길'도 그렇고요. 이게 제의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갖는 상실감, 유토피아적인 감성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여자가…'에서 김이듬 특유의 '다중인격' 자아가 출현한다. 자신을 스쳐간 많은 여자들을 기록하며 시인은 이 여인들을 때로 사랑하고, 때로 증오하고, 때로 연민을 느낀다.

'그녀가 내 첫 번째 엄마다. 영원한 적수이자 연인, 기타 등등이다. 여고 시절 문예부장이었다던 그 말이 뻥이 아니라면, 그녀와 난 피를 나눈 블러드 시스터즈 2인 동인이다. 둘이며 하나다.' (시 '여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

블러드 시스터즈

앞서 소개했듯 이 시는 장편소설 <블러드 시스터즈>의 모티프가 된 시다. 지난주 출간된 이 소설은 문예지 <풋>에 지난 해 1년 동안 연재된 작품으로 작가의 자전적 경험이 다수 녹아있다.

작가는 80년대를 배경으로 20대 청춘들의 상처, 결핍, 관계에 주목한 이야기를 펼친다. 주인공 정여울은 독문학을 전공하는 여대생이다. 부모의 외도와 이혼, 남동생의 죽음으로 엉망이 된 집에서 나와 학교 선배인 지민의 자취방에서 살고 있다. 지민이 깊게 관계한 학생운동에 관심을 보이지만, 이는 운동보다 지민에 대한 애정 때문이다.

여울은 아르바이트로 카페에서 일하게 되고, 카페 단골인 치과의사 지현에게 독일어를 가르치며 친해진다. 크리스마스가 얼마 남지 않은 저녁, 지민이 자살한 채 발견되고 여울은 지민이 카페 알바생 선균에서 강간당한 사실을 알게 된다.

선균에게 항의하다 자신이 강간당할 위기에 처한 여울은 가까스로 위기를 빠져나오고 자신을 간호해주는 지현과 가까워진다. 이후 지현의 엄마와 여울의 생모가 가까운 사이임을 알게 되고 생모를 찾아간 여울은 혼란에 빠진다.

저자에게 소설의 어디까지가 경험이고, 무엇이 허구인지 묻지 못했다. 그는 "소설 <양철북>에서 주인공이 지하실에 떨어져서 성장을 멈춘 것처럼, 제가 대학시절 이후로 별로 성장하지 못했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구조나 서사 고민 없이 썼고, 제 자신을 이해하는 신선한 경험이었다. 기쁘게 썼다"고 말했다. 주인공 여울은 작가의 예전 이메일 아이디란다.

작가의 말처럼 이 소설은 기승전결의 구성이나 거대한 상징이 있는 소설은 아니다. 다만 그 시대 청춘들이 겪은 질풍노도의 삶을 가감 없이 드러낸 이야기다. 고로 작품 속 인물 역시 그녀의 시적 화자처럼 분열한다. 작가는 말했다.

"합의도출해서 어떤 시선을 보여주면 좋겠지만, 여실하게 제가 사랑과 미움, 증오, 연민을 동시 느끼는 혼란 속에 있다는 걸 보여줄 수 밖에 없었죠."

인터뷰 중 시집에 대해 감상평을 길게 말했던 필자는 소설에 대해서는 "요즘 구조 안의 여성에 대해서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체성이란 스스로 부과하는 것인 동시에 강자가 약자에게 강제하는 것'이란 말(에드워드 사이드, <말년의 양식에 관하여>)처럼,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은 여성 스스로 존재하기도 하지만, 남성의 대립항으로 존재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 강제된 정체성에 스스로 포박되기도 한다. 여성은 때로 남성에 저항하고, 때로 순응하고, 때로 강제된 정체성을 비판하면서도 때로 이용해먹는다. 고로 가부장제사회에서 여성은 분열한다. 김이듬의 시와 소설 속 화자가 다중인격 성향을 보이는 것은 '구조 안에서' 이미 그렇게 규정되었기 때문이다.

'소설을 쓸 줄 몰랐다, 내가'(<블러드 시스터즈> 작가의 말)라고 쓴 시인은 앞으로 몇 권의 시집과 몇 편의 소설을 더 쓸 것처럼 보인다. 몇 편의 단편을 써두기도 했단다.

"우리가 하나의 세계를 살지만 양력도 있고 음력도 있잖아요. 시는 달의 움직임 같아서 시를 쓸 때는 현실에서 떠나려는 욕망, 죽음이나 허무를 향한 욕망이 있어요. 소설은 해의 움직임 같더라고요. 현실과 인물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쓸 수 없는 것이고 시에 비해서 즐거운 노동이에요."

기자소개 이윤주 기자 다른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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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11/05/18 03:35:38 수정시간 : 2011/05/18 03:3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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