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공세 맞서 방송·신문·통신 동시다발로 인수합병 협상
"넷플릭스 시대 직면한 미디어 기업엔 M&A가 유일한 생존 전략"

[EPA=연합뉴스 자료사진]
구글과 넷플릭스가 '킬러 콘텐츠'를 앞세워 미디어 침공을 시작하면서 미국의 전통적 미디어 업계에 지각변동이 일고 있다.

방송, 신문, 잡지, 통신이 동시다발로 인수합병(M&A) 협상에 뛰어들면서 어제의 적 가운데 오늘의 동지를 찾는 합종연횡에 불이 붙었다.

M&A 도마에는 21세기폭스, 타임워너 같은 거물급부터 타임, 트리뷴 같은 유력지들이 줄줄이 올랐다. 여기에다 42년간 금지됐던 매체 간 동시 소유가 허용되면서 M&A 판도에 소용돌이가 휘몰아치게 됐다.

19일 현재(이하 현지시간) 미국 미디어 업계에서 수면 위로 부상한 M&A 협상 가운데 최대 '빅딜'은 21세기폭스다.

미디어 재벌 루퍼트 머독 일가가 거느린 21세기폭스에는 가장 먼저 월트디즈니가 눈독을 들이고 수주 간 물밑 협상을 해왔는데, 여기에 미 최대 케이블TV 컴캐스트, 최대 이동통신사 버라이즌이 각각 가세하면서 3파전 양상에 돌입했다.

21세기폭스는 영화 사업, 엔터테인먼트 케이블 채널 등을 매각하되 폭스뉴스, 스포츠 채널 등은 남겨두려는 것으로 알려졌다.

M&A 소문에 몸값도 껑충 뛰어올랐다. 3파전 양상이 보도된 지난 17일 21세기폭스 주가는 6.24% 상승 마감했다. 21세기폭스의 시가총액은 536억 달러(약 58조 원)에 달해 어느 기업에 인수되든 업계 구도를 재편할 초대형 거래가 된다.

21세기폭스가 특히 군침 도는 매물인 이유는 미디어 시장에 진출한 디지털 업체들에 맞서 콘텐츠를 보강할 수 있는 카드이기 때문이다.

구글, 페이스북으로 대표되는 IT 업체들은 자사의 막강한 플랫폼을 통해 뉴스, 동영상 등의 콘텐츠를 뿌려대며 전통적 미디어의 영역을 넘보고 있다.

넷플릭스, 아마존은 드라마, 영화 등을 자체 제작해 스트리밍(실시간 온라인 송출)으로 내보내면서 콘텐츠 제작자의 역할까지 침범했다.

이 때문에 집안에서 TV를 보거나 영화관을 찾아가는 인구가 줄면서 방송국과 영화사는 직격탄을 맞았다.

애널리스트인 켄 닥터는 "미디어 업체 간 M&A 협상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고 있다"면서 "넷플릭스 시대에 직면하게 된 미디어 업체들이 몸집을 불리려는 것은 그것이 유일한 생존 전략이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특히 구글과 페이스북이 디지털 광고를 쓸어담는 점도 미디어 업계엔 악재가 됐다고 분석했다. 그는 "양사가 올해 디지털 신규 광고 중 90%를 싹쓸이했다"면서 "미디어 업계는 허리띠를 졸라맬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M&A 불씨는 출판 업계에서도 타오르고 있다.

유력 시사주간지 타임(Time)은 석유 재벌인 찰스·데이비드 코크 형제의 돈줄이 흘러들면서 매각 협상에 급물살을 타게 됐다. 출판·미디어그룹 메레디스(Meredith)가 지난 16일 코크 형제의 자금을 합쳐 타임 인수를 제안하면서 다음 주 초 타결 가능성이 점쳐진다.

코크 형제는 미 10대 부자이자 공화당의 '큰손' 후원자로 보수진영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타임은 디지털 추세 속에 판매 부수가 줄어들면서 구조조정을 비롯해 자구책을 모색 중이다.

미디어 간 수평 통합 외에도 통신사가 미디어를 인수하는 수직 통합도 진행 중이다.

통신 대기업 AT&T는 지난해 10월 845억 달러를 들여 거대 미디어 기업 타임워너 인수 계획을 발표했다. AT&T가 거느린 통신망에 타임워너의 콘텐츠를 실어나르겠다는 구상에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타임워너의 CNN 방송을 놓고 어깃장을 놓기도 했지만 양사는 소송을 불사하며 합병을 성사시키겠다는 입장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을 비판적으로 보도해온 CNN 방송을 매각해야만 AT&T와 타임워너의 합병을 승인하겠다는 의중이라는 게 시장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이런 가운데 그동안 독과점 우려로 제동이 걸려있던 M&A 안건에도 파란불이 켜졌다. 규제 당국인 연방통신위원회(FCC)가 42년 만에 신문·방송 동시 소유를 허용했기 때문이다.

FCC는 지난 16일 표결을 거쳐 1975년부터 적용돼온 신문·방송 동시 소유 금지 조항을 없애기로 했다. 아울러 한 회사가 복수의 방송사를 소유하는 것도 허용하기로 했다.

FCC는 "기존 규정은 지나치게 오랜 기간 디지털 시대를 맞은 미디어 시장의 변화를 반영하지 않고 있었다"면서 "방송과 신문이 콘텐츠 투자를 확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빗장이 풀린 데 따른 최대 수혜자는 방송 공룡 싱클레어가 될 것으로 점쳐진다. 싱클레어는 유력지 '시카고 트리뷴' 등을 거느린 트리뷴미디어 인수를 호시탐탐 노려 왔지만 독과점 우려 또한 거세게 일으켰다.

일각에서는 싱클레어가 트럼프 대통령에 우호적인 보도를 해왔다는 점에서 FCC의 규제 완화가 싱클레어를 감안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던지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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