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우리금융 이사회 이사록 문제 삼아 경영유의 조치 통보

타 금융사 이사록 형식도 같은 데 통보 없어…금감원 "시기상 먼저 통보한 것 뿐"

손태승 우리금융그룹 회장. 사진=우리은행 제공
[데일리한국 임진영 기자] 은행은 국민 생활에 있어 필수적인 금융 기간산업이다. 개인 및 가계 자산을 보호하는 기관이자, 기업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실핏줄을 하는 곳이 은행이다.

은행은 사기업이지만, 공기업적 특성도 갖고 있다. 수익 창출이 최고의 덕목인 일반 기업에 비해 은행은 수익 추구도 중요하지만 공익적인 가치도 함께 추구해야 하는 의무를 부여 받는다.

특히, 은행은 소비자인 고객들의 금융 자산을 책임지고 있기에 좀 더 엄격한 도덕적 책무와 윤리를 지켜야 하는 기관이다. 그래서 은행은 여타 부문에 비해 정부와 금융당국으로부터 좀 더 엄격한 '금융 규제'를 받고 있다.

데일리한국은 은행 출입기자의 시각을 통해 취재 중의 은행가 뒷얘기를 [은행가N] 코너를 통해 매주 살펴보려 한다. <편집자 주>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이 지난 25일 정기주주총회를 통해 연임을 최종 확정지으면서 금융감독원과의 불편한 관계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손 회장이 자신의 연임을 가로막는 금감원의 중징계 조치 효력을 중지시켜달라는 가처분 소송 신청을 법원이 받아들이면서 연임이 이뤄진 것입니다.

해외금리 연계 파생 결합펀드(DLF) 사태에 책임을 지고 최고경영자가 연임하지 말라는 것이 감독 당국인 금감원의 뜻인데, 피감기관인 우리금융이 법적 다툼을 통해서 정면으로 당국의 의사에 반기를 들게 됐습니다. 금감원의 '횡포'에 가까운 슈퍼파워와 전횡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금융권에서는 높습니다.

금감원은 바로 트집을 잡고 나섰습니다.

손 회장이 주총을 통해 연임을 확정 지은 다음 날인 26일 금감원은 우리금융에 우리금융이 이사회 의사록을 형식적으로 작성하고 있다며 경영유의 조치를 통보했습니다.

금감원은 우리금융 부문 검사 결과 지난해 1월에서 9월까지 이사회 등의 의사록에 개회선언, 안건보고, 결의결과 및 폐회선언 등 형식적인 내용만 주로 기재돼 있고 이사들의 논의내용은 없다는 점을 문제삼고 있습니다.

금감원은 우리금융이 정식 이사회가 열리기 전에 안건을 논의하는 간담회에서 사실상 의사 결정이 이뤄지는 까닭에 이사회 의사록이 형식적으로 작성될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습니다. 금감원은 안건 논의 간담회가 사실상 이사회와 같은 성격으로 운영되는 만큼 간담회 논의 내용을 회의록 형태로 남겨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의사록에 개회선언, 안건보고, 결의결과 및 폐회선언 등의 내용만 기록하고, 이사들의 논의내용이 없는 금융사가 우리금융 뿐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손 회장의 연임으로 체면을 구긴, 금감원이 괜한 트집만 잡는다는 말이 나오는 게 당연합니다.

KB금융과 신한금융, 하나금융 등 주요 금융지주사의 이사회 의사록 역시 개회선언, 안건보고, 결의결과 및 폐회선언의 내용들은 있지만 이사회 회의 내용 전체나 주요 내용을 이사록에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처럼 주요 금융지주사들이 거의 비슷하게 형식적인 내용만을 이사회 이사록에 기재하는 상황에서 금감원이 유독 우리금융에 대해서만 이사록 내용을 문제 삼으며 경영유의 조치 통보를 내린 것은 우리금융에 대한 일종의 경고라는 해석이 나옵니다.

다른 금융지주사들도 모두 같은 상황에서 우리금융에 대해서만 금감원이 유의 통보를 내리는 것은 손 회장 연임 강행에 대해 금감원이 곧바로 보복성 제재 조치를 했다는 합리적인 의심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이에 대해 금감원은 우리금융만 경영유의 조치 통보를 받은 것은 시기상으로 가장 먼저 주요 금융지주사 가운데 통보를 받은 것일 뿐이라는 입장입니다.

박충현 금감원 일반은행검사국 부국장은 “KB나 신한 역시 해당 문제(이사회 이사록 내용이 형식적이라는 부분)에 대해 검사가 진행 중이며 결과가 나오는 대로 조치가 내려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박 부국장은 “우리금융이 먼저 결과가 나와 유의 통보를 받은 것 뿐, 다른 금융사와 차별한 사실이 없다”며 “(손 회장) 연임 다음날 유의 조치가 통보된 것은 시기상으로 우연의 일치일 뿐”이라고 해명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금감원의 해명이 모두 맞다고 쳐도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을 고쳐 매지 말라’는 옛 고사성어가 생각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상황입니다. 손 회장 연임 확정 다음 날 나온 금감원의 첫 반응이 ‘경영유의 조치’ 통보니 더더욱 그렇습니다.

금감원은 손 회장이 법원으로부터 자신의 중징계 효력을 정지시키는 가처분 소송을 낼 때부터 이미 향후 법정에서 우리금융을 상대로 할 긴 법정 싸움을 철저하게 준비 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어쩌면 이번 우리금융의 경영유의 조치 통보는 본격적으로 법적 다툼에 들어서기 전에 금감원이 날리는 경고 메시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금융과 금감원의 불편한 관계가 언제까지 지속될까요. 지켜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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