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한국 이윤희 기자] 국내 대표 메모리 반도체 기업 SK하이닉스가 10월20일 오전 미국 인텔의 낸드(NAND) 사업 부문을 10조3000억원에 인수하기로 양도 양수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인수 부문은 인텔의 솔리드 스테이트 드라이브(SSD) 사업 부문과 낸드 단품 및 웨이퍼 비즈니스, 중국 다롄 생산시설을 포함한 낸드 사업 부문 전체다.
인수금액은 10조3104억원이고, 양수 기준일은 오는 2025년 3월이다. 내년 말까지 8조원를 현금으로 지급한 뒤 2025년에 나머지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인수대금을 지불한다.
공시 직후 일시적으로 튀어 올랐던 주가는 연일 하락했다. 공시 당일 주식 거래가 30분 동안 정지됐다가 풀린 오전 한때 9만900원까지 치솟았으나 하락세로 돌아 1.7% 내린채 마감했다. 다음날인 21일 주가는 전날보다 1.64% 내린 8만3800원을 기록했다. 외국인과 기관 투자자들이 공시 이후 많은 물량을 매도하며 차익 실현에 나섰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20일 하루 동안에만 외국인 투자자들은 1020억원, 기관 투자자들은 85억원 어치를 팔았다. 반면, 개인 투자자들은 1034억원 순매수해 하락폭을 줄였다.
증권가에서는 SK하이닉스의 인텔 메모리 사업 부문 인수가 장기적으론 긍정적이지만 단기적으로 인수대금 등이 주가에 부담을 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일반적으로 인수합병(M&A) 소식이 나오면 인수 기업의 주가가 하락하는 것이 그 때문이다.
이미 포화 상태라 수익을 내기 어려운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 새로운 투자를 했다는 점도 지적받고 있다. SK하이닉스가 인수한 인텔의 낸드플래시 사업부는 인텔의 메모리 사업 전담부서인 ‘비휘발성 메모리 솔루션 그룹(NSG)’에 속해 있다. NSG는 지난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적자를 이어왔고, 2019년 들어서야 흑자전환했다.
또한 원래 예상 인수가액 6조~7조원대에 비해 훨씬 높은 10조원에 달하는 인수가격 때문에 비싸게 샀다는 평가도 나온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세계 최대의 하드디스크 생산 업체 웨스턴 디지털 코퍼레이션의 시가총액도 12조원 수준"이라며 인수가격이 비싸다고 봤다.
이순학 한화투자증권 연구원도 “인수가격 10조원은 다소 부담으로, 단기적으로 주가 조정의 빌미를 줄 수 있다”면서 “내년 시장 컨센서스 기준 상각전 영업이익(EBITDA)은 18조5000억원이고, 연평균 13조원의 설비투자비(CAPEX)와 1조원의 배당금을 집행하다고 가정하면 잉여현금흐름(FCF)은 4조원으로, 부족한 부분은 차입을 통해 해결할 것이라 당분간 설비투자는 보수적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유악 키움증권 연구원은 “(인텔 낸드 사업의)업황 사이클 움직임에 따른 지난 2018년 1분기부터 올해 2분기까지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10% 수준”이라며 “따라서 SK하이닉스의 인텔 메모리 사업 인수가 단기 실적에 (긍정적인)영향을 끼칠 가능성은 낮다”고 설명했다.
이어 “2025년 3월까지 다렌 생산시설에 대한 운영권이 주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1차 클로징에서 8조원을 지급하는 것은 부담이라고 판단된다”며 “다롄 공장 제품의 장기 경쟁력에 대한 의문점도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이번 인수를 통해 SK하이닉스가 낸드 사업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기회라는 평가도 나온다. 취약했던 SSD 부문에 강점을 갖게 됐고, 단숨에 시장 점유율 19.4%의 글로벌 2위 낸드플래시 사업자로 뛰어오르게 된다. 장기적인 관점에선 긍정적인 재료로 해석할 수 있다.
낸드플래시는 컴퓨터와 모바일 저장 장치인 SSD 등에 들어가는 메모리 반도체다. 전원이 끊겨도 데이터가 저장되는 특성 때문에 글로벌 데이터센터나 클라우드 구축에 사용한다.
SK하이닉스는 그간 낸드플래시 분야에서 공을 많이 들여왔다. 2018년 96단 4D 낸드플래시를 개발한데 이어, 지난해 6월에는 업계 최고 적층인 128단 4D 낸드플래시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하지만 올해 상반기 기준 SK하이닉스의 매출 15조8000억원 중 낸드 매출은 3조7000억원에 수준에 그쳤다. 이번 인텔 낸드 사업부 인수로 기존에 개발한 128단 4D낸드 등을 이용해 최첨단 제품을 개발, 대규모로 양산할 수 있게 됐다.
이순학 연구원은 “인텔은 데이터센터향 SSD에 특화된 좋은 솔루션을 보유하고 있어 eSSD 시장에서는 삼성전자에 이어 점유율 2위(약 30% 추정)를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SK하이닉스 입장에서는 인텔의 eSSD 솔루션 기술이 SSD 시장 포지셔닝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연구원은 “업계 통폐합(consolidation) 관점에서도 긍정적일 수 있다”면서 “디램 업황이 내년 초부터 개선된다는 점까지 감안하면 주가 조정 시 매수 전략이 유효하다”고 판단했다.
도현우 NH투자증권 연구원도 “인텔의 중국 다롄 낸드 생산 시설과 낸드 관련 지식재산권(IP) 등을 즉시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SK하이닉스의 낸드 사업 강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SK하이닉스 외에 SK머티리얼즈, 솔브레인 등 국내외 낸드 관련 소재 업체에 대한 공급량 증가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SK하이닉스도 이번 인수 결정이 D램에 편중돼 있는 매출 구조를 다양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알렸다. SK하이닉스 측은 "앞으로 인텔의 솔루션 기술과 생산능력을 접목해 기업용 SSD 고부가가치 중심의 낸드 포트폴리오를 구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한 내년부터 서버용 D램 수요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수요가 개선되고 D램 가격이 상승하면 실적에도 긍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노근창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2021년에는 서버용 D램 가격이 반등할 여지가 있다"면서 "인텔이 새로운 서버용 중앙처리장치(CPU)를 내놓으면 주요 데이터센터기업들이 서버 교체 및 증설에 나설 수 있다"고 전했다.
노 연구원은 “최근 들어 아마존을 중심으로 서버 수요가 개선되고 있다”며 “또 내년 초부터 인텔의 10나노급 서버용 CPU가 본격적으로 공급되는 시점부터는 서버 수요가 의미있게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