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병은행들, 합병한 날을 창립기념일로 변경

서울 태평로 신한은행 본점 전경. 사진=신한은행 제공
[데일리한국 임진영 기자] 은행은 국민 생활에 있어 필수적인 금융 기간산업이다. 개인 및 가계 자산을 보호하는 기관이자, 기업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실핏줄을 하는 곳이 은행이다.

은행은 사기업이지만, 공기업적 특성도 갖고 있다. 수익 창출이 최고의 덕목인 일반 기업에 비해 은행은 수익 추구도 중요하지만 공익적인 가치도 함께 추구해야 하는 의무를 부여 받는다.

특히, 은행은 소비자인 고객들의 금융 자산을 책임지고 있기에 좀 더 엄격한 도덕적 책무와 윤리를 지켜야 하는 기관이다. 그래서 은행은 여타 부문에 비해 정부와 금융당국으로부터 좀 더 엄격한 '금융 규제'를 받고 있다.

데일리한국은 은행 출입기자의 시각을 통해 취재 중의 은행가 뒷얘기를 [은행가N] 코너를 통해 매주 살펴보려 한다. <편집자 주>

4월 1일 신한은행이 창립기념일을 맞았습니다. 매년 4월초 기념식을 하던 신한은행이 올해는 코로나19 여파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의 일환으로 사내방송을 통해 진옥동 행장의 창립기념 메시지만 전달하는 ‘조용한 생일’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원래 신한은행의 진짜 생일은 4월 1일이 아닙니다. 신한은행은 1982년 7월 7일에 설립됐습니다. 실제 창립된 날과 기념일이 3개월 차이가 납니다. 이렇게 차이가 나는 것은 2006년 신한은행과 조흥은행이 합병을 한 게 주요 변수로 작용했습니다.

1980년대에 설립된 신한은행은 현재의 4대 시중은행 가운데 역사가 120년이 넘는 우리은행이나 1963년에 설립된 KB국민은행, 1971년에 설립된 하나은행 등에 비하면 가장 후발 주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요 은행 가운데 가장 늦게 출범한 신한은행이 오늘날 리딩뱅크로 올라선 결정적인 계기는 2006년 조흥은행과의 합병입니다. 1897년 한성은행으로 설립된 조흥은행은 역사가 가장 오래된 은행입니다. 코스피 상장사 1호 기업으로, 오랜 역사를 바탕으로 광복 후엔 가장 규모가 큰 민간은행으로 자리잡았습니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로 인해 한보그룹·대우그룹·현대그룹 등 굵직한 대기업들에 대출을 가장 많이 내줬던 조흥은행은 부실대출 발생으로 인한 유동성 위기를 맞게 됩니다. 자산 건전성이 나빠진 조흥은행은 2002년부터 신한금융지주로 매각 절차에 들어갔고, 2006년 신한은행에 통합되기에 이릅니다.

하지만 국내 최초 은행이라는 전통을 자랑하는 조흥은행이 1980년대에 설립된 후발 주자 신한은행에 인수됐던 만큼, 이 두 은행은 합병 이후 존속법인은 조흥은행으로 남겨놓고, 오히려 신한은행 법인이 사라지는 역합병 방식의 통합을 이루게 됩니다.

이후 신한은행은 1982년 원래 신한은행 법인이 설립된 날짜인 7월 7일도, 옛 조흥은행의 설립일인 2월 19일도 아닌 조흥은행과의 정식 합병일인 4월 1일을 창립기념일로써 14년째 기려오고 있습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2일 “존속법인을 조흥은행으로 남겨놓을 정도로, 신한은행은 옛 조흥은행의 역사를 계승하고 있다”며 “조흥은행의 전통과 신한은행의 현재를 기념하기 위해 양 은행 모두를 존중하는 의미에서 양 은행 간 통합일을 창립기념일로 삼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한참 차이가 나는 후발주자인 신한은행의 창립일을 기념하기도, 그렇다고 역사 속으로 사라진 조흥은행의 창립일을 기념하기도 애매한 상황에서 양 은행 간의 완벽한 화학적 결합을 위해 통합일이 창립일이 되버린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외환위기 이후 부실은행들이 상당수 정리되고 살아남은 은행들은 자신들이 합병한 은행 중 가장 큰 덩치가 큰 은행과 정식 통합을 이룬 날짜를 창립일로 기념하고 있습니다.

우리은행은 1899년 1월 30일 설립된 대한천일은행(옛 상업은행)이 모태지만, 현재 창립기념일은 1월 30일이 아닌 1999년 상업은행-한일은행 합병을 통해 한빛은행으로 재탄생한 1월 4일을 지금까지 창립일로 기념해 오고 있습니다.

하나은행은 불과 5년 전까지만 해도 6월 25일을 창립기념일로 기려 왔습니다. 하나은행은 1971년 이 날에 설립됐습니다. 하지만 2015년 하나은행이 외환은행을 흡수하면서 두 은행 간 합병일인 9월 1일이 하나은행 창립기념일로 바뀌게 됐습니다.

국민은행 또한 1963년 2월 1일에 설립된 이래 2000년 이전까지는 은행 생일이 2월 1일이었지만 2001년 한국주택은행을 흡수하면서 주택은행 합병일인 11월 1일이 창립기념일로 변경됐습니다.

국내 은행들의 역사가 과거 외환위기를 거쳐 오면서 상당수 대형 은행들이 인위적으로 재편돼 왔던 만큼 흡수를 한 은행이나, 흡수를 당한 은행이나 서로의 ‘생일’을 앞세우기 보다는 진정한 ‘통합’을 위해 합병을 이룬 날이 창립기념일로 바뀌게 됐습니다.

우리나라 은행들의 창립기념일은 사실상 해당 은행이 설립된 ‘진짜 날짜’가 아닌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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